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꿔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절망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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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꿔준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절망속으로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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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추적- ‘장한평’의 정체를 밝힌다

인생을 바꿔준다는 감언이설에 쉽게 넘어가

절망의 수렁에 빠진 피해자들 진술서 편단  


(흑룡강신문=하얼빈) 연변 왕청 박연(가명,68세)

나는 식구들의 기대를 안고 한국에 왔다가 지금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변의 한 시골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니 가정의 기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혈압이 높고 운신이 힘드니 한 달 겨우 60만~70만원 봉급을 받으며 가정부 일을 하였다.

그렇게 아득 바득 모은 돈을 고향에서 온 짜개바지 친구의 달콤한 소개를 듣고 (주)나눔의 사람들(이하 ‘나눔’으로 약칭)에 전부 밀어 넣었다.

힘들게 모은 돈이라 불안감을 달랠 수 없어 당일 오후 친구를 찾아 그 돈을 돌려 달라 했다. 하지만 친구는 꼭 좋은 일이 있으니 돈은 절대 돌려줄 수 없다며, 만약 약속대로 수당이 나오지 않으면 자기가 책임지고 갚아준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간경화로 앓고 있는 남편은 요즘 병세가 점점 엄중해져 아들이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지만 보낼 돈이 없어 심리상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내가 비록 늙은 몸이지만 한국에 나온지 몇 해 되니 얼마간 돈은 벌었겠다고 짐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에 와서 가정부로 일하며 절로 옷 한 벌 사 입은 적 없다. 그동안 모두 주인아줌마가 주는 옷을 입고 다녔다.

며칠씩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있다.

 
연길시 최경순(가명,62세)

지난해 11월 고향친구를 따라 ‘나눔’을 찾아갔다. 하지만 제품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여차여차하게 좋다는 이론만 풀어 다단계라는 짐작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이 지나 팀장 둘이 우리 집까지 찾아와 20%만 되면 한 달에 200만-400만 수당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누구 장모는 연세가 70인데 한 달에 300만원 이상씩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당에서 힘들게 일해도 한 달에 얼마를 버는가 하며 가입해서 고객 3명만 소개하면 평생 걱정이 없다고 하였다.

그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330만원 넣고 고객도 중요한 자리인데 첫 고객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넣으라고 하여 형부 등록증과 통장을 빌려 아들 몫으로 가입하였다. 중국에 들어가면 이름을 고쳐 주고, 언제까지 아들의 이름으로 상속이 된다고 하여 또 330만원 넣었다.월 수입이 150만원 되는 식당을 그만두고 ‘나눔’ 5개월 출근하는 동안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밖에 다른 친척까지 소개하여 피해액은 도합 1430만원에 달한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미친 짓을 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길림 서란 황설화(가명, 60세)

금년 2월 하순의 하루, 나는 몸이 아파 병 보러 갔는데 친구가 병원까지 찾아와 집으로 놀러가자고 하였다. 몸이 좋지 않고 외롭던 차라 나는 친구를 따라갔다. 저녁식사 무렵 낯선 사람이 하나둘 찾아들었다. 식사가 끝나자 친구는 야간근무라며 나가고 낯선 사람들이 저를 자기네 차에 태워 어디론가 갔다.

이튿날 일어나 내가 정신도 차리기 전에 그들은 ‘나눔’의 회사를 소개하며 비전을 들려주었다. 내가 집으로 가려해도 그들은 한사람씩 바꾸어가면서 점식과 저녁을 함께 먹으며 연필과 종이를 들로 빨리 가입하라고 독촉했다. 일정 직급에 도달하면 한 달에 몇 백만 원 봉급이 보장된다는 등등의 좋은 말을 되풀이하여 저는 어리둥절한 김에 330만원 넣었다.

얼마 후 직업을 그만두고 회사의 요구대로 ‘나눔’에 출근하였다.

첫 며칠은 회사의 비전을 들을수록 당장 부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맨 먼저 동생을 찾아 얘기했더니 동생은 당장에서 고함지르며 다단계라고 말을 더 꺼내지 못하게 하였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동생네 집을 나와 교회에 거처를 잡았다.

그동안 미움을 사고 비웃음도 받았으나 양심상 가책으로 다른 사람을 가입시키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된다.

 
연변 도문 채란(가명,57세)

2009년 11월 중순, 지인의 소개로 ‘나눔’에 들어가 청부정신, 기러기정신, 공동부유 등 정신문화강의를 들었다. 얼마 후 동생의 돈 900만원 꿔서 남편, 올케까지 하여 3명의 이름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한 달이 못 지나 반품을 요구했으나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얼마 후 신문, 방송에 ‘나눔’의 회사가 불법다단계업체란 사실이 폭로되며 사기행각에 말려들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4년 동안 월 150만원 받으며 간병 일을 하여 큰아들 석사(한국),작은 아들 중국 미술학원을 졸업시켰지만 큰아들 박사 공부시키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돈을 쉽게, 많이 벌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나눔’에 가입했던 것이다. 하지만 후에 사람을 소개하지 못하니 회사 측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들은 내가 중국에 집이 두 채 있다는 정보도 알아 내여 왜 중국에 집을 팔고 이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가고 했다.

하지만 이때는 내가 이미 ‘나눔’의 본질을 간파하였으니 더는 그런 바보짓을 할 수 없었다.

 
장춘시 김일선(가명, 56세)

저는 중국에서 남편이 사고로 돌아가고 집도 없는 상황에서 돈 벌어 집을 사려는 꿈을 안고 한국에 왔다. 현장에서 월 160만원 받으며 피땀을 흘려 모은 돈을 한고향친구의 꼬임에 넘어가 ‘나눔’에 밀어 넣고 말았다. 지금은 빚구럭에 빠져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

친구가 어떻게 저의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어느 날 여락이 와서 힘든 일은 그만두고 자기한테 돈을 많이 버는 자리가 있다며 오라며 거듭 독촉하였다.

처음엔 별로 믿고 싶지 않았으나 현장일이 너무 힘들어 몇 달 후 친구를 찾아갔다.

그들의 선동에 너무 쉽게 넘어가 2009년 6월, 나는 자신과 조카 이름을 빌어 중국에 있는 딸의 몫으로 도합 600여만원 넣었다. 그동안 ‘나눔’에 다니며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있던 밑천을 전부 말아먹었다.

‘나눔’이란 회사가 사기집단이란 걸 알았을 때는 커다란 심신의 충격으로 삶에 용기마저 잃게 되었다.

지금은 몸이 불편하여 단돈 10만원을 벌기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연변 용정 전화실(가명,66세)

여러 해 전 한국에 와 스스로 노후대책을 마련한다고 식당일, 간병 가리지 않고 다니며 돈을 모았다.

그런데 한 고향 사람의 소개로 ‘장한평’에 발을 들여놓으며 피땀으로 모은 돈을 전부 날리게 될 줄이야!

몸이 허약한 나는 후한 수당 외 병원비 전담, 노후생활 보장 등등의 선동에 넘어가 한 달 사이 아들, 딸의 이름까지 빌어 2천만 원 넘는 돈을 넣고 물건을 주는 대로 가져왔다. 얼마 후 잘못된 일이라 생각되어 반품을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고향 사람은 견지하면 된다고 계속 회사출근을 요구하고 가까운 사람을 계속 불러들이라고 성화였다.

나는 밥맛이 없고 잠을 잘 수 없어 우울증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눔’의 회사는 이처럼 많은 돈을 얼려내고도 갖은 핑계를 대며 물건을 구매한 영수증을 주지 않았다.

한국에 와 재가하여 남편 모르게 돈을 밀어넣었는데 내 힘으론 영수증을 받아올 수 없으니 남편한테 실토했다. 처음 남편도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은 돈을 밀어넣을 수 있는가 의심하며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너무 조르니 어느 날 술을 서너 잔 마시고 배짱을 키운 다음 ‘나눔’의 회사를 찾아가 한바탕 소동을 피워서야 영수증을 받아내게 되었다.

참으로 남펀에게 미안하고 아들딸에게 미안하다.

간병을 하다 다친 한쪽 어깨가 너무 아파 쳐들기조차 힘들다. 그리고 주머니가 말랐으니 요즘도 가끔 간병을 다닌다. 스스로 저지른 일이고 또 밥을 먹어야 하니 힘들어도 절로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   

 
연길시 최현(가명,53세)

몸이 불구인 나는 2008년2월 한국에 왔으나 일자리를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이렇게 사처로 헤매며 다니던 중 한 친구의 소개로 ‘나눔’의 회사를 알게 되어 그럴듯한 강의를 들었다. 더구나 회사가 장차 연길로 진출한다니 귀가 더욱 솔깃해서 주머니에 있던 150만원을 털어내었다.

이 돈이 회사설립자 문××에겐 하찮은 수자이겠지만 저한테는 명줄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에 온지 1년이 넘도록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무런 소득이 없었으니 말이다.

수많은 동포피해자들과 같이 ‘나눔’의 회사를 생각만 해도 가슴에 원한이 북받쳐 오른다.

지명수배 중에도 배후에서 출몰하고 조종하며 갖은 계책으로 물정모르는 동포를 무차별 함정에로 유인하고 있다는 문××와 그 일당을 하루빨리 처단하기를 손꼽아 기대한다.

 
연변 강순화(가명,61세)

한국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저는 지난해 몸이 불편하여 몇 달간 쉬는 동안 우연한 기회에 ‘나눔’의 회사를 소개받았다. 강의를 들어보니 너무나 좋은 회사였고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어 몇 해 간 모아두었던 돈을 여러 사람이름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하지만 가입해서 닷새 만에 매일 같은 얘기를 곱씹는 연사들이 수상쩍게 여겨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품요구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회사로 가져갔던 물건을 다시 고시원으로 실어와 한바탕 싸웠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중에 나는 간질병환자이고 정신병도 앓은 적 있다했으며, 기어이 반품해주지 않으면 회사건물에서 뛰어내리든가, 아니면 길가에 나가 차를 들이받고 죽겠다고 떠들어대서야 겨우 700만원어치 물건을 반품했다.

하지만 나의 총 투자액수는 2400만원이니 이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동안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온몸이 성한데 없으니 지금은 일자리를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연변 화룡 장길운(가명,45세)

저는 2009년 한국에 나와 있는 이모님의 소개로 ‘나눔’의 회사에 가입했다.

당시 1년이면 중국에 집도 살수 있다고 선동했지만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회사에 오래 다니지 않고 인차 현장으로 일하러 나간 것이었다. 회사측은 계속 출근하지 않았기에 돈을 못 벌었다고 했지만, 저의 이모님은 8개월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다녔고 조카, 오빠를 비롯한 친척과 친구들까지 10여명 소개하여 4천여만원 밀어 넣었지만 돈을 벌지 못하였다.

나중에 집세마저 낼 수 없게 되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다시 일자리를 찾아나갔다.

이모님은 친척, 친구들한테 너무 죄송하다며, 저한테도 전화를 걸지 못하고 혼자 눈물을 흘리며 속을 태우고 있단다.

흑룡강신문사(한국지사)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얼마라도 보상받을 수 있다면 그동안 원이 다소나마 풀릴 것 같다.

 

연길시 전화자(가명,48세)

2008년 11월 친구가 얼굴보자고 약속하여 찾아갔다가 ‘나눔’을 알게 되여, 근 10년 동안 힘들게 식당일을 하며 모은 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다.

저는 돈을 넣고 물건을 구매하면 직급을 올려주고 수당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말에 오빠, 올케언니, 사촌언니, 친구, 친구 남편 등을 동참케 하여 무려 5천만원이 들어갔다.

저는 오빠 몰래 넣었다가 나중에 알게 되여 회사에 나와 보니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되어 오빠한테 된욕을 먹었다.

오빠는 화병으로 뇌출혈이 와 경희대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 겨우 목수을 건지었다. 회사 측은, 가입자는 병원비를 전담한다고 선동했지만 병원앞에 얼씬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나눔’에 출근하며 몇 달 동안 벌지 못하고 카드빚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옷도 변변히 입지 못하여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천덕꾸러기 신세로 살고 있다. 다단계에 다니다보니 얼굴 들고 나가 다닐 면목도 없어졌다.

돈을 넣었으나 500만원 이상 되는 물건은 아직 받지도 못하고 영수증도 주지 않았다.

지금은 죽지 못해 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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