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겔란 조각공원의 의장(意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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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겔란 조각공원의 의장(意匠)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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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68
▲ 申吉雨 :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남한강문학회 회장. skc663@hanmail.net
조각 작품 하면 누구나 하나로 된 개별 작품만을 흔히 생각한다. 작품이 크든 작든, 사람이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언제나 한 작품을 생각한다. 고금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조각들은 항상 하나로 창작되고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겔란의 조각들을 보게 되면 전혀 생각이 달라진다. 낱낱으로 보기도 해야지만, 모여 있는 작품 전체로도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 방식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다. 그것을 우리는 노르웨이의 비겔란 조각공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비겔란 조각공원(Viegeland Sculpture Park)은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 시의 서쪽 지역에 있다. 80에이커의 넓은 지역에 212개의 갖가지 조각 작품들이 길이 850미터나 되게 배열되어 있다. 왕궁에서도 멀지 않을 뿐만 아니라, 24시간 개방되어 있어서 밤낮으로 찾아와 구경하며 쉬며 즐기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조각공원의 입구에는 작은 다리가 놓여 있고, 다리의 양쪽 난간에는 58개의 청동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들 인간조각상들은 하나하나가 다 감상할 만하여 구경하다 보면, 20여 미터의 다리를 한참이 걸려야 건너게 된다.

   다리가 시작되는 양쪽 끝부분에는 높은 화강암 원통형 탑이 우뚝 서 있다. 그 위에는 파충류와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는 조각상이 올려져 있다. 노르웨이의 창조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신과 인간의 교접을 나타낸 것이다.

   우측 난간의 앞부분에는 부모와 아이들이 어울려 사는 모습들이 배치되어 있다. 아버지가 두 손으로 아기를 머리 위에 얹은 상이 있고, 겨드랑이에 아이의 허리를 한 명씩 껴안고 서 있는 어른 남자가 서 있다. 남자 어른이 어린아이의 두 손을 마주잡아 쳐들어서 맴돌 듯이 한 바퀴 돌리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아기를 오른쪽 품에 받쳐 안고 서 있는 여인상도 있다. 두 손을 마주잡고 자신의 무릎 위에 소년이 올라타게 하여 마주보고 있는 부자상도 있다. 모두가 부모와 자녀 아이들이 함께 즐기고 있는 형상들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던 모습 그대로이다.

   그 다음에는 좀 성장한 경우의 모습들이 나온다. 처녀를 등뒤에서 안으려는 듯한 남자상과, 처녀가 남자의 목에 손을 걸고 청년은 여자의 겨드랑이를 잡고 얼굴을 대고서 껴안고 있는 형상도 있다. 성장한 남녀의 사랑의 삶을 나타내고 있다.

   왼쪽의 난간 위에도 신과 인간의 교접상이 맨앞에 있다. 그 다음에 아이를 두 손으로 받쳐들어 윗가슴에 바짝 껴안아 이마를 맞대고 있는 여인상이 있고, 발을 앞뒤로 벌리고 서서 아이의 겨드랑이를 두 손으로 높이 받쳐들어 올려다보며 좋아하는 여인상도 나온다.

   이어서는 다리를 옆으로 벌려 버티고 서 있는 남자를 머리카락을 날리며 뛰어올라 왼쪽 옆구리를 끼고 올라타고서 얼굴을 옆으로 댄 채 두 손으로 남자의 목을 감싸안고 있는 여인상이 있다. 남자가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서서 여인의 허리를 양손으로 힘있게 잡아 들어올리고, 여자는 두 다리를 벌려 남자의 몸을 가싸 가슴을 타고 허리는 구부린 채 두 손을 쭉 펴서 남자의 머리를 밀 듯이 잡고 마주보고 있는 격정적인 남녀상도 나온다.

   그 옆에는 서 있는 젊은 여자의 등뒤에서 여자의 양손을 양쪽에서 품어 안 듯이 쥐고서 여자의 두 젖가슴 위로 지긋이 누르듯이 껴안고 있는 남자의 조각상이 있다. 여자는 부끄러운 듯이 한 쪽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남자는 여자의 뒷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다. 마주하지 않고 여자의 등뒤에서 안은 것이며, 고개를 한 쪽으로 다소곳이 숙인 채 봉긋한 가슴에 놓인 남자의 두 손을 거절할 듯 말 듯 잡고 있는 모습은 그 모양 그대로 천진무구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다. 신혼초나 적어도 그 이전의 연인들의 자세요 모습이다.

   또 그 옆에는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뒤로 가슴에 안아 공중으로 높이 들어 올린 모습도 있고, 서로 다리를 붙잡고 허리를 둥그렇게 휘어 원형을 이룬 두 남녀의 상도 있다. 모두가 젊은 남녀의 사랑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다리 좌우 난간 위의 조각상들은 각각이 자세와 표정으로 각기 다른 작품을 이루고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탄생과 육아와 사랑의 모습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 다음의 조각들도 좌우의 내용들은 비슷하다. 서 있는 노인의 앞에서 반쯤 등지고 서서 고개만 노인 쪽으로 돌려 대화하는 여자의 모습, 두 손을 턱 밑에 모으고 팔굽을 양쪽으로 치켜올린 채 서 있는 여인상, 오른발로는 나뒹구는 아이의 엉덩이를 차면서 두 손은 치켜들어 달라붙은 아이들을 뿌리치고 있는 화난 어른 남자상,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피하며 달아나려고 하는 아이의 왼손을 쫓아가 붙잡고서는 불끈 쥔 주먹으로 내리치는 남자 어른의 모습 등, 갈등과 고뇌의 인간상들이 놓여 있다.

   여기 다리 난간 좌우의 조각상들은 하나하나가 독립된 작품들이다. 모두가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고 보호와 갈등하며 사는 인간 삶의 한 모습들을 각기 나타내고 있다. 그러한 모습들은 우리가 자라며 기르며 겪고 행했던 것들이다. 비겔란은 그것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쳐버린 삶의 장면들을 그는 조각 작품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것들이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긴 우리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어떤 작품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진실하고 순수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 전체를 보면 우리의 일생이 되고 있다. 진리는 평범한 것에 있다는 말이 또 다시 실감으로 다가오게 한다.

   다리를 지나면 분수정원이 나온다.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가 둥그런 그릇에 넘쳐 하얀 물줄기가 원형의 장막을 이루어 쏟아져 내린다. 반으로 쪼개 놓은 공처럼 생긴 분수 그릇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받쳐들고 있다.

   쏜아져 내린 물은 정사각형의 연못을 이루고, 그 네 벽면에는 사각형 틀 안에 청동 부조들이 한 줄로 죽 배열되어 있다. 부조가 있는 아래쪽 연못의 난간 위에는 20개의 청동상이 있는데, 네 구석 쪽에 5개를 ㄴ자로 각각 배열해 놓았다. 나무와 사람들로 구성된 이 청동상들은 각각 인간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다시 합쳐져 인생 전체를 나타내고 있다. 하나하나가 개별 작품이면서 작품군 전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한 방식이다. 다리 난간의 청동상들과 같은 방식이다.

   비겔란의 조각 작품들은 어디서나 낱개로만 보지 말고, 반드시 전체를 또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해야 한다. 인간은 혼자이면서 모두가 모여 우리가 되듯이, 비겔란의 조각 작품들은 나의 인생을 그리면서 동시에 우리 전체의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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