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란 놈의 「개장수」아비 로얼은 본처가 죽고 그 뒤에 재처를 한답시고 여기저기에서 몰려드는 과부아낙네들을 저그만치 2, 30명 이상은 데리고 살았나보다. 하지만 나중에 모두 쫓아내버렸고 그냥 장가 못든 절름발이 셋째만 데리고 개장수로 살아가던 중, 로얼은 어느 하루 개를 한 트럭 싣고 돌아와 허심탄회로 한다는 소리가,
“셋째야! 너에게 일러둘 말이 있구나. 지금은 개좇같은 세상이라서 마을에 계집애들 그림자라고는 일절 없으니 네가 장가들기는 다 틀리지 않았고 뭐냐. 그러니 과부라도 어떻겠느냐? 너만 개의치 않는다면 말이다.”
셋째란 놈은 자기 집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늬집 사랑방에 들어있는 계집애네 모녀를 생각하며 멀거니 그쪽으로 고개를 세워 바라보았다. 팡석만큼하게 퍼져나간 오동나무 잎새에 가려 그집 사랑방 뙤창은 대낮에 활짝 열어놓고 있어도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비」가 이런 과부소리를 내였을 때 마침 오는 성긴 비에 그 나무 잎새는 후둑후둑 몸을 떨고 있었고 그 밑에서 불 안드는 구새통 곁에 쫑그리고 앉아 곁불을 달고 있는 계집애를 발견하였다. 「개장수」아비도 같이 그 계집애의 그림자를 발견한 듯 하더니 혼자소리로,
“저 ‘꼬리’계집애가 올여름부턴 학교를 그만뒀나 보구나. 다 큰 계집애다. 튼튼한 계집애가 될 수 있을 것이야. 나한테 저런 계집애가 있었으면 그냥 ‘안쪽개’만 날라다가 팔 것이 아니라 ‘사양장’도 꾸려보겠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날씨가 더워 ‘안쪽개’를 날라들여오기가 여간 쉽지 않은데 개 값은 그냥 오르고 있단다.”
'개장수'는 봄에 “안쪽개”를 날라 들일 때 여윈 종자새끼들도 같이 사들였다가 2, 3개월만 더 자래워서 여름에, 한창 개 값이 폭등할 무렵에는 팔아넘기려는 것이다. 사양장을 꾸려주고, 새끼종자도 마련해주고, 계집애모녀는 그것을 키우기만 하면 이제 2, 3개월 뒤에 팔아버릴 때에 이제 그 수입을 절반 “반재기”(절반 나눈다는 연변 사투리)를 하자고 했다―
아아! 개고기를 즐겨먹는 우리 이 지방에서 다 큰 개 한마리의 시세가 3, 4백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셋째란 놈의 손은 슬슬 계집애의 어깨를 어루만져보더니 그 손끝이 어느새에 계집애의 봉긋한 앞가슴에까지 미쳐온다. 그렇지만 그것에 마음을 쓸 새가 없다. 까짓거 만지겠으면 만지라지! 계집애에게는 이제 돈이 있게 되면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돈을 모아 '대한민국'에까지 류학을 가보려는, 지금은 환상이나 다름없는 하나의 소원이 있다. 그래서 그 '즘생'을 한번 만나보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미쳐갔을 때 계집애는 눈물을 감추려고 머리를 한켠으로 틀어버렸으나 터져오르는 설음때문에 흐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타서 셋째란 놈은 손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는척하더니 어느새에는 계집애의 눈에 제 입을 대여 눈물 나온 것을 핥아먹고, 뺨을 비비고, 또 무엇도 만지며,
“그냥 학교에 다녀. 내가 공부를 시켜 줄거야.”
이런 감격을 듬뿍 안겨주었을 때 쉽게 셋째란 놈의 품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그 옆을 스쳐가는 달구지군의 채찍소리에 놀라 마침내 그 짓거리가 끝나고 이제부터는 같이 손을 잡고 참외밭으로 걸어가며 셋째란 놈은 이쪽 한손으로 그냥 하모니카를 들어 입에 대고 불었다. 그 하모니카소리와 함께,
“늬집 계집애하고 ‘개장수’집 절름발이 녀석이 몰래 좋아하는 모양이더라니”
이런 소문이 금새 퍼져나가자 계집애의 엄마는 펄쩍 뛰였다. 그리고 며칠째 마음속에 끙끙 앓아오고 있었던 「개장수」 로얼의 청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음을 실감하기에 이르렀다. 로얼도 역시 펄쩍 뛰였다. 셋째 이 후레자식같은 녀석이, 생각이 있으면 너는 계집애의'에미'한테나 어떻게 해보라고 내가 일러주지 않았드냐고 마음속에 중얼거렸다.
그러고나서 그 절름발이 녀석도 실은 자기 부실한 불끝으로 만들어놓은것이련만 에잇, 배안잇 병신! 하고 입밖에까지 내여서 매도했다. 일단 사양장만 시작해놓은 뒤에는 계집애모녀의 셋방까지 다 사버리겠다는 것과, 보란 듯이 옮겨와서 뙤창을 가린 그놈의 늙은 오동나무 잎새들을 다 잘라버리고 방안을 환하게 밝혀놓을 것이라고 호기를 떨었다. 셋째란 놈은 '아비'로부터 '안쪽개'를 날라들이는 직사를 물려받고 곧 트럭을 세내여 몽골쪽을 바라고 떠나게 되였다. 적이도 마음이 언짢아 그 전날 밤에는 마당에 나앉아 아직 잘리지 않은 오동나무 잎새를 바라보며 하모니카를 부는 것이였다.
연연하고도 서글픈 시나위 가락에 눌리어 얼마간 잠잠했다가 다시 옮아오는 그 잎새 그늘과 함께 그 밑에 계집애가 살그머니 나타나주었다. 벌써 계집애는 자기의 앞에 차려진 길을 알아차리고 있었고 두 갈래의 길 가운데서 한 갈래를 선택하여야 했다.
“같이 도망가면 난 학교는 어떻게 해요?”
이런 질문 앞에 셋째란 놈이 다시는 하모니카를 입에 대지 못한채로 머리만 떨어뜨리고 나직이 앉아있더니,
“너는 이자 겨우 열여섯살뿐이야!”
“막 헤는 나인 열일곱살이야요. 싼거(셋째오빠)아부진 쉰일곱살!”
셋째란 놈은 손에 들고있던 하모니카를 계집애의 손에 쥐여주더니 울며 트럭에 앉아 떠나가버리였다. 이래도 계집애는 엄마가 시키는대로, 그리고「개장수」가 바라는대로 기쁜듯이 슬픈듯이 하모니카를 손에 감춰들고 얼굴에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다리던 사양장이 개업하는 날이 오고야말았다. 늙은 오동나무 잎새도 잘라버렸다. 여름철 한더위 때문에 돌아오던 길에 여윈 '안쪽개'를 다 죽여버린 셋째란 놈이 빈 트럭만 끌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술놀이에 노래판으로 얼크러지고 있었지만 셋째란 놈만은 뒤집 구석에 들어박혀 창밖에 환해진 계집애네 뙤창구멍을 멀거니 바라다보고 있었다. 저녁이 되니까 달이 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계집애의 엄마도 어데로 피해버렸다. 다만 술에 흥건해진 '개장수' 로얼의 앞에 계집애가 나직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앉아 아까부터 손에 들고있던 하모니카만 매만지작거리고 있더니 그것을 들어보이며,
“싼거아부지, 이것 불줄아세요?”
계집애는 새파랗게 질려 로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로얼은 아무 주저없이 하모니카를 받아 한번 어루쓸더니,
“이것은 내 손때가 묻은거야. 셋째녀석한테 물려주었던지가 불과 이태밖에 안됐어. 하지만 다시 돌아오구 말았구나.”
이러며 한참 웃고있더니 곧 입에 대고 멋들어지게 불어댔다. 새파랗던 계집애의 얼굴에 홍조가 어리더니 어느새에 로얼의 무렆에 올라앉아 그 품에 머리를 틀어박으며,
“정말 잘 부시네. 싼거는 어림두 없어요.”
하고는 흐흑 느껴우는것이였다. 그런 칭찬을 들으며 잠깐 숨을 돌려쉬는 새에 로얼은,
“낮에는 그냥 학교에 다녀…”
하고 흐뭇해진 얼굴을 들고 돌아보며 한마디 내뱉고는 그 한곡을 마저 불어제낄 양으로 그냥 하모니카에 있는 김을 몰아넣었다.
나는 여기서 이 이야기를 맺어야겠다. 이듬해 내가 가보았을 때 누구도 오동나무를 뿌리채 치지는 않았다. 정말 가을이 오고 그 국화 필 서리 ‘아츰’에 떨어지는 오동나무 잎새 밑에 서서 그 계집애가 책을 읽고있는 모습만은 의연하게 예뻤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