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아리디동우회에 가입한 촌민들은 오랜 기간(지어 10여 년) 한국에 체류하면서도 기회가 없어 서로 만나지 못한 지난 세월을 안타까워하면서,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손을 잡고 흔들며 그리운 회포들을 나누었다.
화사한 날 벚꽃이 피기 시작한 여의도강변의 경치가 너무 좋았지만, 회원들은 주위 경치에는 아랑곳없이 환담을 하면서 연락번호를 서로 폰에 입력하느라, 또는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오가 되어 사진촬영까지 마친 일행은 드디어 여의도역 5번 출구 옆에 있는 신동양판점으로 이동해 ‘아라디동우회’성립의식과 만찬을 가졌다.
이번 아라디동우회는 아라디목축업회사 이동복 전총경리와 아라디중학교 임훈일 전교사, 아라디촌 김종성 전회계사, 차인석 전촌장의 발족 하에 “아라디촌의 지난날과 앞날을 운운하며 코리안드림의 꿈을 안고 고국에 찾아온 고향사람들이 동우회모임을 가진다면 서로 우의도 다지고 회포도 풀 수 있고, 어려웠던 한국생활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도 털어 버리고 금후에 어떤 어려움이나 고충에 부딪치면 서로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데서 준비위원회설립을 결의했던 것이다.


아라디동우회 임훈일 고문도 축사에서 “코리안드림의 꿈을 안고 한국 땅을 찾아온 고향여러분들이 나름대로 각종 애로사항과 고충이 있었으리라 생각된다.”면서, 앞으로 아라디동우회는 “한국생활에서 부딪치는 각종 애로사항과 고총, 이를테면 임금체불, 교통사고, 산업재해, 결혼, 이혼, 국적취득, 구직 등에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열심히 봉사할 것이다.”고 밝혔다.

만찬이 끝난 후 촌민들은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알라디가 좋아요, 알라리가 좋아요”하고, ‘아라디의 노래’를 열창하며 지난세월의 달콤한 추억과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열망을 마음껏 토로하였다.
중국 영길시 우라가 만족진의 아라디 촌은 중국 전역에서도 꽤 이름이 난 조선족집단마을인데, ‘알라’는 만족어로 ‘언덕’이란 뜻으로, 후에는 순우리말로 토착하게 되었다. 아라디촌은 원래는 갈대밭으로 뒤덮여 있던 땅이었는데 1932년부터 우리민족인 조선사람들이 개간해 해방후 집단 거주하게 되었다. 조선족인구가 제일 많을 때는 거의 1천호 가까이 거주하였는데, 사면이 병풍 같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라디 촌은 일찍 가로세로 네모 반듯 아스팔트길을 닦고 벽돌집을 지었으며, 촌민들도 열심히 일하여 아주 풍요로운 모범촌을 꾸려서 인근에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개혁개방 후 적지 않은 촌민들이 한국에 체류하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었는데, 이번 아라디동우회의 설립은 회원들에게 새로운 응집력과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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