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이 되면 산중 사람들의 천국이었던 지리산 인월장터!
곶감이 천냥. 닥이 천냥. 소금이 천냥, 약초가 천냥 !
그리고 지리산 인월장터 광대가 만냥이라는 말이 있다
지리산 인월장터를 사람들이 부르던 말로 당시 가장 귀했다는 것들을 못 구할 것이 없다는 말이며 전국 최고의 인월장터 상품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물건 말고도 광대가 만냥이라는 말이 있다
지리산 인월장터에 광대가 마당을 열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장날이 활성화 되고 장사꾼이 덩달아 돈을 많이 벌수 있기 때문에 장날 번 돈을 모두 합하면 만냥도 더 될 수 있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인월장에 광대가 마당을 열수 있었던 것은 인근 운봉에 많은 광대들이 살면서 자신들도 지리산의 산물을 사고파는 일을 하였기 때문이다
인월 장터의 광대는 여기에서 재주있는 광대로 소문이 나면 인근 고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왜냐하면 인월장터는 경상도 함양, 마천, 안의뿐 아니라 남원, 구례, 장수 같은 지역의 사람들이 각자의 특산품들을 가져와 교환하던 장소였기에 그런 지방의 사람 중 재력 있는 사람이 광대를 데려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편제 판소리 명창중에 인월장터에서 한때 활동하던 박만순 명창은 함양 안의에서 온 부자 장사꾼에게 초청되어 한때 안의에서 살기도 하였다 한다
또한 송만갑 명창이 어릴적 이곳 인월장터에서 공연을 할 때 구례에서 지리산 한지를 구하러 온 부자에게 초청되어 구례에서 한동안 살기도 했다 전한다
지리산 인월장에는 지리산의 온갖 산물들이 쏟아져 모아든 곳이었다. 계절마다 생산되고 고을과 집집마다 만들어내고 지리산에서 채취한 산물들이 모아들어 각자가 필요한 물건들과 바꾸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도매장사로 많은 돈을 벌수 있었던 곳이 인월장터였다.
인월장터를 표현한 곶감이 천냥, 닥이 천냥, 소금이 천냥, 병든 사람을 고치는 귀한 한약재를 못 구할 것이 없다는 한약재가 천냥, 그리고 광대가 만냥이라는 말은 가장 한국적인 조선시대 인월장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풍경의 인월장터는 지리산에 사람이 모여살기 시작한 이래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던 시대부터 자생적으로 있어왔다.
지리산 관문에 위치하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교통요충지로서의 거점지역인 인월에 장터가 생기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함양, 운봉. 아영, 산내사람들의 독특한 산중생활방식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특수한 생필품을 구입할 장소가 인월장터였으며 그 대가를 지급할 물건들인 생활품들을 가지고 나왔던 곳이 인월장터였기 때문이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필요한 독특한 생활필수품들은 지리산에서 약초를 채취할 때 사용되는 농기구를 비롯하여 감을 따는 도구와 산비탈을 경작하는데 필요한 괘리쟁기, 그리고 한지를 만드는 도구 같은 다른 지방에서는 필요치 않는 생필품들이다. 이러한 것을 생산하던 곳이 인월 대장간 이었기에 이곳에서 그러한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하여 자기가 집주변에서 생산하는 곶감. 한지 같은 물건들을 가져오게 되고 여기에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 생필품들을 교환하게 됨으로서 점차 장시로서 기능을 갖춘 장터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인월장터에서 가장 잘 팔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골목은 가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는 곶감골목과. 한지골목. 그리고 토종꿀 골목이었으며 명절 때는 하동에서 소금길 따라 넘어온 생선골목이었다.
그리고 타 지역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든 곳은 한약재골목이었다.
인월장터의 곶감은 진주에서 상인이 와서 구입해갈 정도로 그 명성이 대단했는데 인월곶감 장터에 나오는 곶감 중 지리산 산내와 함양 마천에서 생산되는 지리산 찰곶감이 최상품이었다. 인월곶감 장터는 매년 가을이 되면 인월장터의 절반이 곶감으로 넘쳐나 이 시기에는 인월장터를 인월곶감장이라 부를 정도였다.
인월장에 나오는 곶감이 유명했던 것은 지리산에서 생산되는 골감으로 만드는 찰곶감이었기 때문이다. 함양 마천과 뱀사골 산내에서 자생하는 골감은 씨가 없고 크기가 작으며 곶감을 만들 때 분이 잘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그 맛이 지리산 호랑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속담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지리산 찰곶감은 가을 서리가 내릴 무렵에 감나무에서 감을 따서 손으로 깎아서 싸리나무에 꽂아 말리는데 높은 지리산의 골바람과 밤낮의 높은 온도차에 의한 발효건조로 그 맛과 품질이 최상이다. 기호식품으로서도 인기가 대단하였지만 설사를 멈추게 하는 민간 단방약으로도 인기가 대단 하였다.
명절 때 선물로 이름이 나있던 당시의 상품으로는 일 곶감 이 토종꿀 삼 한지였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곶감은 당시 인월장터의 최고 인기상품이었다.
인월장터가 곶감장으로 변하는 가을부터는 곶감을 만들고 남은 감껍질로 만든 온갖 음식들이 나온다. 곶감을 만들기 위하여 감을 깎을 때 나오는 감껍질은 이 시기에 배고픔을 달래는 별미를 많이 만들어 냈는데 감껍질로 만든 감개떡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최고의 인기 있는 계절 별미였다. 또한 곶감을 만들고 남은 감으로 숙성시킨 감식초는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가정상비약으로 인기가 많은 상품이었다.
인월장터에서 두 번재로 유명했던 한지장 골목 또한 가을부터 다음해 초봄까지 장터골목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상품이었다.
인월장터에 한지골목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지리산천년실상한지의 명성 때문이었다. 천년고찰 선종의 요람이던 실상사에서 불교경전 수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서책을 편찬 하는데 필요했던 한지를 실상사에서 자체적으로 생산 자급해오다 한지의 사용량이 많아지고 스님들의 한지생산 여건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인근 마을인 백일, 중황리 주민들에게 한지 생산을 의뢰하여 구매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이 마을 사람들의 농한기 생산품이 되었는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한지의 원료인 닥의 품질이 전국 최상이어서 한지 또한 최상의 품질이 생산되어 실상사에 공급하고 남은 한지가 지리산 일대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생필품이 되면서 이를 사용해본 사람들로부터 그 품질을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월장터에 한지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리산 마천과 산내에서 주로 생산하여 인월장에서 거래되었던 한지는 주로 서책지와 가정에서 사용하는 문풍지외 도배지, 장판지등이었는데 나중에는 서책지등은 수요가 줄어 생산이 중단되었고 문풍지와 도배지가 주로 생산되어 인월장에 나와 전국에서 수많은 장꾼들이 인월장터에 와서 생활 한지를 구입하면서 한지장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인월 한지장은 곶감장과 마찬가지로 매년 가을부터 이듬해 초봄까지 번성하였다.
인월장터에서 유명하던 지리산실상한지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어느 누구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손이 백번이 넘게 가야 한지 한 장이 된다는 백지라는 말이 나오는 그야말로 정성이 아니면 만들어 낼 수 없는 종이이기 때문이다.
인월장터에 나왔던 지리산천년실상한지의 가장 큰 특징은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에서 채취한 닥을 전통기법으로 발효시킨 것이며 또한 제조과정에 사용하는 닥풀에 의한 순수한 천연 자연한지라는 것이었다. 인월장터에 나오던 지리산천년실상한지는 가을이 되면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닥나무를 채취하여 와서 찜통에 찌고 닥껍질을 벗겨 얼음 냇가에 담갔다 꺼내서 말리기를 3회 정도 하고 나서 자연잿물에 삶아서 발효시킨 후 물맷대질을 하여 가루를 내고 닥풀과 섞어서 종이를 떠서 말려 사용하는데 지금도 산내면 하황마을에서 한 농가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인월장터에서 세 번째로 유명했던 골목은 토종꿀장터 골목이었다. 지리산의 수많은 밀원에서 일년 동안 한번만 채취하는 토종꿀은 귀한 손님에게만 내놓은 별미로 지리산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산하여 가을이 되면 인월장터에 가지고 나와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들과 교환하여 갔다. 토종꿀은 많이 생산되는 산품이 아니었던 관계로 가격이 비쌌는데 토종꿀 한 되와 살 한가마를 맞교환하였다 한다. 인월장에 나오던 토종꿀은 항아리에 담아서 운반하였으며 꿀 항아리에 숯을 넣어서 정제를 하였다 한다.
인월장터에서 또 유명했던 한약재 시장은 전국에서 모아든 상인들 장터였다. 곶감. 한지. 토종꿀장이 이 지역사람들의 장터라면 한약재 장터는 전국에서 모여든 한약재 수집상들의 장터였다. 지리산에서 수집된 한약재는 약효가 전국에서 최상이었기에 교통이 불편하던 일제 강점기까지 그 명맥이 유지되었었다. 인월 한약재장터는 약재별로 가장 고급화 된 것이 특징이었다 한다. 한약재중 딱주할매는 평생 동안 딱주만 캐어 팔러오고 당귀영감은 평생 동안 당귀만을 채취하여 팔러오는 곳이 인월장터였기에 종류별로 가장 좋은 한약재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인월장터가 되었던 것이다.
그밖에 인월장터에서 유명했던 것은 이곳 장터에 모아든 사람들의 먹거리였던 통새국밥과 허기를 달래주던 감개떡이었다 하나 지금은 전하여지지 않고 있어 아쉽기 그지없다.
인월장터의 통새국밥은 똥돼지 내장과 시래기 그리고 된장이 주재료였다. 지리산 산내. 마천. 인월에서는 토종돼지 새끼를 데려다 2층으로 된 통새(변소)를 짓고 아래층에는 돼지를 키우고 2층은 변소로 사용하는데 보통 6개월 정도 키우면 어른돼지가 되어 팔아서 가정살림에 운용하였다. 이렇게 키운 돼지 내장으로 만든다하여 통새국밥이라 하였는데 그 맛이 별미 중에 별미였다 한다.
인월장터의 또 다른 명물은 결혼 중개지였다는 것이다. 경상도 함양, 거창, 진주까지, 그리고 남원 운봉. 아영, 산내사람들이 인월장에 모이게 됨으로서 서로의 가정사에 대한 정보교류를 통한 결혼이 이루어짐으로서 이 지역 사람들의 결혼이 멀리 경상도 진주까지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특히 함양으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게 되어 인월장터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가 사돈이나 인척관계가 되어 장터가 항상 훈훈하였다 한다.
이처럼 사람의 정이 오가던 인월장터에는 장날마다 난장판이 이루어졌다. 운봉지역에서 살던 소리꾼을 비롯한 재인들과 경상도 지역의 재인들이 인월장터에 모여 서로 기량을 보이고 재담소리를 하는 등 인월장터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문화가 융합되는 지역이 되어 훗날 동편제 판소리가 경상도로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의 품안에 안겨 살았던 사람들이 만들어냈던 판소리와 그들의 소리판이 벌어졌던 인월장터는 지리산의 문화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생활문화로 우리들이 복원하고 지켜가야 할 자원이다.
씽크넷/ 원촌/ 동북아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