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억양도 "권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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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억양도 "권세"이다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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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의 삶의 이야기

[서울=동북아신문]내 머리만 골수 민족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한국에 도착하자 먹고 마시는 것이 한 방에 적응된 걸 보면 내 몸도 불이(不異)는 아니었다. 웃기게도 10년 남짓이 살다 40여년 살아온 중국에 돌아가면 水土가 맞지 않아서 내 위장(胃腸)은 반란을 일으키고, 내 코는 향긋한 중국의 조미료 냄새를 강하게 거부한다.

반면에 중국에 들어서기 바쁘게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는 구중천으로 날아가 버린다. 마음의 탕개가 확 풀어지면서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입은 물 만난 고기마냥 신나서 수다를 떤다. 중국말이 노래 같이 들린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과연 그런가?"하는 물음이 떨어지기 바쁘게 "아이다. 아이다. ("아니다"라는 연변 사투리)를 흥에 겨워 연발한다. 북경 천안문 광장이나, 선전 같은 큰 도시에 가면 일부러 교통, 치안 경찰들을 찾아서 당당히 길을 묻고는 "극진"한 대답을 얻어내곤 하였다.

한국에선 10년 남짓이 내 투박한 함경도 말투가 뽀록날까 두려워(아이들을 빼곤) 成人들 앞에선 내 모든 신경을 총동원하여 꽁꽁 입을 꿰매고 살았다. 일들을 찾아다닐 땐 전화로 위치를 물어 본 적이 없었다. 일도 시작하기 전에 억양으로 하여 괜히 내 품값을 5할로 떨어뜨리고 싶진 않아서였다. 말 할 때마다 신경 쓰이고, 말을 내 뱉고는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삶이 여간 고달픈 건 아니다.

인생은 이래저래 모순(矛盾) 덩어리인가, 보다. 중국에선 중국의 언어문화 속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이질감이 없고 으시대며(말로 만으로) 살 수 있는데, 다른 건 잘 감내 못하겠다. 한국에선 억양과 국적으로 하여 영원한 이방인이지만 얼음에 박 밀듯이 일 할 수 있고, 어데가나 살기 편리해서 내 집 같은데 사투리로 해서 범죄자마냥 기를 펼 수 없다.

사람은 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고, 한 순간의 일들이 평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나에겐 언어로 하여 이렇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 계기가 있다.

82년 10월, 중국 하북성의 한 대학에서 흑룡강성으로부터 광서, 복건성에 이르기까지 전국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연수를 받게 되었는데 인물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처음엔 우리 조선족보다 늘씬하고 예쁘고, 잘 생긴 젊은 사람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코딱지만한 곳에서 나서 자란 나는 세상에 普通話 밖에 없는 줄 알았고 내 가슴도 태어난 그 상태로였기에 그 무엇도 담을 수 없었다. 그들이 호남, 호북 方言을 할 땐 막 얕잡아 보게 되었고, 어여쁜 처녀가 "얼(二)" 을 "어, 어"로 발음할 땐 오만가지 정이 다 떨어져서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한 쇼크를 몇 번 받고 나서 언어, 억양이 그 사람의 겉모양보다 결코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렸다.

그러다 한국에 들어서니 나를 만난 요녕성 언니가 "그런 연변말로 어찌 일하겠노?!" 하는 걱정어린 말에 그만 간담이 서늘해졌다. 처음으로 전라도 광주출신 사장님이 금방 오픈한 큰 갈비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홀서빙 40여명중 서울 젊은이는 두 명 뿐이었다.

그 둘의 서울말씨를 나도 몰래 멍하니 서서 듣고는 유명한 오페라나 감상한 듯 찬탄을 금치 못했다. 한 젊은이는 헝겊 막대기마냥 키만 멀쩡히 크고, 다른 젊은이는 흑인처럼 검고, 키 작고, 똥똥해도 간드러진 서울말씨는 그들을 내 눈에 꽃미남으로 비치게 했다. 나 스스로 그들의 격을 대번에 몇 급으로 상향시켜 버렸다.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귀에 들리는 모든 서울 말씨를 중이 염불 외우 듯 아무리 속으로 외워도 입만 벌리면 여전히 억양이 변하는 것(跑调儿)을 면할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우는 건 물거품이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 졸아만 붙었다.

예전엔 손발로 먹고 살았지만 지금은 입으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레 값있게 사는 세상이다. 사투리는 개그에만 통하지 좋은 자리엔 택도 없으니께. 30세 이전에 나다니면서 언어를 배워야 당당히 언어, 억양이란 권세를 부리며 살 수 있지 않는가?!

오늘도 오리지널 영어를 구사하는 애 앞에만 서도 여지없이 작아진다. 서울 말씨와 영어를 유창하게 쓰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물가가 싸고 마음편한 지방이 아닌 팍팍한 서울에서 세세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능력을 서울 말씨가 증명해 주지 않는가?!

저 정도로 영어를 구사하려면 유치원 때부터 무거워 메지도 못할 책가방을 메고, 어마어마한 한화를 써가면서 유년과 동년을 빼앗겼으니 세도를 부림이 마땅하지 않겠나?! 그 언어의 권세를 뼛속으로 깊이 느낀다.

나한테 사투리 빼고 뭐 쓸만한 거 없나 고민하던 중 우연히 내일이 한자자격시험 접수 마감일인 팸플릿을 보게 되었다. 그 이튿날 찾아가서 "내가 뭐 중국에서 헛살았나?!" 오기로 대번에 여섯급을 뛰어넘은 7번째 단계인 4급을 신청하고 난생처음 한자급수인정시험책을 받아 들었다.

애를 데리고 자야 되고, 시간은 한 달 밖에 안 남았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안다"지 않는가! 다행히 책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고, 시험결과 "어머님, 대단하세요! 백점이에요!" ㅎㅎ, 한자 선생님으로 쓰고 싶은데 H-2 비자라서 안 된단다!

괜찮아! 칼을 빼 들었으면 무라도 자르라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자와 중국어란 권세를 봉사로 예쁘게 휘둘러야지! 오늘도 그 날이 오기만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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