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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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비애'
  • 정인갑
  • 승인 2010.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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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갑 칼럼

필자가 붙은 북경대학 중문계 고전문헌(古典文)은 3천여년전의 갑골문으로부터 1919 년까지의 고서를 연구, 정리하는 학문성이 강한 전공이다. 그러나 배우기 매우 어려우며 특히 높은 고한어수준을 요구한다. 필자의 고한어 수준은 좀 높은셈이지만 우리 반에서는 낮은편이였다. 나이 31살인 필자가 잘 배워내겠는가가 문제다. 필자는 북경대학 중문계 력사상 첫 조선족이고, 어떤 사생들은 조선족을 처음 보며, 필자를 외국인으로 착각하는자도 있었다. “우리가 100점 맞을때 정인갑이 60점만 맞아도 천재로 인정하겠다”라는 뒷공론을 하며 찬물을 끼얹는자도 있었다.

하루는 전공책임자(교연실주임 겸 당지부서기) C교수가 다른 전공으로 바꿀 생각이 없나고 물었다. 필자 문: “전공을 바꿀수도 있나?” 답: “바꿀수 없다. 그러나 당신은 례외로 바꿀수 있을듯 하다” 문: “무엇으로 바꾼단 말인가?” 답: “문학, 신문학중 아무나(77학번에 어학전공이 없었다). 입학전 <연변문예>의 편집을 하였으니 문학 전공이 좋을듯 하다.” 필자 답: “좀 생각해보고 며칠후에 알려주마.” C는 “중문계 학생으로서 문학전공으로 바꿔준다면 누구나 당장 ‘만세’를 부를텐데…당신은 좀 이상하다.”라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며칠후C교수가 또 찾아왔다. 필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바꾸지 않겠다고 하였다. C교수는 왜 바꾸지 않으려나를 캐고 물었다. 필자는 “문학에 취미가 없다…사실은 취미가 없는것이 아니라 참 문학을 하기 너무 어렵다. 자칫하면 정치의 곁다리가 되여 ‘비애(悲哀)’에 빠지기 일쑤다.”라고 한 뒤, 필자경력의 례를 들어가며 문학에 대한 견해를 진지하게 토로하였다. 또 “필자의 고한어수준이 나리므로 바꾸라고 하는것 같은데 열심히 공부할터이니 걱정말라”라고 하였다.

C교수는 필자의 손을 굳게 잡으며 “대단하다. 당신같은 사람 처음 본다. 고전 전공에 성공하기를 축하한다” 라고 말하고 당장 필자를 반 당지부서기로 임명하였다. 1년쯤 지난후 필자가 전공을 바꾸겠다고 떼질쓸때 할 일을 앞질러 한 원인은 당지부서기 임명문제때문이였다. 필자는 반에서 상위성적으로 고전문헌을 졸업하고 중화서국에 발령받아 근무하다가 2년전에 은퇴하였다. 33년이 지난 오늘, 인생을 마감하는 이 시각, 필자는 가끔 그때의 일을 회고하군 하며 문학전공으로 바꾸지 않은데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필자는 군에 있을때 련대의 벽보를 5년반동안(1969,12~75,4) 도맡아하며 벽소설, 시, 수필 등을 적어도 200편은 썼다. 장춘도서관의 공농병도서평론원을 하며 많은 작품을 비판했었다. 필자의 역작이 <시간詩刊)>, <인민문학(人民文學)>에 실린적도 있다. 가석한것은 필자가 10년간(1969~78) 한 상기의 문학은 대부분 문혁, 사인방, 모택동, 화국봉을 찬양했거나 계급투쟁설에 너무 집착한 것들, 모두 문학적가치가 없어 버릴 것들이다. 시대의 오해에 빠진 정치고취수(吹鼓手) 노릇을 했으며 10년이란 가장 보귀한 청춘을 랑비한셈이다. 이것이 그래 “비애”가 아니란 말인가?

“당신은 왜 특정국가(중국)의 특정시기(문혁)를 거들며 ‘문학비애설’을 고취하느냐?” 라며 필자를 반박하는자가 있음즉 하다. 우선 특정시기만인가 보자.

1950년대부터 반세기간 중국의 문학작품에는 거의 “국민당은 가짜 항일, 진짜 반공, 공산당만이 진짜 항일”로 돼있었다. 최근 몇년간 민진당의 대독(台獨)을 반대하며 공산당과 국민당은 다시 손잡았고 국민당의 항일을 반영한 작품들(텔레비전 드라마 등)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국민당군이 항일의 주력군이였음을 우리는 비로서 알게 되였다―국민당안의 극히 개별적인 군통(軍統)특무만이 가짜항일, 진짜반공이였다는 단서가 있기는 하지만. 반세기간 그런 작품만 쓰던 작가들이 물먹고 싱거워진 셈이다. 앞으로 혹시 국민당이 집권여당이 된후 대독을 하거나 이전처럼 철저한 반공, 반대륙을 하면 지금의 작가들이 또 물먹을듯 하다. 그래 ‘문학의 비애’가 특정시기 뿐이란 말인가!

중국의 망명작가 고행건(高行健)의 소설<넋(魂)>이 200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고행건의 창작수준이나 <혼>의 수준은 3류에 불과하다. 단 그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중국을 폄하한 내용이 서방세력의 마음에 든것뿐이다. 님 웨일스의 <아리랑>이 노벨문학상을 받을수 없은것은 중국공산당의 혁명을 긍정하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서방국가에도 ‘문학의 비애’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시말해 ‘문학의 비애’는 특정 국가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다만 중국과 같은 일당독재의 나라에 이런 ‘비애’가 더욱 심각할 따름이다.

북경대 시절의 어느날 필자는 술 둬잔 마신김에 필자의 문학개론교수와 한담한적이 있다. 필자 문: “정치가 작용하는 한 문학의 현실주의가 가능한가?” 교수 답: “구체적 으로 말해보라.” 문: “모택동 왈: ‘구중국때에 민족단결도, 민족압박도 다 있었다. 민족압박이 주요였다. 소수민족에 대한 대한족의 압박, 대한족에 대한 소수민족의 압박이 다 있었다. 소수 민족에 대한 대한족의 압박이 주요였다.’ 이 말이 맞는가?” 답: “맞을거다.” 문: “그런데 왜 대한족이 소수민족의 압박에 반항한 작품은 많아도 소수민족이 대한족의 압박에 반항한 작품은 없나? 현실주의인가?” 답: “전해진 작품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문: “만약 발굴하면 얼마든지 있다. 소수민족들은 쓰지 않을 것이고…, 인디언이 백인의 압박에 반항한 작품은 백인들이 썼다던데…당신네 한족들 이런 작품을 쓸 아량도 없나?” 그는 침묵을 지키며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보면 결국은 ‘문학의 비애’라고 하는것이 맞을듯 하다. 문학이 정치와 너무 밀착되였기 때문에 생기는 비애이다.

물론 정치를 떠난 문학은 있을수 없다. 따라서 눈앞의 정치를 도해하는 작품을 쓰며, 오늘 썼다가 래일 팽개치는 ‘일회용작품’을 달갑게 쓰는 작가가 있을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작가는 극히 개별적이며 절대다수의 문학도는 이런 문학을 원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참문학은 특정시대의 특정인간의 내심세계를 각색(刻色)하는 것이다. 그 특정시대의 정치배경을 수도꼭지물로 부처넣는것이 아니라 해면에 스며있는 물처럼 서서히 증발돼 나오거나 먼 곳에서 은은히 풍겨오는 냄새여야 한다. 그래야 그 작품은 어느 계급, 계층이든 다 자기 나름대로 즐겨보고 오래 가도 생명력이 있다. 문학은 철학, 정치학, 력사학…과 구분되는 ‘인간학’이다. 문학명작은 대부분 이런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을 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978년 필자가 번역하여 <인민 문학>에 실린 단편소설 <花尼和伊尼(꽃분이와 이쁜이)>(차중남 저)를 보자. 서로 절친한 &#45007;분이와 이쁜이가 같이 대입시험을 치렀는데 이쁜이만 붙고 꽃분이는 못 붙었다. 작품은 락심하지 않고 농촌에 뿌리박고 화국봉주석을 모시고 공산주의를 위해 평생 분투하련다는 꽃분이의 ‘숭고한 사상’을 구가하였다. 본문을 쓰며 다시 한번 읽어보니 탐탁치가 않다. 그때는 문혁이 끝났고, 4인방문학을 비판한지 거의 2년이 되며, 필자가 최고학부의 먹물을 한동안 먹은때이며 연변의 문학작품 수십편중에서 필자 나름대로 세심히 고른것인데 결국은 헛탕쳤다.

문혁의 그 살벌한 시기에도 참문학의 우수한 작품이 나왔는데 왜 필자는 헛탕칠수 밖에 없는가? 냉정히 사고해보면 관건은 필자의 수준문제이다. 문학에 대한 리해가 높고 문학적기질을 진정 소유한자라면 어떤 정치분위기속에서도 좋은 작품, 심지어 명작을 내놓을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폐품밖에 내놓지 못한다. 문학은 아무나 하는 학이 아니다. 이렇게 볼때 본문의 제목 ‘문학의 비애’를 ‘문학도의 비애’로 고쳐야 맞다. 문학 자체에는 비애가 없다. 단 문학을 하면 이런 비애에 빠지기 쉬우므로 본제목을 방임할뿐이다.

필자의 문학에 대한 리해수준, 필자의 문학적기질의 정도, 필자가 문학을 하여 성공할 확률 등을 면밀히 검토한 나머지 필자는 고전문헌전공을 선택하였다. 필자의 고전문헌에 관한 저서, 필자가 집필했거나 주관한 사전&#8226;자전&#8226;교과서, 필자의 손을 거친(필자가 책임편집을 한) 문사철 도서 등은 몇십년, 몇백년, 심지어 천년이 지나도 가치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될 가능성이 많다. 문학을 한것보다 더 높은 인생의 가치를 실현했기 때문에 당초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것이다.

1949년부터 지금까지 60년간 문학에 쏠렸던 우리민족의 청소년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200만 우리겨래의 인정을 받을만한 문학가가 60명쯤 될까? 13억의 인정을 받을만한자는 6명쯤 될까? 이 60명 또는 6명의 작품에도 생명력이 길어서 10여년, 짧으면 3~5년밖에 안되는, 참문학에 못미치는 작품이 적지 않다.

청소년들은 자칫하면 문학에 쏠리기 쉽고, 또 중소학교 어문교원들은 학생들을 무작정 문학으로 유도하는데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성공확률이 1%도 되나마나하 는 문학에 뛰여들어 보귀한 청춘을 랑비하지 말고 그 정력으로 다른 무엇을 하면 더 좋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 바란다. 필자처럼 문학적 재질이 없는자가 무작정 문학에 뛰어들었다가 10년, 심지어 평생을 랑비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문학을 하다보면 자칫 비애에 빠지기 쉽다. 문학은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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