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구정을 지나면서 조선족 젊은 지식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해 미국, 일본, 중국, 베트남에 계신 분들과 함께하는 토론이기 때문에 더욱 뜻 깊습니다. 먼저 제가 사회도 볼 겸 말문을 열겠습니다. 그러면 다른 분들이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첫 번째 문제제기는 지난 5년 반 동안 서울조선족교회 목회를 하면서 생긴 가장 큰 의문은 왜 내 눈에 동포사회의 진정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가하는 점입니다.
조선족영도로 불리우는 분들은 제가 볼 때 진정한 지도자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단지 중국에서 출세한 사람들로 중국정부의 눈에 나지 않으면서 조선족사회를 유지시키는 처세에 능한 분들인 것 같습니다. 과연 조선족사회에 조선민족으로서의 기개와 뱃장을 가지고 조선민중의 지지를 받으면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분이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또 만일 그런 분이 있다면 왜 아직까지 제가 모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사회에도 在野인사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힘이 약할 수는 있어도 너무 중요한 존재입니다. 국민이 그분들의 말을 들으면서 민족의 방향을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6,70년대 이후로 재야운동이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정부에 의해 억압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가택연금당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이분들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자유와 민주주의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족사회에는 在野인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만일 중국에 있기 어렵다면 한국, 미국, 일본에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재야인사들은 적어도 다음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그분들은 중국을 사랑하면서 중국과 한국이 좋은 관계 속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중국정부를 향해 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중국의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일을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중국은 북한 김정일 정권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 탈북자를 북한에 강제송환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 고구려역사는 한민족의 역사라는 점 등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하는 조선족지식인을 찾아보기 힘듭니까?중국으로 돌아가면 감옥에 갈 수도 있어서 할 수 없이 한국에 망명을 신청하는 그런 조선족지식인이 왜 없습니까?
둘째 북한출신 조선족, 일본계 중국인, 동남아 화교들은 다 고향에 돌아가 살 권리를 인정받고 본인의 희망에 따라 중국에 살든지 혹은 북한, 일본, 동남아에 살든지 하는 선택권을 중국정부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남한출신 조선족 역시 중국국민으로 살든지 한국국민으로 살든지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운동을 하는 조선족지식인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선족동포들이 원하면 한국국적을 주는 운동을 서울조선족교회가 전개하려고 하니 연변의 조선족 지도자가 말하기를 “우리 조선족은 한국국적을 원치 않는다. 우리에게 한국국적을 주려고 하는 것은 조선족사회를 망치는 행위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개탄스러웠는지 모릅니다. 동포들은 한국에서 살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데 조선족지도자들은 혹시나 국적회복운동으로 자신들의 지위가 흔들릴까 두려워서 한국국적을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도 중국사람들이 무서운가? 당신들이 원할 경우에만 한국국적을 주겠다는데도 그런 말을 하면 우리는 큰일납니다라는 식으로 벌벌 떨고 있다"고 한심해 합니다. 그냥 “우리에게 국적회복의 선택권을 주니 참으로 고맙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중국국민으로 살겠다.”라고 말하면 그만인 일인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조선족지도자의 모습을 보면서 민족적 자존심조차 다 잃어버렸다는 개탄이 앞섰습니다.
이제 앞으로 몇 달 후에는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조선족동포들에게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가 있는가의 여부에 대한 판결을 할 것입니다. 이 판결이 어떻게 되는 것을 조선족지식인들은 원하고 있습니까? 왜 당신들의 권리에 관한 사안인데도 이렇게도 말이 없습니까? 서울에서 만나는 조선족유학생들은 대부분 개인주의자들인 것 같습니다. 자기 장래에만 관심이 있지 조선족의 장래에 대한 고민이 너무 없습니다. 그러하니 동포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지도자 없이 민초들만 들풀처럼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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