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있다.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차마 하지 못할 것도 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나 하지 않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면 대개 법도에 어긋나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한다는 것은 법도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짓이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어떤 이유나 명분을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문명이 가장 발달했다는 20세기에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2008년 5월 인터넷 기사에 이런 사실이 올랐다. 4월말에 영국의 가디언지가 보도한 내용이다.
1906년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 우리에 피그미족 남성이 전시되었다. 이름이 ‘오티 벵가’인 그는 1904년 콩고 전쟁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잃고 미국으로 팔려갔었다. 당시 동물원 관계자들이, 인간이 영장류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관람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이를 기획했다.
벵가는 동물원 우리에서 오랑우탄과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을 했는데, 잠도 원숭이 우리 한 쪽에 마련된 그물침대에서 잤다. 관람객들은 150㎝의 키에 몸무게 46㎏밖에 안 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생생하게 구경했다. 이렇게 그 사내는 한동안 동물원에서 동물처럼 구경거리로 살았다.
이 전시는 곧 인종차별의 논쟁이 붙고 비판을 받았다. 동물원을 떠나게 된 그는 맨손으로 굴뚝에 올라가 일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버지니아주 린티버그의 담배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나 32살이었던 그는 1920년 권총 자살을 하고 말았다.
동물원의 오랑우탄과 원숭이 우리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던 사람, 사람이면서도 동물처럼 전시된 삶을 산 오티 벵가. 그러나 그는 결코 동물이 아닌 인간이었기에 끝내 32살의 나이로 자살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은 자신을 동물원에 전시한 사람과 그 기획자들에게, 나아가 자기를 동물처럼 구경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사람이다. 결코 동물이 아니다’ 하고 확실하게 선언한 것이다. 죽기 전에 혼자 피그미족의 춤과 종교의식을 행한 것은 인간이었음을 증명한 것이고, 인간으로서의 강한 항의였던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너대니얼 호손(N. Hawthorne, 1804~1864)의 대표작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1850)에 간음죄의 표시인 주홍글씨 ‘A’자를 달게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과연 주홍글씨 ‘A'자는 누가 달아야 옳을까? 간통을 한 헤스터 프린일까, 사생아의 아버지인 아서 딤스데일 목사일까? 소설은 간음을 한 당사자가 아니라,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되어버린 당시 미국 사회의 미국인 모두인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동물원에 사람을 동물처럼 전시하고, 그 사람을 많은 사람들이 동물을 대하듯이 구경하다. 과연 누가 동물일까? 동물로 전시된 ‘오티 벵가’일까? 아니면 그것을 기획한 동물원 사람들일까? 아니다. ’A'자를 달아야 할 사람이 당시 미국인 모두였던 것처럼, 동물은 ‘벵가’가 아니라, 그런 일을 저지른 백여 년 전 당시의 미국인 모두가 해당된다.
아무리 미개하고 못나고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사람은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을 동물원에 전시한 것은 차마 하지 못할 일을 한 짓이다. 그것도 다수가 공공연히 관람을 했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변명될 수 없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인간으로서는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했을 때, 우리는 ‘짐승 같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 한다. 특수한 경우 특별한 한 사람이 그런 짓을 해도 비난을 받는데, 하물며 다수가 공공연히 그런 것이다. 사람이 사람 노릇을 못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인데, ‘짐승 같은’ ‘짐승만도 못한’ 것이 되지만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