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서울에 와서 여러가지 불가사의(不可思议) 중의 하나가 흔하디 흔한 이사(搬迁)였다. 일색의 한국인 이사짐 센터 직원들이 궂은 일만 도맡는 동남아인들로 바뀐지 몇 년 되더니만 작년 겨울부턴 재활용을 차에 싣는 러시안인, 흑인들도 보게 되었다.
한창 대학을 다닐 나이의 키가 껑충하게 크고, 오불꼬불한 머리에 숯덩이처럼 까만 피부를 번쩍이는 건장한 젊은이들이였다. 열심히 수걱수걱 일만 하는 모습은 나더러 그저 지나치지 못하게 했다.
뜨거운 적도에서 부모형제들을 멀리 떠나 유난히 추운 이 겨울, 낯 설고, 물 설고, 말(語) 선 이국타향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갈가?!
쉴사이 없이 골판지를 포개고, 페지등을 분리 수거하여 높다란 차에 올리는 그이들이 나와 같은 처지여서인지 내 동기간 같이 생각되었다. 볼때마다 마음이 젖어 들었다. 안쓰러운 눈길이 자꾸만 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페지를 수거해 가는 날이다. 애를 학원에 보내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는데 흑인 청년들이 금방 차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눈에 띄는 신문 한 장을 집어 드는데 옆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머리를 돌리며 무슨 도움을 바라는 줄 알고 되묻는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그러자 흑인 청년이 가쯘한 흰 이를 드러내고 벙긋 웃으며 "2천원이유!" 한다.
그제야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린 나도 개그기질이 발동하여 우스꽝스럽게 영국식으로 무릎을 꺾고, 한국식으론 머리를 숙이며 " OK!" 하고 화답하며 활짝 웃었다. 동정의 대상이었던 흑인청년의 귀여운 말장난에 기분이 상큼해 졌고, 크낙한 선물을 받은 듯 즐거웠다.
핸디캡을 가지고도 저렇듯 열린 마인드로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 여유있게 농담을 하는 그 젊은이가 막 존경스러워졌다. 나처럼 마음에 수고만 가득한 줄 알았는데 ....동남아인이나 흑인들을 볼때마다 내 멋대로 연민과 측은한 눈길을 보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웁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슈크림 같이 연하디 연한 유약한 마음을 가졌지만 가치관에 따라 포장을 달리 한다. 흑인청년처럼 유머와 향기를 발산하기도 하고, 혼자 잘낫노라고 악취를 풍기기도 하고, 가시로 무장하기도 하는데 나는 바게뜨빵처럼 딱딱한 껍질로 나를 포장하였다.
일초일목도 더없이 사랑하는 내 고국, 생활습관과 언어가 착 달라붙게 편했지만 어린이들을 제외한 고국동포들에게 나는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 걸었다. 가정부+사투리란 자격지심을 빗장으로.
서로 신뢰와 믿음은 있고 나도 내 식구들 보다 더 극진히 챙겨는 주었지만 10년 동안 "네"란 대답외에 잡담 한 번 없었고, 농담 한 번 없었고, 쾌활하게 한 번 웃은 적이 없었다.
오픈되지 않은 마음과 나의 주관적인 편견으로 (다행히 애들과만은 코미디언) 딱딱한 군인보다도 못한 병마용 같은 표정을 가지고 깎듯이 인사만 하고, 열심히 일만 하고는 프로패셔널이라고 자화자찬했으니 얼마나 "발칙망칙"한가?!
재활용 ~ 쓰레기를 수거하고 페지차 위에서 몸부림치는거 챙피한거 아니다. 그네들이 한 주일만 오지 않아도 동네는 쓰레기로 넘쳐난다. 자원이 제로인 한국에서 재창조자인 그네들은 자부심을 가졌기에 누구에랄 것 없이 그처럼 당당히 다가섰을 것이다.
그 청년은 샛노란 해바라기들 속에서 일점 흑(黑)이었어도 "독야청청" 기죽지 않고 활짝 피어 흐드러진 벚꽃의 기운이 내뿜었다. 자기무리에 돌아와서도 갑속에 갇혀 방어태세만 갖춘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말이 어눌하면 뭐라나?! 스스럼 없이 건네는 밝은 말속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아 타인을 훈훈하게 만들지 않는가?! 많은 언어와 단어를 소유하고 있어도 유익한 내뱉음도 없고, 남을 즐겁게 해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십년 동안 주인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는 미명하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기에 소통이란 없었다.사실은 이천원도 안되는 자존심을(사투리 콤플렉스가 뽀롱날가봐) 위한 것이었다.
중국동포란 "자존심"을 고수하느라 주인들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말초신경까지 곤두세우고 살았다. 그러니 어린이를 뺀 그 누구에게도 여유로움,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물질이 풍요하고 환경이 깨끗하지만 스트레스가 많고 팍팍한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최상의 환경보다 집에서만은 맘껏 흐트러지고 너부러지게 편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가 한다. 그럴려면 나부터 저 청년처럼 열린 마음을 가지고 무람없이 세상에 다가가는 법을 배워야 겠다.
내가 하는 일이 이천원짜리면 어떻고, 내 모양이 이천원 짜리면 또 어떠랴?! 저 아름다운 흑인청년처럼 이만불짜리 마음 부자가 되어 내가 먼저 사람들과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련다.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