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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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1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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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80>
 뱀이 기다란 몸뚱아리를 끌고 지나간다. 그런데도 소리 하나 없다. 입에서는 갈라진 혓바닥이 연신 날름댄다. 고개를 들고 사방을 바라보는 까만 두 눈은 깜빡이지도 않는다.

   내가 뱀에게 물었다.

   “너는 왜 소리도 없이 다니니? 남 놀라게.”

   뱀이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내가 발도 없이 미끄러져 가는데 소리가 날 리가 없잖은가?”

   “그럼, 혓바닥은 왜 날름거리니? 무얼 그렇게 잡아먹으려 들고.”

   그러자 뱀이 말한다.

   “먹고 싶어서 그러나? 냄새를 맡으려고 그러지.”

   “그것 역시 먹이를 노리는 짓 아니냐?”

   뱀이 좀 기분 나쁜 투로 대답한다.

   “잡아먹기 위해서만은 아니야. 내가 잡아먹힐까 봐서 그래. 나를 해칠 놈이 주변에 있나 없나 살피기 위해서 냄새를 맡는 거야.”

   “맨날 고개를 쳐들고 노려보면서 무슨 소리야?”

   수긍하지 않는 내 말에 뱀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시력이 안 좋아. 그래서 냄새로 사물을 분간해야 하는 거거든. 더구나 몸은 땅에 닿아 있으니 냄새를 맡으려면 고개를 쳐들 수밖에 더 있어?”

   나는 뱀에게 평소에 가졌던 생각으로 이렇게 매도했다.

   “너는 그래도 몰래 다가가 남을 잡아먹으려고만 하는 간사한 녀석이야. 그러니까 독을 품고, 이빨도 한 번 문 먹이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안쪽으로만 휘어 있지.”

   내 말에 뱀은 잠시 화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조용하고 다부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하였다.

   “너는 온몸으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아니?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거야. 거기에다 시력마저 약해 항상 혓바닥을 날름대어 냄새를 맡아 적과 먹이를 구분해야 하니 그것도 얼마나 괴로운 일이냐. 그리고 내가 독을 가지고 있고, 이가 안으로 굽은 것을 탓하다니. 우리는 손도 발도 없고 뿔 같은 것도 없어. 온몸으로 기어다니며 오직 입 하나로만 먹이를 잡아야 하는데 남보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 되는지는 생각 못해 봤지? 독이라도 있어야 잡고, 잡은 것 한 점이라도 다 먹어야 겨우 살 수 있는 처지야. 너처럼 두 발로 뛰어다니며 두 손을 마음대로 쓰고, 거기에다가 연장과 무기까지 사용하는 인간들은 너무 많은 복을 받았지. 그런데도 도리어 꾀를 쓰며 우리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살생을 마구 하니 너희는 우리보다 몇 배 더 사특하고 간악한 놈들이야."

   나는 뱀의 말을 듣고 우리가 뱀을 얼마나 잘못 인식하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단지 그 생김새와 행동만을 보고 나쁘게 볼 뿐 그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가는 전연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사물을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언제나 그렇게 여기며 사는 것이 어찌 이 경우뿐이겠는가?

   갑자기 세상을 다시 보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창세기에 뱀이 인간에게 지혜의 열매를 먹게 한 것처럼, 지금 이 뱀이 내게 또 하나의 지혜의 열매를 준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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