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월시인의 만주 이야기 .3] 만주 기차이야기
상태바
[서지월시인의 만주 이야기 .3] 만주 기차이야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3.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좌석은 먼저 앉으면 주인…열차내 화장실은 목까지만 가려져 '보일락 말락' 

▲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현장이 있는 하얼빈역. 역 앞에 걸린 LG광고판이 눈길을 끈다. 하얼빈역은 서울역의 5배 정도다.
◇ 목소리 큰 자가 이기는 열차문화

만주행의 첫단추를 채워준 사람은 부산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소설가 박명호씨다.

어느 해 여름방학 느닷없이 찾아와 "만주에 가자!" 해서 무작정 따라갔다. 여정이 녹록지 않았지만 가장 힘든 대목은 장거리 열차를 타는 것이었다. 나는 만주의 열차문화가 우리와 매우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열차에 몸을 싣기 전에 이곳 통화지역 조선족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있었다.

즉 '좌석이 없더라도 먼저 앉는 자가 주인이니 양보하지 말라는 것'. 그럼 중국인들은 아무말 못하니 대범하게 행동하라는 거였다. 너무 긴 여행길이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중국땅은 위계질서가 확립되지 않아서 모든게 그대로 지켜지는게 없었다. 목소리 큰 자가 이기고 먼저 앉는 자가 왕이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동네였다. 되는 대로 움직이는 중국인들의 습성이었다. 중국 공산당 탓인지 시키는대로 움직여 나가면 된다고 믿는다.

▲ 만주의 한 옥수수 밭을 지나고 있는 열차. 도문에서 목단강시로 가는 만주횡단 완행열차. 소요시간 4시간30분 정도
통화역에서 송강하행 열차를 이용할 때였다.그날은 통화조선족문인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여러 조선족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담소도 나누었다. 아주 친절했다. 통화역 구내까지 마중 나와 손 흔들어주었다. 만나자마자 이별이었다.

밤 9시가 되었는데도 통화역 2층 대합실은 인산인해였다. 억지로 몸을 비비며 열차 안에 들어서니 열차 칸칸마다 인파로 꽉 차서 발 디딜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인파를 뚫고 들어가야만 했는데 숨이 막혔다. 한 어린애가 어른들 사이에 푹 파묻혀 갑갑해 울부짖는 게 마음에 걸렸다. 살아가는 것도 고생인데 하물며 잠시 차를 타고 오가는 것까지 고생이라니.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얼빈서 12시간 걸려 흑하역에 도착한 만주 북방 횡단열차

우리 일행 6명은 모두 자리를 차지하진 못했다. 두세 자리를 확보해 교대로 앉았다. 한참 지났을까. 자리로 돌아와 보니 중국 소학교 어린이인데 노래도 잘 부르고 맹랑하고 똑똑해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천원짜리 한국지폐를 주며 퇴계 이황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1만원권 한국지폐를 기념으로 주며 세종대왕이라 말했으나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한국 화폐니 그저 좋아하는 것이었다. 만주땅은 어느 역을 가나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만주는 땅이 너무 넓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데 평균 4~6시간 소요되는 게 보통이다. 그마저 하루에 한번꼴로 열차가 운행되니 인파가 많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 목소리 큰 자가 이기는 열차문화 통화역에서 송강하행 열차를 이용할 때였다.그날은 통화조선족문인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여러 조선족 문인들이 모여들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담소도 나누었다. 아주 친절했다. 통화역 구내까지 마중 나와 손 흔들어주었다. 만나자마자 이별이었다.

하루 한번꼴 운행…매번 인파로 북적
의자 밑·선반위에 드러눕는 승객도

◇ 비둘기호 같은 만주 장거리 열차

▲ 12시간이 소요되는 만주횡단 침대열차 안에서.
만주에서는 새마을호 같은 열차가 없다. 거의 비둘기나 통일호 수준이다. 모두 장거리 열차이며, 1일 1회이기 때문에 복잡하다. 차안에 매점 아저씨가 있고 식당칸도 있다. 특히 하얼빈에서 흑하로 가는 12시간 장거리 열차의 경우 '칙칙폭폭' 버전이다. 석탄을 삽으로 퍼넣어서 불을 지펴서 엔진을 가동한다.

남에 대한 좌석 배려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입석을 끊었기 때문에 함부로 앉지를 못했다. 그런데 중간에 탄 어느 중국 청년이 늠름하게 걸어들오더니만 빈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자기 자리인 줄 알았다. 몇 정거장 가다가 다른 손님이 타고 올라와 표를 내밀며 비켜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들은척만척 계속 앞만 보고 앉아 있었다. 계속 종용하자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늠름하게 일어서서 유유히 뒤쪽으로 사라지는 걸 보고, 우리는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최악의 경우 의자 밑으로 들어가 신문을 깔고 누워버리는가 하면, 머리 위 선반 위에 올라가서 드러눕는 젊은 승객도 있다. 이런 정황들이 문화의식 부재에서 오는 현상이 아닐까?

캠코더 보여줬더니 승무원들 '우르르'

이름 모를 간이역도 서울역보다 규모 커

◇ 만주지역 역에선 아직도 거지가…

만주열차여행. 비록 언어는 안 통하지만 마음은 통해서 안 호주머니에서 술을 꺼내 마셔라 하는가 하면, 담배 같은 것도 선물로 주는 중국인도 많다.

베이징 같은 데선 거의 사라진 거지들이 만주 여느 역에선 아직 볼 수 있다. 이들은 바닥에 떨어진 빵조각을 먹기도 한다. 물병 같은 것도 있으면 모아서 끌어안고 다니기도 한다. 역앞 홍등가문화는 우리와 달리 거의 볼 수 없다고 하지만 가끔 목격 된다.

열차가 어느 시골 간이역에 잠시 정차했다. 옆자리에 중국인 승객의 말을 빌리면 저기가 바로 홍등가 지대이기 때문에 함부로 가면 지갑에 있는 돈을 다 뺏기니 조심하라고 귀띔해줬다.

삼강 평원을 가기 위해 하얼빈 바로 위 수하에서 감옥사시로 가던 중 캠코더 때문에 해프닝이 벌어졌다. 내가 캠코더를 갖고 열차 안과 창밖 풍경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때 캠코더 모니터에 빠진 각 칸 담당 승무원들이 모두 몰려왔다. 얼마후 캠코더 때문에 자리를 비운 승무원들이 책임 여승무원한테 들켜 꾸중 듣는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는 2002년 여름. 지금도 그럴까?

◇ 씻지않는 중국 남자들

하얼빈에서 자그다치를 지나 중국 만주땅 최북단 막하로 가는 침대칸 열차속에서의 일이다.

나는 2층에 있었고, 1층은 중국 중년 여성의 침대칸이었다. 그 여인은 자그다치에 사는데 8시간이나 걸리는 하얼빈에 와서 친정 엄마의 약을 사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튿날 새벽 열차가 자그다치에 도착했을 때 늙수룩하고 행색이 꾀죄죄한 남자가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보아하니 그녀의 남편이었다. 중국 여성은 거의 말끔하고 단정했지만 남자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며칠 머리도 안감고 지저분한 행색이었다.

대다수 만주의 역사(驛舍)는 우리보다 훨씬 크다. 우리가 이름도 모르는 간이역 같은 감옥사·수하역·목단강시역도 한국 규모로 말하면 서울역보다 적지 않다. 특히 하얼빈역의 경우 서울역보다 5배 이상 크다. 하얼빈역 대합실의 경우 일반 손님이 대기하는 무료 대합실과 5위안 정도 주면 사용할 수 있는 유료 고급대합실이 분리돼 있다. 유료대합실 의자는 푹신하고 안락한 소파형이다.

역내 화장실 문은 우리와 비교해 절반 크기 정도 된다. 앉으면 목까지만 가려져 내부가 훤히 보이는 게 이색적이다. 장거리 여행 중 가장 인상적으로 본 광경이 있다. 우리에게 인기인 땅콩은 잘 볼 수 없고 거의 해바라기씨를 까먹는다. 껍질은 별도로 모아두지 않고 바닥에 그대로 수북하게 버린다. 또 칸별로 녹차가 들어간 보온물병이 비치돼 늘 승무원이 물을 갈아준다. (계속)

pys048@hanmail.net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