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근 서예작품 창작이론
서예는 단순한 손글씨가 아닌 문자예술이란 뜻으로 글씨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통해 미(美)를 추구하여 표현하는 예술이다. 예로부터 많은 서예가들이 서예의 예술성에 대해 연구와 실천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서예는 필법과 먹법, 구성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조형예술이다"라는 결론을 얻어냈다. 쉽게 말하면 서예의 예술성은 먹의 짙고 옅음, 획의 굵고 가늠, 선의 길고 짧음, 획이나 문자의 배열 등에 의하여 미를 표현하는 예술이다. 즉 서예는 점과 선, 획의 태세, 장단, 필압 강약, 경중, 운필의 지속과 먹의 농담과 문자 상호간의 비례 균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미묘한 조형미가 이루어지는 조형예술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예의 예술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가장 쉬운 방법은 서예와 음악을 융합시키는 것이다. 이 방면에 대해 서예가들은 많은 실천을 해 왔지만 그 속의 법칙에 대해서는 아직 정론이 없다. 그럼 아래에 필자와 함께 그 법칙에 대해 연구해 보자.
음악에는 리듬이 있다. 즉 4분의 4박자는 "강, 약, 중강, 약"으로 표현된다. 4분의 3박자는 "강,약,약"으로, 4분의 2박자는 "강, 약"으로 표현된다.
그럼 이것을 서예와 결부시켜 보자. 서예작품의 소재는 대부분 시구나 명언이다. 한편의 문장은 여러개의 단어(조사 포함)로 구성되었으므로 매개 단어를 한소절로 본다. 그러면 한소절이 네 글자로 이루어졌을 때는 4분의 4박자로 보고 그 글자들을 각각 "강, 약, 중강, 약"으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다시말하면 첫글자는 "강박자"이기에 먹색을 짙고 획이 굵게 그리고 크게 쓰며 다음글자는 "약박자"이므로 좀 작고 가늘게 쓴다. 세번째글자는 "중강박자"이기때문에 첫글자보다는 작고 옅게 처리할 수 있으며 마지막글자는 작고 가늘고 먹의 농도를 옅게 혹은 마른 먹으로 처리할 수 있다.한 단어가 세글자 혹은 두글자로 구성되었을 때는 각기 "3/4박자", "2/4박자"로 보고 위의 방법대로 표현 할 수 있다. 한글자로만 이루어진 단어는 옹근소리로 보아 강 혹은 약박자를 자유롭게 택하여 표현 할 수 있다.

매개 글자 내에서도 강약처리를 잘 해야 한다. 한 글자 내의 모든 획을 같은 굵기로, 같은 농도로, 같은 형식으로 쓴다면 매우 단조로울 것이다. 먹색, 운필속도, 획의 굵기, 선의 길이 등을 변화무쌍하게 처리하면 절주감이 강해 질 수 있다. 특히 같은 방향의 획을 똑같게 쓰는 것을 절대 피해야 한다.
한 획에도 강약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세로획을 그을 때 궁체에서는 가늘게 입필하여 머리를 굵게 만든 다음 점차 가늘게 처리하며 마지막 부분은 붓끝을 뽀족하게 처리한다. 판본체나 전서의 경우에는 획의 굵기가 균일하지만 첫부분은 올챙이 머리모양으로 몸통보다 굵게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 현대 서예가들의 작품을 관찰해 보면 행과 행사이, 공간과 공간 사이에도 당약처리를 한다. 한점의 작품에서 한쪽 끝에 먹색을 짙게 처리하여 중후한 감을 주고 한쪽은 아주 옅게 처리하거나 공백으로 남겨두어 선명한 대조를 이루게 하지만 사실상 감각 상에서는 아주 온정되고 예술적색채가 짙어진다. 물론 이상의 필법은 해서나 예서 등 바른 글씨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고 행초서나 현대서예 등 비교적 자유스러운 서체에 사용할 수 있는 수법이다.
음악은 조식관계와 절주관계로 독립적인 단성음부들의 조합하에 이루어지는 선률이지만, 서예작품은 매개 글자와 글자사이, 단어와 단어사이, 행과 행사이, 공간과 공간사이의 절주로 이루어지는 선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예작품은 음악작품과는 달리 한 작품속에 여러개의 "박자가 다른 소절"로 이루어진다.
"서예는 무언의 음악이다". 서예가들은 무언의 음악을 창조하는 가운데서 무비의 쾌락을 느낄 수 있고, 감상하는 사람들은 서예작품 속에서 음악적 리듬을 발견하고 그 예술성에 도취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1994년 4월, 5월 흑룡강신문 <서예교실>에 연재로 발표된 문장입니다, 일부 수정하여 재 게재함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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