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앞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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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앞잡이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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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94>

오월 햇볕 좋은 날 시골에 갔다.

훤히 트인 흙길을 가는데 무엇이 날아간다.

몇 걸음 걸어가니 또 포르르 날아갔다 앉는다.

다가가 살펴보니 길앞잡이이다.

머리는 찬란한 금속빛 청록색이고

가슴마디와 등은 적청색 융단 갑옷 같다.

등날개는 붉은 바탕에 흑청백색 가로무늬가 곱다.

화려한 광택으로 작은 보석 공예품처럼 빛난다.

가만가만 다가가니 또 포르르 날아가 앉는다.

나는 그러는 길앞잡이에게 말했다.

“넌 참 예쁘구나. 날 길안내 해주러 왔구나.”

그러자 길앞잡이가 혼잣말처럼 말한다.

“누가 저 위해서 그러나? 피하느라 그러지.”

생각지 않은 말에 다시 물었다.

“그럼 왜 길 따라 자꾸 날았다 앉니? 멀리 날아가지.”

“우리는 속날개로만 날아서 멀리 못 가.”

“그러면 옆으로 피하든지 숨어버리지.”

그러자 길앞잡이가 이렇게 대답한다.

“모르는 소리.

우리는 잘 날지 못해서 부딪치면 툭 떨어지고 말아.

다리도 길어서 숲에서는 잘 걸리고.

그래서 장애물이 없는 길에서 지내는 거야.“

그래도 잘 이해가 안 되어 또 물었다.

“그러면 걷든지 뛰어가면 되잖니?”

길앞잡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말한다.

“다리가 튼튼하면야 개미처럼 달리지.

내 다리는 튀어 날아오르고 몸을 지탱할 뿐이야.“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땅속에서 살아서 추우면 못 나와.

그래서 날씨가 좋은 날에나 나오지.

그것도 걸릴 것이 없는 공터나 길에서만 지내는 거야.“

길앞잡이의 설명에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삶이 다르다고 무시하거나 위대한 것으로 볼 일이 아니다.

모든 생물은 그들에게 주어진 능력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최선을 다하여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만이 게으름을 필 뿐이다.

申 吉 雨 :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남한강문학회 회장

                  skc663@hanmail.net

                  010-3663-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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