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朝鮮民族의 代表的인 한글 서체는 延邊書體라고 하는 서체인데 이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朴炳千(경인대 교수)이 1995년 12월에 해외동포서예전 작품현황에 대한 평론에서 처음 言及하면서 부터이다.
延邊日報, 도라지, 長白山, 靑年生活 등 각종 신문과 잡지 그리고 출판물의 표지 및 제목글씨로 쓰이는 동안 한글 서체는 점차 중국 朝鮮族 특유의 서체로 자리매김하였다. 延邊書體는 한문서예의 자유로운 필법과 宮體의 부드러운 女性美와 靑峰體의 强忍한 男性美에서 우수한 점만을 뽑아서 결합하여 창조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延邊書體가 처음 출현된 것은 1967년 池升元의 연변일보 표제이므로 그 역사가 40년이 되지만 그 바탕은 靑峰體의 形成 初期(1930년대)부터 보아야 함으로 그 역사는 70년이다.

延邊書體를 제일 먼저 쓴 사람은 池升元, 金太星, 田靑松, 朴明俊, 朱永日, 許日春, 吳基男 등의 순이며 현재 그 맥을 이어가면서 延邊書體를 다듬어 더욱 세련된 하나의 書體로 定立한 사람은 吳基男과 蔣龍이다. 延邊書體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延邊書體의 형성은 구호나무에 쓴 글씨에서 비롯된다. 抗日 武裝鬪爭은 日帝가 중국 동북부를 침략하여 滿洲國을 세운 이후부터 시작되었는데 중국 共産黨 八路軍의 지휘를 받은 朝鮮民族들은 백두산 근처에 숙영지를 정하고 투쟁을 진행하였다. 당시 숙영지의 나무에 ‘일본제국주의를 무찌르자’, ‘금수강산 우리나라를 도로 찾자’ 등의 구호를 붓으로 쓰거나 칼로 새겼다. 그 나무들이 1961년 朝鮮 당국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구호나무 글씨는 대개 1930-40년대에 씌어진 것인데 초기의 서체는 한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 상부의 지시를 받고 서예의 法을 떠나서 또박또박 쓴 글씨로 보인다. 쓴 사람이 여러 명으로 보이며 서로 풍격이 다르지만, 본고에서 제시한 구호나무 서체는 시작하는 첫 획은 露鋒으로 쓰고 點은 아래쪽으로 처지게 찍었으며 세로획과 가로획은 곧고 힘 있게 쓴 것이 특징이다. 그리하여 雄壯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演出하여 抗日의 굳센 의지를 표현하였다.
광복 직후 2년 간 중국의 朝鮮民族 학교에서는 한국의 습자교재를 사용한 사실이 있으므로 建國 후 처음 출현한 1950年代의 한글서체는 도판에서 볼 수 있듯이 비록 완벽한 宮體는 아니지만 자모음의 결구와 필법은 모두 宮體의 것과 비슷하다.
1960年代에 출현한 朝鮮民族 한글서체는 宮體의 法을 완전히 벗어나 가로획과 세로획 등에서 조맹부의 楷書風이 삽입된 雄壯한 風格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당시 大躍進 운동의 정신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판단된다.

1980년대에는 한글을 쓰는 서예가들이 많이 출현하여 각자 다양한 書風을 연출하였는데 楷行草로 분류되는 중국 특유의 한글서체를 굳혀가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시기에는 기존에 한자 서예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기존의 書風을 바탕으로 朝鮮의 靑峰體 영향을 받아 새로운 風格을 형성하였는데 대표적인 서예가는 田靑松과 朴明俊이다. 이 시기의 書風은 필획의 강약이 두드러지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감돌고 全體的으로는 氣勢가 넘치는 風格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文革이후의 民族自治를 재 실현할 수 있게 된 희망으로 가득 찬 朝鮮民族의 기쁨과 자긍심을 붓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990년 이후 중국의 한글 서예의 風格은 점차 完成段階에 들어섰다. 優先 楷行草의 三體를 구비하였으며 筆法, 結構 등 서예의 법을 세워가고 있다.
延邊書體라는 명칭은 1995년 12월부터 사용되었는데, 이 서체명에 대하여 특정 지역명을 땄기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 延邊만이 아닌 전 중국 朝鮮族 지역에서 유사한 서체가 존재하고 있는데 ‘延邊사람들만의 書體’라고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는 의견이 다수이다. 筆者은 일찍 1996년의 論文에서 延邊書體를 ‘글월체’라고 명명한적 있다. 즉 선조대왕 어필 등 글월(편지글)의 서체와 유사하다고 하여 그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였었는데 이 명칭 역시 불합리하다.
현재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서체는 조선적들이 대거 집거하고 있는 동북삼성을 중심으로 보급, 발전되었다. 즉 이 지역은 조선족이 중국으로 이주하여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근대교육을 실시한 간도지역이다. 조선족의 이주, 정착 역사가 간도에서 시작되었고 북간도가 그 교육의 중심지였음은 앞에서 밝혔다. 조선족의 대표적인 서체의 생성과 발전 역시 그 역사와 맥을 같이 함으로 대표적인 서체를 간도체라 잠시 부르려 한다. 이미 2008년 한국학술정보에서 출판한 <중국 조선민족 서예와 예술환경>이란 저서에서 언급한 바 있다.
다음에 계속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