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기집을 중국어판으로 출판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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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집을 중국어판으로 출판하고싶습니다
  • 유대지
  • 승인 2010.0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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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인년 올해 회원여러분

모두에게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한국전쟁발발 60년만에 고백하는 어느 6‧25유복자의 한중록 작품집을 출판하고 싶습니다.  

 

‘달빛은 진달래를 비추지 않았다’

-호로자식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왜 자신을 胡虜자식이라고 불러야만했던가

그는 왜 성추행의 표적이 되어야만했던가

그는 왜 도둑질을 해야만했던가

그는 왜 평양출판기념회를 꿈꾸고 있는가

(2002년, 통일부로부터 평양출판기념회를 위해 우리문학사상 처음으로 북한주민 접촉승인을 받았다)

그는 왜 사상처음으로 북미대륙38선을 처음으로 달려야만했던가

그는 왜 17년간 자동차로, 자전거로, 걸으며 38년을 73회나 달려야만했던가

그는 왜 북한 옹진반도까지 완전한 38선을 달리려고하는가

 

50년동안 생각하고 10년간 집필하여 60년만에 우리민족과 전세계에 우뚝선 금세기 최고의 전쟁반대의 금자탑.시와 수필이 함께 만나는 새로운 문학장르의 결정판

전후세대에게 전쟁의 참상과 가정의 소중함을, 우리민족에게는 제2의 6‧25발발을 경고하는 이 시대의 메시지.삼대독자, 유복자, 유자녀와 한 가문이 지난 60년간 몸부림쳐야만 했던 새천년의 한중록. 풍전등화의 가문을 지키기 위한 할머니의 눈물겨운 손자 길들이기. 눈물과 해학, 감동이 넘치는 우리민족 전쟁 종말 새 원년의 교과서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전생에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기구한 통곡의 소리. 허허벌판 한 가운데서 가족과 홀로서기의 가슴 아픈 이야기

“전쟁은 짧지만, 그 고통은 대를 이어 영원하며, 전쟁이 있는 곳에 호로자식이 있고, 전쟁이 없는 곳에 호로자식 없다” (본문중에서)

 

(자택) 성남시 분당구 금곡로 201 310-106

(근무처) 대한민국 6.25 전몰군경유자녀회 이사

홈: the38line.hihome.com(www삭제)

sps38@hanmail.net

010-6255-9678 각사이트 ‘유대지’

 

유대지(劉大知)는누구?

1949년 울산출신(60세).

삼대독자,유복자,6‧25전몰군경유자녀.동래고,명지전문대학(부동산학과).

울산광역시공무원15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22년정년(2006).처와 네딸.

서울특별시 고등학생 국가관 특강강사(서울특별시교육청. 2009년)

대한민국경찰유자녀회장(1992년)

태평양전쟁피해 희생자전국연합회 제1사업본부장,경기도남부지부장

대한민국6.25전몰군경유자녀회 이사로 1년간 자원봉사

 

표창장:

행정자치부장관.성남시장.울산광역시장.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이사장.한국보훈병원장

 

1종자동차운전면허증.공인중개사자격증.

38선을 17년간, 73회 자동차로, 도보로,자전거로 횡단하며 조국의 평화를 홍보.

2000년 6.25발발 50년뉴욕~워싱턴~덴버~샌프란시스코~LA, 북미대륙 38선을

사상처음횡단하면서 조국의 평화를 전세계에 알림

 

수기집‘달빛은진달래를 비추지 않았다’출판준비.

다정다감. 유모어. 166/60. B형. 불교. 막걸리1병. 매일 새벽 1시간운동. (월 200km)


육필 수기집을 내면서

달빛은 진달래를 비추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비참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첫째, 늙은 홀아비, 둘째, 늙은 홀어미, 셋째, 부모 없는 아이, 넷째, 자식 없는 늙은이, 바로 사궁(四窮)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네 가지 가운데 한 가지도 거치지 않고 태어나 다복하게 살아가건만, 어찌하여 할머니와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인생의 멍에를 등에 지고 허우적대며 시작해야만 했을까.

이것은 바로 할머니와 나의 숙명적인, 그리고 비극적인 인생의 시작을 알려 주는 적신호였다.

『논어』 「학이편 (學而編)」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살아계실 동안은 그 뜻을 살펴볼 것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행한 바를 살펴볼 것이니, 3년 동안은 아버지가 행하신 바 도리를 고치지 않아야 효자라고 말할 수 있다.” 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나를 낳아 주신 아버지의 얼굴도 본 적이 없고, 그 넓은 가슴에 한 번 안겨 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불러 보지도 못했으며, 그 목소리도 들어 보지 못했다.

이처럼 아버지라는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는 전혀 손길이 닿지 않는 저 먼 세계로 인식되어 왔으므로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싶어도 그것을 행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의 인생은 기구한 운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 1개월도 채 되지 않았던 그때, 어머니 자신이 임신한 사실조차도 모르던 그때, 전쟁으로 인하여 아버지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순국하셨다.

나는 바로 유복자(遺腹子), 삼대독자, 대한민국 6·25 전몰군경 유자녀(遺子女),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저 비극의 호로자식(胡虜子息)이다.

어릴 때의 일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그 해 한여름 깊은 밤이었던가. 마당 한가운데 모닥불에서는 모기와 하루살이를 쫓기 위해 옥수수 껍질을 태운 흰 연기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파란 모기장 안에서는 어느새 들어왔는지 모기 두 마리가 앵앵거리며 잠자리의 어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내가 분명히 깊은 잠에 빠져들었으리라고 생각한 할머니께서는 부채를 흔드시고 과일을 드시면서 평상에 앉아 동네 아낙네 서너명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그때 내 귀를 강하게 때리는 엄청난 이야기들이 아주 조용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할머니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가문과 아버지, 그리고 나에 대한 슬프디 슬픈 사연들이······.

나는 잠결에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며 그날 밤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후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날 밤 할머니의 그 이야기들이 한줄기 섬광이 되어 나의 뇌리에 닿았을 때 나는 초겨울 강물을 바라보며 강둑에 혼자 웅크린 채 앉아 얼마나 흐느꼈던가.

할머니께서는 아마 손자가 아버지가 안 계신 것을 몹시 상심할까 봐 평소 나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으리라.

1949년, 그해는 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전쟁 발발을 한 해 앞둔 시기로서 좌익과 우익의 사상 싸움이 그 어느 해보다도 치열했으며, 그만큼 국내 치안도 극도로 어지러웠다.

그때 선친께서는 대한민국 건국의 경찰로서 경상북도 경찰국 경주경찰서 안강지서장으 로 재직하고 계셨다.

그해 3월 23일, 미명의 그 시간.

경상북도 경주군 안강읍(安康邑) 두류리, 인적이 드문 산골 어느 오두막집에서 일어났던 그 비극의 전투. 대한민국 건국의 경찰관 3명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인민군 소속 빨치산 부대원 20명과의 전투!

나의 아버지는 바로 그 전투에서 직원 2명과 함께 조국의 수호신으로 장렬히 순국하신 당시 27세의 유귀용(劉貴龍) 경위이시다.

아! 하늘도 땅도 무심하여라.

나는 그 해 11월에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나에 대한 이 비극의 지난 역사를 모두 알았을 때 나의 가슴에는 크나큰 격랑의 파도가 스며들었다.

그 후 나는 차차 성장하면서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하신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자긍심과 존경심으로 변해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평소 나의 가슴에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리 쌓이고 쌓였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자수성가(自手成家)의 길을 걸어가면서 숱한 역경을 할머니와 가족들이 함께 겪었다.

그런 난관에 봉착할 때면 나는 선친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가지고 색 바랜 선친의 사진 앞에 앉아 마음을 정리한다.

‘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저를 힘껏 껴안아 주세요.’

그러노라면 신앙같은 사고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강한 위력이 나를 엄습해 온다.

그러한 현상은 아마 선친께서 이 세상에 겨우 남기신 하나뿐인 혈육에 대한 강한 뜻이 담긴 훈계요, 어두운 망망대해(茫茫大海)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는 난파선에게 마치 환한 등대 불빛과도 같은 구원의 이정표가 아닐까. 이렇게 나에게 비춘 그 영롱한 빛은 힘들고 모진 세파를 헤쳐가는 나에게 안정과 희망, 바로 그것이었다.

한 가정과 가문에 아버지가 안 계신 것은 대문이 없는 것과 같고, 어머니가 안 계신 것은 방문이 없는 것과 같으며, 그리고 일가친척이 없는 것은 울타리가 없는 것과도 같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대문과 울타리가 없었고, 다섯 살 때는 방문마저 잃어버린 쓰디쓴 비운을 그 누구보다도 일찍이 겪으며 성장했다. 그래서 할머니와 어린 나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거친 찬바람을 막아내야 하는 힘겨운 인생의 길을 걸어야만 되었다.

 

호로자식의 유래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전란(戰亂)이 계속 이어져 왔으며, 이러한 비극은 지금 이 시간에도 멈추지 않고 있으니 한마디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전란의 혼돈과 난세의 역사 한가운데서도 반만년 동안 고유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면면히 꽃피워 온 민족도 아마 이 지구상에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 민족 근대사 가운데 삼대 전란을 꼽는다면, 조선시대 7년간 왜구와의 임진왜란(壬辰倭亂), 2년간 청나라와의 치욕적인 병자호란(丙子胡亂) 그리고 금세기 최대의 동족상잔인 3년간의 6·25동란(動亂)이 아닐까. 이러한 전란을 거치는 동안 우리 민족은 말로써 차마 표현 못할 너무나 큰 고통을 당하였다. 더우기 우리는 지형학적으로 인접한 북방 이민족과는 오랜 세월동안 항상 대결과 긴장 상태에 있었으며, 그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런데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 호로자식(胡虜子息)이란 이 용어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유입되어 회자되고 있는지, 그 유래를 밝힌 문헌은 없다. 다만, 역사학적으로, 지형적으로, 끊임없이 북방 이민족과 전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 사이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지 않았나 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 본다.

어원(語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시대상을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바로 이 호로(胡虜)라는 글자도 포함될 것이다. 우리나라 북방에는 많은 이민족이 시대를 따라 명멸했다. 그 가운데 흉노(匈奴)족이 있었는데, 이들은 B.C. 3세기경부터 몽고지방에 번영하였던 유목민족으로서 차차 성장하여 우리 민족과는 수세기에 걸쳐 피의 역사를 이어왔던 이민족 가운데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우리 민족은 자신들을 괴롭혀온 북방 이민족을 적대시하는 뜻에서 뙤놈, 오랑캐의 아들, 즉 ‘호로자식’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여기에는 상대방에게 심한 모멸감과 그들을 비하시키기 위한 뜻이 담겨 있다.

결론적으로, 여러 가지 정황을 감안해 볼 때, 이 용어는 우리 민족 사이에서 전란 속의 북방 이민족을 통칭하는 말로 구전되어온 전래의 순수한 토속 용어라는 게 옳을 것 같다.

근세에 들어서는 이 말의 뜻이 변질되어, 버릇없이 무례하게 행동하는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있는데, 잘못 쓰여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십대 전후의 연령층 사이에서는 아버지가 없는 이들을 주로 일컫고, 성인들 사이에서는 예의범절이 미흡하거나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이민족과의 전란이 끝난 지도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구태의연한 이런 용어가 우리 사회에 버젓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가슴에 조용히 손을 얹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한때 이 용어가 사용되던 그러한 어두운 전란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되었고, 이 말을 하고, 그리고 듣는 사람 모두가 이민족이 아니라, 바로 한 핏줄을 나눈 배달의 동족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전쟁의 악순환을 의미하는 이 용어는 이제 역사의 유물로 사라져야 된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이 수기집 제목을 마지막으로 이 땅에서 이 용어가 발붙일 수 없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발상은 국민정서에도 부합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이 수기집 제목을 두고 나름대로 많은 우여곡절과 고뇌의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 자신을 비하시켰다는 둥, 나의 처지는 이 용어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둥······.

그러나 나는 이 수기집 출판의 목적이 전쟁 반대의 대명제인 이상 증오의 삼팔선을 달리면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이 제목을 끝까지 지켜나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처와 네 딸의 지지, 그리고 주위의 많은 분들의 성원에 고마울 뿐이다.

끝으로 여기서 독자 여러분께 간곡히 밝혀둘 것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본 수기집의 호로자식은 어디까지나 작가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용어이며, 어떠한 특정인, 어떠한 특정집단이나 단체도 전혀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점 일부 독자여러분들의 오해가 없기를 거듭 당부하는 바이다.

 

여러분, 주변에 출판사를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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