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노무경제로 부강민족 반열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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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노무경제로 부강민족 반열에 올라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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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철구교수가 보는 조선족 대외개방 3부곡

력사상 조선족은 농사를 중히 여기고 상업을 경시하는 민족이였다. 개혁개방이래 조선족들의 장사는 《아주머니》들이 동네밖에서 김치, 짠지 장사를 하면서부터 시작되였다. 조선족들이 정성껏 만든 랭면, 찰떡, 김치, 개고기는 조선족음식의 《네가지 보물》로 여러 민족들의 환영과 각광을 받았다.

조선족아주머니들은 이 브랜드(品牌)로 중국의 광활한 지역을 넘나들었다. 인구가 200만명도 안되는 조선족들은 목전 장성내외, 장강남북, 지어는 국내에서 국외로 퍼져 나가고있다. 특히 해외로무송출이 판을 치고있다.

개혁개방초기 우리 조선족들은 이웃나라인 조선, 한국, 로씨야의 주민들과 주로 《보따리장사》를 하였다. 다시 말해 친척방문의 기회를 리용하여 외국사람들의 선호를 받는 일용소비품과 중약보건식품을 내다 팔고 귀국할 때는 중국주민들에게 필요한  급수 생활생산자료를 가져다 넘겨 리윤을 많이씩 남겼다.

특히 우리 나라 개혁개방이 심화됨에 따라 특히는 1986년 서울아세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8월 중한수교를 계기로 중국조선족군중들 사이에는 《한국바람》이 세차게 불어쳤다.

통계에 따르면 1990―1993년 4년간,연변에서 한국, 로씨야, 일본, 미국, 카나다, 오스트랄리아 등 20여개 나라와 지역으로 친척방문을 간 조선족은 5만 6200여명(조선에 간 인수 미포함)이다. 그중 한국에 간 사람이 70%이상에 달한다.

민족무역의 한가지 형식이자 변경무역의 중요한 보충형식으로서의 《보따리장사》는 조선족들에게 경제수입을 톡톡히 창출하여 주었다.

1994년이후 대 로씨야, 대 조선 변경무역이 미끄럼질을 하자 중국조선족들은 대외 장사의 방향을 이웃나라인 한국으로 돌렸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한국에 가 1년 로무하면 그 수입이 중국에서의 10년이상의 수입과 맞먹는다고 한다.

최근년 한국정부는 중국조선족에 대한 출입경정책을 완화하고 출입경수속을 간편화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에 가 로무에 종사하는 조선족인수가 급격히 증가했으며 로무경제가 급속히 발전하였다.

한국법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2007년말까지 재한 조선족인수는 31만 485명이고 그중 90일이상 장기체류 조선족이31만 345명으로 99.9%를 차지한다.

2008년말까지 한국에서90일이상 체류를 등록한 중국조선족은36만 2920명으로 2007년에 비해5만 2575명이 증가됐다.

2009년 한국에서 90일이상 장기 체류 중국조선족은 36만 3087명으로 재한 중국인 총수48만 8651명의 74.5%를 차지(90일이상 장기체류 중국인은 장기체류 외국인의 56.1% 차지)하여2008년에 비해 167명이 증가했다.

그중 방문취업제 중국조선족이 29만 9796명으로 세계 8개 국 방문취업총수30만 6283명의 97.9%를 차지했다.

로무송출은 우리 나라 조선족 특히는 농민들의 사상관념을 개변시키고 인민생활을 개선하고 공업화와 도시화 추진 등 면에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지금까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해외로무인원은 루계로 근 15만명에 이르러 전 주 도시향 취업총인구의 16.9%를 차지한다.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로무송출수입은 루계로 45.24만딸라에 달한다. 연변주 로무송출인수와 로무수입은 전 성과 전국 동류지구에서 첫자리를 차지한다.

그중 2005년 해외로무수입이 8.76억딸라로 전 주 지방생산총액의 32.8%를 차지했다. 이는 전 주 217.5만명의 인당 년간수입보다 인민페 3400원 더 증가한것과 같다.

2006년 연변주 백성들의 출국로무수입은 10.6억딸라로 인민페로 환산하면 90여억원에 달해 2005년 대비 19.5% 증가했다.

이는  연변 생산총액의 33.8%와 맞먹으며 전 주 재정수입의 2.14배(그해 전 주 재정수입은 42억원)로 력사 최고를 기록했다. 전 주 인구를 217.8만명으로 계산하면 평균 인당 수입이 인민페 3800여원 더 증가된 셈이다.

2007년 전 주에서 새로 파견한 로무인원은 5300명이고 로무송출 수입은 10.0억딸라로 전 주 인당 수입이 인민페 3600원 증가, 그해 도시진 주민 인당 가지배수입의 34%를 차지하고 그해 농민 순수입의 81%를 차지했다.

2008년말까지 로무송출인원은 연인수로 1.8만명이고 그해 새로 파견한 로무인원은 연인수로 5 622명이다. 금융위기와 환률의 영향으로 섭외수입이 많이 떨어져 전년(全年)7.5억딸라를 실현, 25.5% 하강했다.

2009년 국제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아 한화 환률이 내려가 로무송출인원수가 줄어들었다. 로무인원을 연인수로 1.4만명 파견하고 그해 새로 파견한 로무인원은 연인수로 1440명이다. 섭외수입이 5.2억따라로 30.9% 하강했다.

2년전 전 주 은행들은 평균 매일 국외에서 송금한 로무수입을 287만딸라 입금받았다.

장백조선족주민들은 조선과 특수한 인간관계를 맺고있다. 1958년 자치현 설립전의 1957년 이미 연인수로 4896명이 조선의 친척, 친우들을 방문하였다.

대외개방후 친척, 친우 방문자는 급속히 증가하였다. 1992년에는 방문자수가 연인수로 1만 3487명에 이르러 1957년에 비해 1.8배 증가했다. 목전 전 현 로무송출은 초보적규모를 이루어 로동력에게 취업을 시키고 농민수입을 증대시키는 중요한 경로로 되였다.

인구가 8.4만명, 그중 조선족인구가 1.5만명밖에 안되는 장백현에서는 지금까지 이미 로무인원을 7476명 파견하였다. 그중 국외에 파견된 로무인원은 1824명으로 년간 로무수입이 2.2억원에 달해 전 현 평균 인당 수입이 2530원 증가한것과 맞먹는다.

로무송출은 점차 중국조선족 사회경제의 새로운 주목거리와 성장점으로 되였다.

《출국로무열》은 《귀국창업풍》을 일으켰다. 현재 연변의 거리골목에 빼곡이 들어선 음식서비스업, 문화오락업, 술집, 다방(茶座), 커피숍, 노래방 등 서비스가게의 약 60%이상이 출국로무해 《외국돈》을  번 조선족군중들이 투자하여 설립한것이다.

연변의 소비수준은 보편적으로 아주 높다. 조선족이 전 시 총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연길시의 2006년도 제3산업의 비중은 56%나 된다.

시민들의 야생활은 풍부하고 다채롭다. 24시간 영업하는 상점과 식당은 시민들의 생활에 많은 편리를 가져다주고있다.

연길시의 《불야성(不夜城)》은 늘 《외국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화려한 등빛이 온 도시의 밤하늘을 비춰주고 아가씨들의 흥겨운 노래가락이 식당에서 흘러나온다》라는 시구는 바로 이 초요도시의 특이한 풍채를 돋보이게 한다.

1982년 흑룡강성 조선족인구는 약 45만 4000명이다. 그중 70%이상의 가정이 한국과 친척관계가 있다. 하여 개혁개방이래 흑룡강성 조선족들의 한국로무는 제일 앞자리를 달려 선후 연인수로 8만여명이 한국에 가 로무에 종사했다.

해림시(현급시)의 조선족인구는 약 3만 3000명으로 전 시 총 인구의 8%이다. 2004년 전 현 8900여명 농민들이 외국에 가 로무에 종사하였는데 그중 조선족농민이 7000여명이였다.

그들은 해마다 한국에서 4억딸라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2005년 1월 해림시는 흑룡강인민정부에 의해 《흑룡강성 출국로무 제1현》으로 명명되였다.

해림시 해남조선족향 홍성촌은 인구가 1000여명밖에 안되지만 최근년 외국에서 일하고있는 사람만 해도 407명으로 약 전 촌 인구의40%를 차지한다. 매년 외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2000만원 인민페로 전 촌 인구당 수입은 1만 4000원이다. 90%의 농가들이 전화를 가설하고 8명이 백만장자로 되였다.

해림시 신합향 신합조선족촌에는 537호 농민이 있다. 그중 한국, 로씨야, 일본, 미국, 카나다, 싱가포르 등 나라에 가 로무에 종사하는 청장년이 680명이나 달하며 국내 발달한 지역에 가 일하는 사람이 약 100여명 된다. 2004년 이 촌의 해외로무 총 수입은 6400만원에 이르러 논 5400무의 벼생산수입의 30배에 달하여 기본상 《향촌생활도시화》를 형성했다.

목전 해림시 조선족인구중 약 3분의 1이 국외에 거주하고있고 약 3분의 1이 농촌을 떠나 도시에 가 일하거나 상업에 종사하고 있어 나머지 3분의 1만이 본 지방에 남아 농업에 종사하고있다. 그들중의 일부 사람들은 농한기에 제2, 제3 산업을 겸하여 경영하며 수입을 늘린다.

토지는 우리 나라 농업, 농촌, 농민 문제의 핵심이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토지가 적은 편이다. 조선족농민들이 대량 출국로무에 종사함에 따라 그 토지가 본 지방 혹은 집체경제내부에서 류전됨으로써 한족 및 기타 소수민족들이 토지를 적당하게 집중하거나 규모경영하여 조선족과 함께 공동 부유하는 길로 나아가게 한다. 출국로무는 우리 나라 조선족의 브랜드경제이고 경제발전을 이끄는 최대 기둥산업이다.

실천이 증명하다싶이 로무경제는 인민들을 부유하게 하는 민본경제이고 가지속적인 환보경제와 생태경제이며 지역적인 특색경제이다.

로무인원을 송출하면 인재를 끌어들이고 로동력을 송출하면 창업자를 끌어들이고 생산자를 송출하면 경영자를 끌어들이는 로무경제의 작용은 거대하다.

로무경제는 본 지방의 취업압력을 완화했을뿐만 아니라 사회진보를 추진한 동시에 부분적 조선족 군중들이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해지고 창업의 길에 들어서도록 길을 넓혀주었다.  

길림신문/ 원제목 : 로무경제가 급격히 발전한 민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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