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미 수기]한국취업 생활 속 사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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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향미 수기]한국취업 생활 속 사소한 이야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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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한국취업 생활 속 울고 웃었던 사소한 이야기...

“무 주세요.”하는 손님에게 깍두기가 아닌 물을 갖다 드리고,“젓갈 더 주세요.”하는 손님에게는 젓가락을 갖다드려 손님들을 당황하게 했던 그 시절,

그 시절은, 2년 7개월 전으로 돌아가서, 2007년이 다 가는 12월 끝자락, 남편이라고 부르는 한 남자와 큰 꿈을 안고 무연고방취제로 한국 땅을 밟은 날부터 시작된다.

큰 꿈이라 하기엔 너무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꿈이라도 있어 오늘까지 쭉 밀고 걸어온 것 같다. 뿌렸던 씨앗이 결실을 맺어가는 지금, 힘들고 고달팠던 하루하루였지만, 그 속에서 배우고, 느끼고, 또 우스웠던 사소한 에피소드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다가온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지 못하는 나는 회사 사원, 식당 종업원 닥치는 대로 하며 몇 달에 한번은 자리를 바꾼다. 다행히 한국은 사직하면 이튿날로 바로 자리를 찾을 수 있어 좋다. 특별한 이유없이 그렇게 여러 번 사직하다보니, 사직할 때 변명거리가 너무 궁색하고 사업주에게 피해가 되는 것 같아 지금은 아예 식당 파출부로 일하고 있다. 매일 마다 식당을 바꾼다 해도 누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아 좋다.

회사일 보다는 식당일을 하면서 보고 듣는게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언니, 금방 말씀한 징크스란게 뭐예요? 가게 밖에 굵은 소금을 뿌리라면서요?

오늘 장사가 잘 안된다는 징크스라는거야. 첫손님이 왔다가 그저 가버렸잖아. 재수 없어. 가게 문밖에 굵은 소금을 훌훌 뿌려 좋지 않은 것을 없애는 거야.

그러고 보니, 내가 할매냉면집에 일하러 간 날, 가게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빗자루 질을 하니까 홀언니가 소리쳤나보다. 반대방향으로 빗자루 질을 하라고, 그래야 장사가 잘된다고. 아침밥도 비벼먹지 말라나? 재수없다나.

그럼 징크스라는 것이 정말 있을가? 구리시에 있는 콩나물국밥집에서는 항상 가게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빗자루 질을 했어도 하루 종일 손님이 버글버글해서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가! 고정적인 홀서빙 둘이서 하루에 국밥 500-700개를 팔았으니 말이다.

콩나물국밥집을 떠올리면, 그게 내 생에 식당에서의 첫 경험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어리버리할때의 그 추억이 쑥스럽고 민망스러울 정도다.

식사 마친 후 커피를 들고 이를 쑤시고 계시는 손님에게 다가가서 친절하게 웃음을 빼물고 “어서 오세요. 몇분이세요?”할 적의 이야기다.

중국에서 온 어느 언니는 손님이 오시면 “어서 오세요”, 손님이 갈 때면 “어서 가세요.”했단다.

또 다른 언니는 손님이 오시면 “어서 오서소”한단다. 그 말을 듣고 낄낄 웃으며 흉내를 내다가, 어느날인가 내가 문득 손님에게 어서 오서소,오이소, 어서 가세요 한다.

그렇게 센스있던 홀 실장님이 카운터에 멍하니 서있다가, 화장실에 먼저 들렸다 나오는 손님에게 <안녕히 가세요>할적에,

그렇게 눈치빠른 홀언니가 식사 마치고 계산하러 카운터에 서있는 손님에게 <어서 오세요> 명랑하게 소리칠 적에 우리 모두가 웃는다. 그러고 보면 나만 어리버리한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돌팔이 의사 출신 이였는지라 “오늘 손님 많네요.”가 아니라 “오늘 환자 많네요.” 한다. 돈 주면서 고치라 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물병 대신 소주병을 들고 주문받으러 갈 때도 종종 있다. 물병과 소주병을 같은 냉장고에 넣어서 헷갈리기 쉽다는게 나의 해석이다. 그만큼 일하면서 잡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김치와 깍두기를 담은 접시는 수저 양쪽에 놓아드리고 앞접시와 컵은 식탁 중간에 놓아드릴 때도 간혹 있다. 어떻게 드시냐고? 알아서 드시면 된다. 이 때문에 손님에게 클레임을 받아 본 적은 없으니깐 말이다.

손님이 “글라스 주세요.”하면 “죄송합니다. 글라스는 없고 하이트나 카스밖이예요.”한다. 글라스를 맥주 이름으로 알고 있다.

콩나물국밥을 맛있게 드시려면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매콤한 고추를 넣으면 된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손님이 점잖게 물어온다.

“이게 육젓이예요?” “아니요. 새우젓이예요.”

“육젓 맞죠?” “육젓이 아니라 새우젓이에요.”

손님 왈: “됐어요. 알았어요.”

새우젓이라 친절히 알려드리는데도 자꾸 육젓이냐고 캐어묻는 이상한 손님이다. 육젓은 6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새우젓이라고 주방언니가 웃으며 알려준다.다대기가 뭔지, 수제비가 뭔지, 저범은 또 뭐고 냅프킨이 뭔지도 모르던 내가 새우젓과 육젓의 관계를 한참을 몰라도 이상할건 없다.

새우젓이라 하니 생각난다. 일하는 식구들 중 새우젓을 유난히 잘 드시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식사 상을 차릴 때면 주방언니가 항상 “막내야. 아저씨 젖 드려라.”하고 소리친다. 과묵하신 아저씨가 이젠 제발 좀 그만해 주십사 하고 애원하는 듯한 눈길로 주방언니를 바라보던 그 모습~~ 우수한 개그맨들이 틀림없다.

고마운 주방언니였다. 하루에 국밥 500여개를 팔면서 고역을 치르고 잠자리에 누우면 잠꼬대와 함께 비명소리를 무시무시하게 잘 질러주는데도 항상 막내라고 기특해하신다.

하얀 눈 펑펑 오는 날, 내 핸드폰으로 사진 이쁘게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시고 엉거주춤하게 서서 열심히 두 세장 찍어줬다. 감사를 연발하면서 사진파일을 열어보니, 이게 웬걸, 나 얼굴 대신 이쁜 주방언니의 얼굴뿐이다. 함박눈 속에서 서글서글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언니의 모습이 그래서 내 핸드폰에 지금도 담겨있다.

일하는 직원은 적고 손님은 버글버글, 웬만한 체력 없인 버티기 바쁜 국밥집, 타고난 체력을 자부하던 나였지만, 그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한달에 두 번 되는 첫 휴가일을 맞아 집으로 오는 날, 전철에서 골아 떨어져 하차 역을 지나쳐 한참 가버렸다. 늦은 밤 전철노선표를 들고 우왕좌왕해서 겨우 집을 찾아왔다. 밤에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 식칼을 베개 밑에 놓고, 출입문에 가냘픈 밥상을 버텨놓고 바스락 소리에도 화닥닥 놀라면서 하루 밤을 보냈다. 이튿날 집 열쇠를 찾으니 가방에 있어야 할 열쇠가 없었다. 집 안을 홀랑 뒤지며 찾았다. 남편에게 전화하면 욕을 사발로 처먹겠는데, 심각하게 고민하며 출입문을 나와 보니 열쇠는 보기 좋게 바깥문에 꽂혀있었다. 그날 그 후부터 남편 없이 혼자 밤을 지내도 무섭지가 않다. 마음의 무서움을 치유해준 좋은 계기가 된 것이다. 열쇠를 찾은 기쁨에 혼자 실실 웃으며 은행 자동화 기기에서 십 만원을 찾고 약국에 들러 박카스 사서 흥얼대며 집에 왔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는 순간 아차, 현금인출조작만 하고 현금은 꺼내오지 않은 것이 불쑥 생각났다. 이런, 저런을 외치며 집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은행을 헐레벌떡 뛰어갔더니 다행히 은행창구를 통해 돈을 찾을 수 있었다.

언니들에게 얘기해주면 웃겠지~ 2시간 전철을 타고 기숙사에 돌아가서 가득 널어놓은 빨래를 보는 순간, 한번 또 아차, 가루비누도 넣지 않고 세탁기를 돌린 것이 생각난다. 피곤에 절어 실수투성이 되었던 첫 식당에서 첫 휴가, 그때를 돌아보며 허탈하게 웃어본다.

눈을 퀭하게 뜨고 피곤해 보이는 듯한 내가 뾰두라지 가득 난 얼굴에 그래도 상냥한 웃음을 빼물고 손님들 사이를 분주하게 누비고 다니면, 웃을락말락 날 쳐다보는 손님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돈 벌러 와서 얼마나 고생 많겠냐며 오실 때마다 돈 천원씩 쥐어주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꼭꼭 저금해서 중국 갈때 가져가라고 하신다.

“아줌마, 난 아줌마 사랑할 것만 같애.” 밥 푸고 있는 내 귓가에 속삭이고는 바람같이 사라져버린 손님. 병장 달라던 손님이었나, 쥐약 달라던 손님이었나, 주방언니들까지 열을 올리며 수줍은 소녀시절, 첫사랑을 떠올리게 해주는 익살스런 그 손님의 모습을 그려봤지만, 연기처럼, 꿈처럼 사라진 손님이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이란 참말로, 뭐라고 해야 하나?

남자들이 치근닥거리면 싫어하는 척 해도 때에 따라 싫지는 않나보다.

늙은 할아버지 손님이 아줌마 너무 이뻐 놀랐다며, 데이트 신청을 해왔다면서 하루종일 싱글벙글, 떠들며 곱씹는 언니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정말 다양한 손님들과의 만남, 다양한 식구들과의 만남, 다양한 체험의 장이다.

식사를 마친 손님이 물어온다: "티 있어요?"

엉? 티라니? 잘못 들었나? 차를 그러나? 우리 식당에서는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데? 녹차같은걸 그러는가보다. 역시 내 머리회전이 빠르다고 자부하면서 "저희 여기엔 차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언니가 "후식요? 아이스티 있어요. 따뜻한 커피, 냉커피도 있어요"한다. 헐~

쟁반국수를 비비는 공구도 언니들마다 달리 부른다.

삼지창, 쇠스랑, 소시랑~

쇠스랑이라 하면 농기구 같아서 우습지만 홀언니는 매일마다 소리친다.

"향미야, 쇠스랑 가져와!"

미국에서 생활하다 온 서빙언니는 때때로 누구도 모르는 영어를 내뱉는다.

하루는 주방에 대고 "안달래"하시더니 한참을 기다리다가 왜 안주냐고 그런다.

"안달래며? 손님이 안줘도 된다고 그러지 않았나?"

"아냐.안~달레(An~dale)는 스페인어야. 알았다는 뜻이야. 주방에서 만들어 준다고 하니까 내가 알았다고 대답한거야"

맨날 지겨워~ 지겨워~하시면서도 일을 시작하면 누구보다 책임감있게, 깔끔하게 하는 언니다. 간혹 손님들에게 스트레스 받을 때면 "콱 처먹고 뒈져라"욕하고는 "내가 왜서 이렇게 사악해졌지?"하면서 곤혹스러워 하신다.

까칠한 손님도 적지 않다.

“어서 오세요. 몇분이세요?”

“혼자 온줄 몰라서 물어요? 왜 혼자 오면 안 되나요?”하고 화를 낸다.

인원수에 따라 반찬이 다 나갔는데도 "반찬 한 벌 더 주세요"하는 손님에게 "필요하신거 말씀하세요. 더 갖다드릴게요"하면 "다 필요해요"하면서 악을 쓰고 달려드는 손님도 있다. 반찬 한 벌에 6가지니 다 줄수는 없지 않는가! 정말 앉아있는 그 대갈~을 탁 갈기고 무협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보기 좋게 발을 날리고싶다. "못배워 처먹은게, 집구석에나 처박혀있지 기바라나와서" 입에서는 욕설이 나간다. 나도 언제 이렇게 사악해졌나? 나는 인간이 될라나?

그 다음부터는 요령이 생긴다. 반찬 한 벌 더 달라고 하면 녜 시원스레 대답하고는 백김치나 열무김치 같은 것으로 두 세 반찬 갖다주고 만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까칠한 손님이든 수준있는 손님이든, 그들이 있기때문에 돈을 벌면서 새로운 인생체험을 할 수 있고 배움을 즐길 수 있어 항상 고맙다.

손님 왈: “곱빼기로 주세요.”

앞치마 두른 나의 공손한 대답: “저희 여긴 곱빼기가 아니라 뚝배기로 나와요”

‘곱빼기’란 두 그릇의 몫을 한 그릇에 담은 분량을 말하는 것이라는데 음식을 담는 그릇 따위로 알았으니 엉뚱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잘 몰라도 확인하지 않는다. 우선 대답해놓고 볼 판이다. 그래서 우스운 일이 생긴다.

말귀 못 알아 듣는데는 항상 날 훈계하는 남편도 마찬가지다.

부산 노포동터미널에서 버스 타면서, 남편님이 기사님에게 물었다. “서울에서 쓰던 카드인데 되요?” 기사님 왈“하나로는 안 됩니다.” “예? 하나로는 안되요? 그럼 두 개로는 되지요? 여보, 자기 카드도 줘, 두 개로 찍어야 된대.” “안됩니다.”기사님은 정중히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당황해진 우리는 허둥대며 호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집어넣었다. 우리 같은 초짜들이 하나로카드가 교통카드의 일종인줄도 알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는가.

노포동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같은 회사에 다녔던 이정이라는 한족연수생은 노포동을 줄곧 로우후둥(老虎洞, 호랑이 굴)으로 알고있었다.

노포동이 호랑이 굴이든, 무가 물이든......한국생활 2년 7개월째,사소한 이야기와 함께 삶이 녹아드는 체험 장에서 힘들고 고달프지만 인내심을 갖고 열심히 땀 흘리며 노력해왔다. 또한 사소한 일상에서 배움과 깨달음을 통해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지혜를 얻고, 경제적 개선과 마음의 여유를 즐기며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한국취업생활이 거의 마무리되는 지금, 귀국 후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오늘도 그 꿈을 향해 평범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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