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의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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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의 퇴출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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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73>

늦가을에 아버지는 팔뚝만한 굵기에 곁가지가 틈실한 잘 뻗은 소나무 가지를 베어온다. 그리고는 껍질을 벗긴다. 나뭇가지는 겨울을 나면서 잘 마른다. 정월 보름이 지나면 아버지는 따뜻한 볏짚가리 양지쪽에 앉아 그것을 가져다가 지게를 만든다. 머지않아 봄이 되면 지게를 질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지게는 구조가 아주 간단하다. 곁가지가 달린 ㅢ자 모양의 나무 두 짝을 나란히 세우고 서너 개의 가롯대로 사다리 모양으로 연결시켜 놓은 것이다. 여기에 처녀들의 긴 머리 따듯 왕골 짚을 꼬아서 만든 두 개의 멜빵을 지게의 양쪽 어깻죽지와 발목에 매달면 완성된다. 등받이는 있으면 더 좋다.

작대기는 지게를 받칠 때 쓴다. Y자 모양으로 가지가 난 기다란 나무로 만든다. 일어설 때 짚거나 무거운 짐을 지고 내려올 때도 작대기는 지팡이처럼 짚고 다니기도 한다. 바소쿠리(발채)는 퇴비나 흙 같이 가루 짐을 지게에 얹을 때에 필요한 보조 도구일 뿐이다.

이런 지게는 농사꾼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으로 요긴한 도구이다. 삽과 괭이, 쟁기나 극정이 같은 농기구도 실어 지고, 퇴비나 흙과 모래, 고구마나 감자를 캐서 나르기도 한다. 볏짐이나 참깻짐도 싣고, 물장군이나 멍석 같은 농가 용품들도 가리지 않고 얹어 운반한다. 나뭇짐이나 풀짐, 곡식 가마도 싣지만 때로는 어린 아이들을 태워 주기도 한다. 각종 도구와 기구 가운데에서 지게처럼 다용도로 사용된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농부는 나설 때마다 짊어져 지게는 농부의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이렇게 지게가 많이 활용하게 된 것은 그 편리성 때문이다. 어떤 짐이라도 다 질 수 있고, 무거운 집도 나를 수가 있다. 짐을 졌어도 두 손은 자유롭다. 손으로 다른 것을 잡거나 들고 갈 수도 있고, 땀을 닦거나 무엇을 꺼내고 담는 일도 할 수 있다. 작대기는 지팡이로 쓰는 것이지만, 흥이 나면 지겟다리를 두드려 장단을 맞추기도 한다.

그러나 지게 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게가 적은 짐이라도 전후좌우로 균형이 맞아야 한다. 한 쪽으로 쏠리면 넘어지기 쉽다. 작대기를 짚고 일어설 때에도 요령이 있다. 허리힘이 있어야 하지만 역도처럼 번쩍 서면 넘어지기 쉽다. 일어서서도 너무 숙이면 엎어지고, 허리를 펴면 뒤로 자빠진다. 균형을 잡지 않고 발걸음을 내디디면 지게가 좌우로 쏠려 넘어진다. 지게가 등짝에 딱 붙어 한 몸이 되고, 짐이 걸음마다 균형이 잡혀야 걸을 수도 달릴 수도 있다.

지게를 질 줄 모르는 사람은 농사꾼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어려서부터 지게를 지운다. 일거리가 많은 농촌에서는 지게를 질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내자식이 그까짓 짐도 못 져? 쯧쯧.”

어른들은 지겟짐을 지는 것으로 청소년들을 평가하며 격려도 한다. 그렇게 단련되어 농부들은 물지게도, 돌짐도 잘 지게 된다. 터득한 균형감감과 요령으로 그들은 어떤 짐이라도 짊어지면 나르지 못하는 게 없게 된다.

이제 지게는 구경하기도 어렵다. 전통마을이나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게는 농사꾼의 필수품이었고, 우마차가 늘어도 짐꾼의 벌이 도구였으며, 자동차가 운송수단으로 대체되기까지는 짐 운반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수천 년 동안 쓰여 왔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짐을 지어 쉽게 나를 수 있는 용구, 무엇이든 얹기만 하면 길이 없이도 어디든 짊어지고 나르던 생활 도구, 그 유용하고 고유한 지게도 이제는 사라져가고 있다. 문명은 우리의 생활을 끊임없이 바꾸어 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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