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년생 숙녀의 눈
상태바
초년생 숙녀의 눈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8.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길우의 수필 192>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 여자들은 또 변신을 한다. 옷부터 고급으로 차려 입고, 머리와 화장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그러나 처음 몇 달 정도는 아무래도 앳될 뿐 어색하고 잘 어울리지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반년쯤 지나면 변한다. 옷차림도 세련되고 말씨에도 품위가 나타난다. 표정이며 자세도 자연스러워지고, 말과 행동도 교양적으로 바뀐다. 직장 생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일상생활도 안정이 된다.

   이때쯤이면 사람들을 보는 눈높이가 상승한다. 외모와 옷차림 같은 인상 위주에서 점차 성격과 교양 같은 내면을 더 살피게 된다. 정서(情緖)나 온정(溫情), 인간미 같은 것에도 관심이 높아진다. 특히 자신에 대한 평가 점수가 상향된다. 그래서, 처지는 생각지 않고 스스로 신분을 상승시킨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콧대가 높아진다.

   이럴 때면 남들을 우습게 여긴다. 모두가 자신보다 낮아 보이고, 자기에게는 격이 맞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설령 자기가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해도 남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살피게 된다. 사람을 대해도 무엇이 부족하고, 어느 것이 문제며, 어떤 것이 어울리지 않는가를 잘 집어낸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런 처지의 딸애가 만나자고 한다. 이층의 식당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제 딴의 효도’라는 아내의 말처럼 딸애는 고급 음식을 내놓았다. 과용(過用)이라는 말에 딸애는 더욱 자랑스런 태도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말씨가 역시 세련미가 있고, 음식을 즐기는 태도도 한창 삶에 맛들인 모습이다. 끝으로 나온 차를 마시는 모습도 보기가 좋다.

   그런데, 딸애가 이런 말들을 했다.

   “엄마. 저 사람은 뚱뚱한 거 보니까 게으른 것 같아.”

   “저 사람은 화장이 너무 진해요. 윤곽이 뚜렷하니까 젊었을 때는 예뻤겠어요.”

   “저 사람 옷 어울려 보여요? 색깔 감각이 없는가 봐.”

   “저 사람 걸음걸이는 조심성이 없어요. 왈가닥이거나 버릇이 없는 것 같아요.”

   “저기는 여자가 더 사랑하나 봐. 남자는 웃기만 하는데 여자는 생글거리며 자꾸 얘기하잖앙요?”

   식당 안의 사람과 창 밖을 바라보며 한 말이다. 주변에 바라보이는 사람들에 대하여 본 대로 느낀 대로 그냥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같이 딸애가 낮춰본 것들이다. 그럴 적마다 옆에 있던 아내는, ‘타고난 것이다’ ‘성격이 그런 것이다’ ‘괜찮아 보인다’ 하며 꼭 그렇지마는 않다고 거들었다. ‘보기보다는 목소리가 참 좋다’ ‘생김새보다 착해 보인다’와 같은 말은 그 횟수가 훨씬 적은 것을 보면서, 직장 초년생의 여린 감각을 느꼈다.

   “얘, 네 엄마는 뚱뚱하고, 네 아빠는 못생겼는데, 뭘 남의 말 하니?”

   세상을 더 좀 보라고 일부러 한 내 말에 딸애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래도 엄마 아빤 우리 엄마 아빠잖아요.”

   그러는 딸애의 웃음 띤 얼굴을 바라보며, 아직도 철부지란 생각이 들면서도 정(情)에는 눈이 어두어진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애도 사람의 시비(是非)와 호오(好惡)를 더 잘 분별하기 전에 누군가의 애정(愛情)에 눈이 어두워지기를 바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