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난 버스기사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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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난 버스기사와 사진작가
  • 이정숙
  • 승인 2010.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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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숙의 삶의이야기

오늘 갈토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구들에게 따끈한 밥, 뜨거운 국과 찬을 상에 올렸다. 아침마다 맛나게 밥먹는 귀엽고 총명한 애와 손잡고 웃고 떠들며 학교로 간다.

애에게 매일같이 당부하고 "사랑해요"하고 귀가에 소근댄 다음 교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운동삼아 길을 에돌아 집으로 들어간다.

두 주먹 불끈 쥐고 북쪽으로 한참 걸어서 큰 사거리에 이르렀다. 푸른등이 활짝 켜지면서 어서 건느란다. 길을 건너 신호등이 없는 샛길에 이르니 녹색마을 버스가 미끄러지듯 온다.

물론 돈키호테도 아니고, 버스이고,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습관적으로 멈춰섰다. 그와 동시에 버스도 스톱하더니 기사님이 흰장갑낀 손으로 먼저 지나가라는 사인을 한다. 왼발을 내딛는 동시에 오른쪽을 향해 깊숙히 머리숙여 인사하면서 버스앞을 지났다.

다시 떠나는 버스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됐다. 고집불통인 나는 10년 동안 휘발유와 차의 소모품을 아끼라고 승용차들마다에 나 먼저 지나기를 바라면서 멀찌기 멈춰서군 했다. 아무리 교통규칙에 차보다 사람이 우선이라지만 내가 멈칫하는게 효율적이지 않는가?! 10년 그렇게도 분명한 태도표시를 했건만 수많은 차들은 한 번도 내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

쭉쭉빵빵한 젊은 미녀도, 화려하고 세련된 여인도 아닌데다가 멀리서부터 어정쩡해 서있는 이 어수룩한 아줌마를 먼저 지나라고 신사숙녀들은 점잖게 손짓한다. 에쿠스도, 벤츠도, 렉서스도 "공손히" 길을 내준다. 약한자에 대한 배려를 가르쳐 준다.

천성이 강한데 강하고, 약한데 약함도 있지만 오늘 다시 한번 벼른다. 내 이 티코 앞에 리어카(밀차)가 보이면 "너 왜 비바람도 못 막냐?!", "너 왜 바퀴가 두 개 뿐이냐?!" 고 으시대지 않겠다! 함께 밀어 주련다!

오후에 동네에 있는 강남구민회관에 갔다. 컴퓨터 "중독"인지라 임자 없는 키보드가 보이자 검색란에 "동북아신문"을 입력하는데 인기척이 들린다. 원체 체면이 얇은지라 발딱 일어서면서 "어서 쓰세요!"하고 자리를 내주니 너부죽한 중년남성이 사람 좋게 웃으면서 나더러 ***로 들어가 보란다.

빛으로 그린 아름다운 예술사진들과 주옥같은 시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더군다나 사진작가님은 사진과 블로그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글들이 쓰이게 된 사연을 사근사근 얘기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내심히 내가 감상하고 읽는 것을 기다리더니 급급히 무엇을 가지러 차에 간다고 한다.

오늘 "**전국사진공모전" 마지막 날이라면서 잘 포장된 사진작가회 작품집을 선사하신다. 인쇄품엔 뭐든지 애착이 가는지라 "웬 떡이냐?!" 싶어서 넙적 받고 허리 굽혀 인사했다.

일행들과 떠나면서 블로그 방문을 부탁한다. 나중에 차 한 잔 함께 하잔다. 나도 반백을 살아 본지라 그의 의도는 순전히 자신의 블로그를 홍보하기 위함이고 인사치례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지라 흔쾌히 대답만을 했다.

사진작가님이 떠난 다음 두터운 작품집을 한 장, 한 장 감상하다가 그 분이 사진작가협회 이사, 감사이고, 이름있는 공기업의 홍보실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진과 글보다 그의 프로패셔녈 정신에 깊이 매혹되었다.

사람은 살아온 방식대로 티가 나는 법이다. 세파에 찌든 나이 많은 나를 보아내지 못한 건 아니었다. 知的도 되지 못하고, 귀부인이 아닌 아주 수수한 아줌마이기에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사진을 감상하거나 댓글을 달 가능성이 1%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1%를 위하여 사투리를 쓰는 이 보잘것 없는 아줌마에게 "30분" 열변을 아끼지 않았다. 머리가 숙여졌다.

사진작가님을 만날 일은 영원히 없겠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그의 몸에 밴 직업정신과 만강의 열정을 따라배워 가는 곳마다를 불태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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