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류수필가 월당(月堂) 조경희(趙敬姬, 1918~2005) 선생이 수필 「얼굴」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학교[고등보통학교=중학교] 일학년 때라고 생각된다.
나하고 좋아지내던 상급생 언니가 나를 통해서 알게 된 내 친구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 한꺼번에 두 가지를 잃어버렸다.
지금까지 언니처럼 믿고 의지해 오던 상급생 언니,
그리고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절친한 친구를 한꺼번에 잃은 섭섭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나는 내 친구가 나보다 뛰어나게 예쁘기 때문에 사랑을 빼앗겼다는 자격지심으로 미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왜 나를 보기 싫게 낳아 주셨느냐?"
고 원망스러운 항의 편지를 보냈다.
회답의 내용이란 대략,
인간은 얼굴이 예쁜 것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마음이 아름다워야 사람 노릇을 한다고 타이르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외모가 예쁘고 미운 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나에게 아버지의 하서(下書)가 위로가 될 리 만무하였다.
당시에는 별로로 여겼던 이 말을 이화여전[이화여대]에 다닐 때에야 옳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졸업반일 때 대학에서는 장래의 교사로서 머리를 길고 단정하게 하고 다니게 했다.
그런데 선생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
이에 심하게 꾸중을 듣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는 선생이 아니고, 신문기자가 될 겁니다.”
그리고 선생은 이때부터 당당하게 살고자 하였다.
선생은 대학시절에 김상용, 피천득 시인한테서 문학 교육을 받았다.
특히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집』 강의를 듣고는 그 책을 독파하였다.
그리고는 이런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수필가가 된 것이다.
평범한 얼굴에 덥수룩한 머리,
기자로 논설위원으로, 문인으로 예총회장으로,
정무장관과 예술의전당 이사장 등 행정가로,
다방면으로 많은 활동을 하며 우수한 여러 수필과 글들을 남기신 선생님의 힘이
어디서 생겼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