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대전시(大田市) 진잠면(鎭岑面) 시골에는 마을 어귀에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다. 느티나무들은 동네로 들어가는 큰 길과 작은 길이 겹쳐진 네거리에 직삼각형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쭉쭉 뻗은 가지들은 공중에서 서로 맞닿아 마치 차일(遮日)을 쳐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여름이면 정자나무 아래는 마을 사람들의 휴식터가 되었다. 일철에는 새참이나 점심을 먹는 자리도 되었다. 단오나 백중 같은 때에는 이곳에서 한 바탕 동네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이면 이 정자나무 옆에 쌓아 놓은 돌탑 앞에다 집집마다 추렴한 양곡으로 채운 떡시루를 갖다 놓고는 한 해 동안의 안녕(安寧)과 풍년(豊年)을 기원하는 거리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이 세 그루의 나무는 나의 아버지께서 심으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계룡산(鷄龍山) 동학사(東鶴寺)로 천렵(川獵)을 갔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장만하여 가까운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하루쯤 놀다 오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만은 그냥 놀고만 오신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마을 젊은이들과 함께 작대기 굵기 정도의 느티나무 세 그루를 캐어서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그것을 마을 어귀에 심었다. 그것이 그렇게 멋진 정자나무로 자라서 철철이 마을 사람들에게 즐거운 복을 내려 준 것이다.
마을 어귀 사거리는 행인들의 길목이요, 마을 사람들이 농토(農土)를 오고가다 쉬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쉴 만한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정자(亭子)를 지을 만한 형편은 못되었다. 그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사시던 아버지는 언젠가는 좋은 쉼터를 마련할 것을 마음먹었다. 그러다가 천렵을 가서 주변에 작은 느티나무들이 많은 것을 보고는 정자나무 심기를 제안하고, 젊은이들과 함께 캐어 와 심은 것이다.
그 뒤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품었던 꿈을 이루시었다. 고희(古稀) 때에 그 정자나무 옆에 팔각의 정자를 손수 지으셨다. 이름도 당신의 호를 따서 송은정(松隱亭)이라 하고, 학자의 글을 받아 기문(記文)도 새겨 걸으셨다. 인근 마을의 사람들이 놀러 와서 당시로서는 어렵게 보인 여덟 개의 둥근 시멘트 기둥을 만든 이야기로 웃음의 꽃을 피우기도 하였었다.
하나의 나무가 동구 앞에서 정자나무로 자라기까지에는 많은 이들의 정성이 담겨야 한다. 특히 그런 나무가 심어지기에는 그러한 마음을 먹고 시작한 사람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그냥 보아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좋은 일은 항상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려(思慮) 깊은 사람에 의하여 착수(着手)된다.
시골 마을을 가다가 오래된 느티나무를 보게 되면, 불현듯 옛 고향 마을의 정자나무가 생각난다. 그리고 거기에, 아버지의 밝은 모습이 포개져 떠오르곤 한다. 어쩌다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다가가 둘러본다. 그리고 문득 거기에 아버지도 함께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버지가 심어 준 나무는 거기에도 있고, 또한 내 마음속에도 남아 살아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