[칼럼]조선족 중국동포의 인정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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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조선족 중국동포의 인정투쟁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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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리 편집부

[서울=동북아신문]법무부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새로 법무부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친척 중 한분께서 “허허, 축하해. Ministry of Law에서 일하게 되었다면서.” 하고 함께 기뻐해 주는 소리에 감사하다는 말보다 먼저 불쑥 “Ministry of Law가 아니라 Ministry of Justice입니다.” 라고 바로 잡아주었던 기억이 있다. 상식퀴즈 같은 대화였지만 그 말은 내가 법무부에서 일하는 기간 동안 나의 업무에 확실한 목표의식과 함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내가 하는 일이 단지 법과 제도를 가지고 노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어두운 어느 한구석을 밝히고, 찌그러지고 눌러진 이 땅의 한켠을 다시 펴는 작업이라는 생각에 많은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더욱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는 성경의 말씀을 나의 삶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더 실천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가졌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밝음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듯이 내가 하는 일이 반드시 정의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힘이 없고 약한 집단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익에 편중되게 법과 제도를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 과연 사회 전체의 이익과 정의에 부합되는 일이라고 정당화될 수 있을까?

비록 조금 더 가진 자라고 해서 자신의 이익과 선택에 반해서 자신의 몫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게끔 정부가 강제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고 따를 수 있는 정의를 실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포포용이라는 정책목표 아래 시행된 방문취업제로 동포들이 한국사회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적지 않은 한국 국민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불편해하고 생활도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동포 사회 내부에서도 초기에는 방문취업제로 인해 한국정부에 매우 감사해 하는 분위기가 있더니 최근에는 한국의 단순노무시장에 동포들을 옭아매어서 오히려 동포들의 자유로운 삶과 성장을 저해하는 제도라는 비판까지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예도 있다. 한국에 입국할 기회를 갖지 못하여 모국에 대하여 원망과 불만만이 날로 커져가던 동포들에게 일시 한국에 입국할 기회를 부여하고 또 다소 무리가 있지만 개인 인적자원개발 차원에서 기술을 배워야만 한국에 체류할 수 있도록 만든 최근의 법무부 정책에 대해서도 찬반 양론이 매우 거세다.

과연 우리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까지 정의롭고 올바른 일이 될 수 있을까? 정의의 기준은 무엇인가? 결코 쉽고 간단하게 정답을 내릴 수는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공전의 대히트를 치면서 베스트 셀러가 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우리 이주·동포정책연구소의 월례포럼에서 이민자들의 정치참여에 대하여 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포럼 발제자로서 자유선진당의 영등포구 대림동지역의 구의원 비례대표로 6.2지방선거에 출마한 경험이 있는 장해정씨의 발언은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영등포구에는 외국인 3만7000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 중 1만4000명이 대림동에 살고 있으며 이들의 90%가 중국 동포, 즉 조선족이다. 대림동 주민 5명 중 1명이 조선족 중국동포이다.

그런데 장해정씨가 출마하고자 하니까 일부 주민들이 “중국동포가 무슨 구의원을 한다고 그래. 중국동포를 당선시켜서는 절대 안되지!”라고 했단다. 이 말에 “왜 동포들은 다문화인보다 더 대접을 받지 못할까?” 라는 생각에 화가 났고 “한국에 40만 중국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는 현실에서 누구라도 나서야 한다”는 각오에서 출마했다고 한다. 센델은 “좋은 삶을 고민해보지 않고 정의를 고민하기란 불가능하거나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한국 사회가 그렇게 부르짖는 다문화주의, 그리고 동포포용 정책을 통하여 과연 어떠한 ‘더 좋은 삶’을 원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집단이 어떠한 이유로서도 자신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침해받지 않고, 나아가 그들도 한국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삶의 가치를 인정받고 살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이것이 공동체를 보전하고 발전시키는 우리가 지켜야 할 정의의 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더 좋은 삶’이 불가능하고 그 기회가 박탈될 때 미국의 LA 흑인폭동과 프랑스의 알제리 이민자들의 “인정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이 발생한 것이다. 다문화를 부르짖는 한국사회도 다문화사회의 담론 속에서 소위 다문화가정인 결혼이민자 중심의 편협된 외국인사회통합정책만을 고집하고, 거주외국인의 50%에 육박하는 중국동포들의 ‘더 좋은 삶”의 기회와 가치를 부정하기만 한다면 우리 사회도 어느 시기에 어느 장소에서 크고 작은 ‘인정투쟁’을 겪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중국동포들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한국의 다문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어느 개인과 집단에 의해 다차원적이고 다방면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한편 사회가 극도로 복잡해지고 다양한 가치가 충돌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회 갈등의 해법을 정부의 몫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나는 늘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공동의 과제에 대해 이해 당사자를 포함하여 시민단체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가버넌스의 필요성과 활성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정책 권한을 쥐고 있는 정부에게서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모습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비록 힘도 없고 능력도 없지만 우리 이주·동포연구소에서는 한중수교 이후 이 땅에서 많은 생명을 뿌리고 시련과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도 묵묵히 자신들의 역할을 감당한 조선족 중국동포들이 이룬 업적과 성과에 대하여 정말로 아무도 듣는 사람없는 “광야에서 부르짖는” 심정으로 연구소 창립1주년을 맞이하여 조그마한 학술행사를 가졌다.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라도 이 땅에 사는 조선족 중국동포들의 노고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하여 인정하고 격려의 박수를 칠 때 비로소 이들도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갈 의미와 힘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비록 초가삼간 살림이지만 우리 사정에는 벅찬 대궐(?)을 빌려서 나름대로 행사를 치렀다. 약속한 정부측의 축하인사 한마디 없었지만 섭섭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생업을 제쳐놓고 먼 학술행사장까지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동포들의 격려의 말과 응원 속에서 뿌듯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우리는 또 하루 이 땅에 조그만 정의의 씨를 뿌렸다고. 이번 미드리 4호에는 학술행사에 발표된 원고를 중심으로 조선족 동포들의 미래와 가능성에 새로운 꿈을 심는 이야기와 담론들을 묶어 보았다. 이 땅의 모든 이주민 특히 조선족 중국동포들의 가치와 “더 나은 삶‘에 대한 노력이 인정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을 믿어본다. (이주동포정책연구소 미드리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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