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 년 전에 한국인 배우자인 중국 아주머니가 사무실에 오셨다.
“우리 아들이 지금 21살이에요. 초청해줄 수 있죠?”
그 당시 출입국사무소에서는 21살 초청에 대하여 영사관에 서류를 제출하라고 하는 상황이었기에 영사관에 초청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것을 알려드렸다.
그러자 “영사관에서는 비자 받기가 어려워요 그냥 출입국에서 비자 받을 수 있는 것으로 해주세요.”
“아이는 한국에 와서 얼마간 머무를 예정이에요?”
“그냥 제 곁에서 같이 살도록 할 수 없을까요? 제게는 아들밖에 없어요.” “그러면 아주머니가 국적이 나올 때까지 방문동거비자로 있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아들을 남편이 먼저 입양을 해주어야 되고 아들도 여기에서 공부를 해야만 되요. 이 비자는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아니라 자녀가 부모 곁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야 되는 거에요.”
“그럼 남편이 꼭 입양을 해주어야 되나요?”
“네”
“그럼 남편하고 의논하고 올께요.”
며칠 뒤에 다시 찾아온 아주머니는 아들을 유학비자로 데려오고 싶다고 하였다.
“유학비자로요? 그럼 아들을 여기에서 공부시키시겠다는 거죠? 네 잘 됐네요. 그럼 유학생들을 잘 관리해줄 수 있는 대학을 찾아보고 바로 대학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아들의 학업수행능력평가 등을 통해서 아들에게 맞는 학교를 찾아보세요.”
아주머니는 내 말을 듣는둥 마는둥 “그런 거 말고요 그냥 학교에서 초청해서 와서 아들은 학교 안가고 제 곁에 있게 하면 안돼요?”
“그런 거는 하지 마세요.”
“왜요?”
“그런 것은 걸리면 아들은 완전히 강제퇴거 대상이 돼요. 아주머니는 결혼생활중이신데 왜 아들에게 위장 초청을 청하려고 하세요. 아주 길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남들이 그러는데 유학비자로 오면 학교에서 다 알아서 관리해준데요. 학교에 안가고 돈벌러가도 된대요.”
“그런 말은 듣지 마세요. 아주머니에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말이에요.
갑자기 아주머니가 짜증을 내셨다.
“그럼 해줄 수 없다는 말이에요? 해줄 수 없으면 해줄 수 없다고 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내가 여기만 온 줄 알아요? 나도 우리 아들 데려와 볼려고 목동이고 명동이고 대림동이고 다 가봤어요. 그런데 여기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데도 많아요. 그렇게 아는 소리 하지 말아요. 그냥 능력이 없으면 능력이 없다고 할 일이지 핑계대기는..”
그렇게 화를 내며 사무실을 나가셨다.
또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꼬아가며 살아가는구나 싶어서 그 아주머니를 보냈다.
그 뒤 3년이 지난 6개월 전에 다시 아주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저 누구인지 아세요?”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저 이제 국적이 나왔어요.”
“네 축하드립니다.”
“저 이제 국적이 나왔는데 제 아들을 국적 올려도 되죠?”
“그럼요 아들이 어디 있는데요?”
“네, 서울에 있어요. 저 혹시 모르시겠어요?”
“네, 누구세요?”
“옛날에 우리 아들 초청해달라고 갔다가 사실은 거기서 초청을 안하고 다른 곳에서 유학비자로 왔는데요. 지금은 불법체류중이에요.”
“유학으로 언제 왔는데요?”
“만 3년이 넘었어요”.
“학교는 졸업했어요?”
“아뇨, 학교는 오자마자 그만두었어요.”
“그럼 외국인등록증은요?”
“네, 외국인등록증 만들고 바로 학교는 그만두었어요.”
“누가 그러던데 불법체류자도 국적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
사실은 누구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 제가 기억을 못해서 그러는데 아들의 외국인등록증과 여권, 어머니의 혼인관계증명서와 기본증명서를 가져와서 상담을 받아보시죠?”
“네, 그럴게요.”
아주 상냥하고 겸손한 말투였다.
설마 4년 전의 그 아주머니가 다시 내게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시 찾아온 아주머니는 기억 저편에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먼저 말한다.
“여기에서는 우리 아들 데려오는 초청을 해주지 않아 할 수 없이 대림동 쪽에 맡겨서 우리 아들 데려 왔어요. 그런데 체류연장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불법으로 그동안 있었어요. 얼마나 불안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정말 저 기억 못해요? 옛날에 우리 아들 유학비자도 여기에서 해달라고 했는데 진짜 공부하는 것 아니라고 안 해줬잖아요? 그 당시 여기에서 다 해줬으면 나도 이 고생 안 하잖아요.”
웃으며 눈치 보며 이야기하는 아주머니의 말은 4년 전의 그 황당한 주문을 할 때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그러면 그 당시에 그런 초청하지 말라고 했는데 결국 초청하신 거에요?.”
“아니 여기에서는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 했죠.”
더 이상 말해봐야 필요 없는 것 같았다.
가져 온 서류나 한번 줘보세요.
“여기요. 가져오라는 건 다 가져 왔어요.”
여권을 보니 2006년 7월에 입국하였다.
외국인 등록증은 2007년 1월로 체류기한을 넘겨있는 상황이었다.
어머니의 기본증명서를 보니 2009년 10월에 국적을 허가받은 상태였다. 혼인관계증명서에는 아직도 혼인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 서류를 출입국에 가져가서 상담 받아 보신 적 있으세요?”
“아뇨. 왜요? 갔다가 우리 아들 붙잡아 가면 어떻게 해요?”
“아들은 지금 뭐해요?”
“그냥 아는데 가서 일하고 있어요. 나쁜 것들이 아들이 불법체류자라고 돈도 적게 줘요. 남들은 다들 150만원 이상 버는데 우리아들은 지금 120만원 정도 밖에 돈도 못 벌어요.”
“대학은 어느 대학이었어요?”
“왜요? 그 대학에 확인 하려구요? 하지 마세요. 우리 아들 때문에 그 대학도 피해봤다고 하더라구요.”
“어떻게요?”
“몰라요 그냥 들리는 소문에 그러더라구요.”
“그래도 아들의 체류상황을 알려면 대학에 확인해봐야 되는데요?”
“우리 아들 체류상황은 불법체류라니까요?”
“글세, 불법체류는 불법체류지만 그냥 일반 불법체류인지 강제퇴거대상인지 그 정도는 알아야 될거 아닌가요? 일반 불법체류라면 절차를 밟을 수가 있지만 강제퇴거 대상자라면 여기에서 절차 밟아봐야 필요없어요. 출입국에서 강제퇴거 대상자라면 어쩔 수 없을 걸요?”
“그래요? 갑을대학이에요.”
“지방에 있는 갑을 대학요?”
“네”
“그 당시에 아들을 한국에 데려와서 공부 안해도 된다고 말했다는 사람은 지금 어딨어요?.”
“몰라요. 연락이 끊겼어요. 그 사람이 연락이 됐으면 여기 안왔죠.”
“네?!”
찝찝한 기분과 함께 몰려드는 불쾌함이었다.
“그런데 이 서류해주는데 얼마에요?”
“왜요? 얼마주실 건데요?.”
“나도 여기저기 알아봤어요. 이런 서류하는데 100만원도 더 든데요.”
“그래서 저에게 얼마주실건데요?.”
“할 수 있어요?”
“모르겠어요. 학교에 먼저 확인부터 해봐야 돼요. 그런데 제게 얼마 주실 거에요?.”
“많이는 받지 마세요. 우리는 돈 없어요.”
“그러면 그냥 순서를 밟아서 순리대로 하시지. 왜 이렇게 어렵게 사세요? 그냥 영사관 통해서 초청하여 연장하면 되잖아요.”
“남편이 입양을 해주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 영감 그래서 벌 받아서 지금 암으로 죽어가요.”
아저씨가 암으로 죽어가요?
“네 그럼 아저씨 병간호로 힘드시겠군요.”
“그거야 아저씨 아들들이 하지 왜 내가 해요.”
정말 하는 말마다 이기적이다, 싶은 마음이었다.
갑을 대학에 아주머니의 아들에 대한 자료를 팩스로 보내고 전화를 하여 담당자에게 확인을 해달라고 하니 학교에서 이탈 신고한 사람이라고 한다. 어디 있는지 알면 중국으로 출국시켜달라는 말과 함께.
아주머니에게 전해주었다.
“아주머니 아들은 이미 학교에서 이탈 신고한 상태이고 더 이상 아주머니를 도울 방법이 없네요.”
“그럼 우리 남편이 아파서 우리 아들이 병간호하느라고 학교를 못가서 이런 상태가 된 것이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탄원을 해보세요.”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전 이런 서류는 만지고 싶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아니, 여기는 서비스업 아닌가요? 서비스업이면 손님이 해 달란대로 해줘야지 무슨 잘난 척을 해요?”
몇 년 전의 사무실 나갈 때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그러나 정중하게
“죄송합니다. 서류가 진정성이 전혀 없습니다. 저로서는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이전의 분을 다시 한 번 찾아보시든지 다른 곳을 찾아보세요. 저는 이 서류 받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별꼴이야 내가 다시는 이 사무실 오나봐라. 서류가지고 오라해서 가지고 오니까 해주지도 못할 거면서 왜 사람을 오라가라 하는거야? 응?”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확인하지 않고 함부로 오라가라 하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아주머니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대여섯 달이 흘렀다.
그 아주머니의 서류가 다시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그동안 여기저기에서 손댄 흔적이 다 묻어있는 채로 경기도의 출입국 사무소들은 다 다녀온 흔적이 역력했다.
서류를 보내온 여행사가 말한다.
“그 아주머니가요 돈은 달라는 대로 다 준대요. 그냥 한국에 국적신고만 할 수 있게 해 달래요.”
“그럼 신고만 하고 그날로 불허되어도 괜찮다고 해요?”
“그건 아니죠 국적이든 영주권이든 나와야죠.”
“그 아주머니 이 서류가 우리 사무실로 온 줄 알아요?”
“네”
“뭐라 안 해요?”
“아무 말 안하던데요? 왜요? 아는 서류에요?”
“네, 전에 제가 봤던 서류에요. 못한다고 돌려줬는데요”
“그럼 이 서류 못해요? 어떻게 방법을 찾아보세요. 아주머니가 뭘 몰라서 그렇지 자식을 옆에 두고 싶은 어머니 마음은 다 똑같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싶었다.
“그럼 그냥 중국에 가서 이 상황을 정리하라고 하세요.”
“이걸 어떻게 정리해요?”
“마침 지금 자진귀국프로그램이 나왔잖아요.”
“지금 자진출국하면 입국규제가 없을 거에요. 확인해보세요. 그럼 이 기회에 중국으로 가서 어머니 초청으로 다시 한국에 오도록 해보세요. 그럼 국적이든 영주권이든 깨끗하게 될 거 아닌가요?”
“고맙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며칠 뒤 다시 그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중국을 안가고 여기에서 우리 아들 국적을 따게 도와달라고 했지 누가 나가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왜 남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해요? 거기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나서 나에게 왜 이렇게 시비에요?”
“아니, 아주머니 서류에 대하여 제가 뭘 어쨌다고 그렇게 화를 내세요?”
“그렇잖아요. 내가 다른 여행사에게 우리 아들 서류를 맡겼는데 왜 거기가 우리 아들 서류에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냐고요.”
악을 쓰며 화를 내는 아주머니에게 정말 황당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조금 뒤에 여행사에서 전화가 와서 미안하다며 쩔쩔맨다.
“왜 그렇게 반응을 해요?”
“지금 나가서 초청을 하면 다시 들어올 수 있다고 하니까 갑자기 사람이 변해서 제게도 화를 내며 어디에다 물어서 그런 답변을 했냐고 해서 사장님을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도 사장님을 안다며 가만놔 두지 않겠다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럼 그냥 아주머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세요.”
“그 동안에도 경기도 다섯 군데 출입관리국은 다 다녀오신 분이에요. 출입관리국마다 안되니까 화를 내는 것 같은데 한국의 출입관리 행정을 어떻게 자신 마음대로 바꿔가며 한답니까?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고 한국의 법을 얼마나 우습게 알기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항상 뒷전이고 돈으로만 한국의 법망을 피해갈 생각만 하니 참 답답한 아주머니네요.”
“미안해요. 그런 사람인줄 모르고 신경 쓰이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됐어요. 그냥 마음 풀고 일합시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 아주머니는 한국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국의 출입관리법이란 것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주머니하고 몇 년간에 걸쳐서 만나는 기회가 있었지만 단 한순간도 좋은 만남으로 끝나지지가 않았다.
또한 이 아주머니 같은 경우는 비록 불법이라도 돈을 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그동안 한국생활을 해 오신 분이었다. 과연 이런 아주머니가 이런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게 이 아주머니만의 책임일까?
우리 사회에서 돈만 받으면 나중에 그 사람의 인생을 망칠지도 모르는 이민행정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돈만 준다면 불법을 합법으로 만든다는 잘못된 생각.
돈만 받는다면 불법도 위법도 마다하지 않는 잘못된 이민행정대리인. 우리사회에 이민자들의 인구는 날로 늘어나는데...... 정말로 전문적인 이민행정인의 양성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이주동포정책연구소 미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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