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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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노동자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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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82'

 대학에 근무할 때 한 교수가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교수도 노동자이니 노동조합을 만들어야지요.”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노동이 아닙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말했다.

 “막노동을 하든, 강의를 하든 봉급을 받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닌가요?”

 나는 그 젊은 교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과 스스로 계획해서 일하는 것은 같은 게 아니지요.”

 나는 몇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하게 하였다.

 계획하여 명령하는 장교와 시키는 대로 행하는 사병.

 생각대로 운전하는 자가용 기사와 정해진 대로 운행하는 노선버스의 기사.

 스스로 찾아 먹는 야생 동물과 주는 대로 먹는 가축.

 전자는 일을 삶으로 여기지만 후자는 노동으로 여깁니다.

 그래도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면, 재단에서 부당하게 처사를 하는데도 가만있을 거예요?”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해서 더 잘 개선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자 그가 강하게 말했다.

 “뭉쳐야 힘이 생기고, 그래야 투쟁할 수 있지요.

 교수 개개인이 무슨 힘이 있어요.“

 나는 그가 집단의 힘을 이용하려는 뜻을 알았다.

 “교수들이 좋은 제의나 주장을 펴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요.

 옳은 의견을 따라주고 지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의견을 모으고 뭉치자고 단체를 만들자는 거라 했다.

 “단체를 만들면 결정에 무조건 따라야 하게 되지요.

 더구나 비회원들과는 점차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분파는 갈등을 낳고, 갈등은 파쟁을 가져옵니다.

 잘 해보자고 뭉친 것이 결국에는 파쟁이 되기 쉽습니다.

 나는 바로 그것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 교수는 나를 노조 결성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치부했다.

 방을 나서는 그에게 나는 한 마디 더했다.

 “대화와 설득과 호소는 항의와 시위보다 더 좋은 삶입니다.

 교수가 노동자로 여기면 그 순간부터 교육자가 아닙니다.”

 그는 말없이 뒤돌아보고는 나갔다.

 그리고 결국 찬동하는 이들끼리 교수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 뒤 대학은 조직원과 비조직원 집단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매사 두 세력의 대결 양상이 한 동안 지속되었다.

 

 교육은 사명감이 중요하다.

 그래서 성직(聖職)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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