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문학장학금수혜작품-서울의 꿈(외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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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문학장학금수혜작품-서울의 꿈(외5수)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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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혜자 전월매 박사

 

가을밤

 

형언키 어려운

그리움이란 무엇인지

그대를 떠나보낸 뒤에야 뒤늦게 알았습니다

점점이 짙어만 가는 그리움으로

내 얼굴은 가을빛에 지는 꽃잎처럼 야위어만 가고

말을 잃은 그리움으로

내 입술은 언녕 가을바람을 타고 수증기로 증발하였습니다

그대를 향한 내 피는

이 가을밤에도 그대의 영혼을 찾아 그리움으로 녹아 흐리고 있습니다

 

 

엄마와 딸

 

하루에도 수십 번 전화통화를 하고

틈날 때마다 화상채팅을 하지만

앙금처럼 가라앉은 마음속 근심

 

이렇게 나이 먹어서

바다건너 유학공부 온 엄마와

건너편에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

 

당장 함께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주며

오늘도 장밋빛 만남을 설계한다

 

부부

 

한 쌍의 신발이 있다

꼭 함께 신어야 한다

칼 끝 꽃샘추위에도

생강나무꽃 햇살에도

우산 없는 여름비에도

황금빛 낙엽 길에도

지저분해졌다고 뒤처진다고

한 짝을 버리면

다른 한 짝도 무용지물이다

물감 같은 노을 속으로 나란히 가려면

땅을 꼭꼭 밟아도 보고

부지런히 함께 닦아도 주고

자꾸 끈을 죄여야만 한다 

 

이불을 깁다가

 

이불을 깁다 문득 발견한

하얀 이불 속 하단 모서리에 남겨진

검게 변해버린 동그란 코피 자국 얼룩

여러 번 씻고 제물로도 삶아 냈는데

왜 이것만이 지워지지 않았을까?

씻기를 포기하고

가위로 그 부위를 도려내고

그 자리에 새로 동그라미 모양 흰 천을 갖다 대어

촘촘히 깁고 매듭을 지었다

얼룩은 없어졌어도

하얀 모습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세월의 흔적

해지고 뜯어진 이불 속처럼

찢기고 부서지는 인생살이에서 상처를 받고 주면서

수없이 빨고 다듬어도 연륜의 흔적은 남아있는 법

그런대로 그래도 게으름 없이 정리하면서

올곧게 상처 딛고 일어서며 삶의 숙제 풀어가라는 암시

 

벚꽃

 

사월의 길목에서

어머니가 이고 오신

연분홍빛 흰 드레스

벚나무 위에 뿌려지면

벚꽃향기 별천지로 찬연하다

 

사월의 며칠

아름답게 환한 미소 지으며

총망히 드레스 걷어 들이며 가시는 어머니가

야속하고 못 견디게 그리워

나는, 잠을 못 이룬다

 

 

서울의 꿈

 

그녀는 중국에서 사범학교를 다니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과 금슬이 좋아 그림자처럼 매일매일 붙어 다녔고

금쪽같은 아들도 낳았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그녀는 주변의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는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학 왔다는 그녀의 화장은 날로 짙어만 갔고

공부보다는 외모에 신경을 더 썼습니다.

하루에도 수천 번 보고 싶다며 남편에게 하던 전화도 점차 뜸해졌습니다.

1년 후에는 아예 연락이 뚝 끊겼습니다.

아들 데리고 중국에 있던 남편이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수소문 끝에 겨우겨우 찾아낸 아내는

남편을 촌스럽다는 듯 냉담하게 바라보며

이혼하자며 거래를 끊자며 쌀쌀맞게 대하였습니다.

남편이 안 된다며 어쩌면 그럴 수 있냐며 야단쳤지만

그녀는 전화번호도 바꾸고 애에게도 연락을 안하고

정말로 거래를 아예 끊었습니다.

누구는 그녀가 돈 있는 한국남자의 유혹에 빠졌다 말했습니다.

누구는 그녀가 유학 와서 너무 많은 생활고를 겪었기 때문이라 말했습니다.

누구는 그녀의 지도교수가 바뀌었다 말했습니다.

누구는 그녀가 문학에서 경영으로 전공을 바꾸어서 실패하였다 하였습니다.

누구는 그녀가 애도 몰라보는 지독한 년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10년이 되도록 졸업도 못했고 가정도 버렸습니다.

그녀는 고향사람들을 피했습니다.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들도 드물었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질타를 받으면서도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에야

사람들은 그녀를 기억해냈습니다

 

아름다운 서울, 꿈의 도시 서울은 코리아드림을 안고 온 수많은 중국유학생들의 좌절을 안고 오늘도 황홀한 네온사인 속에서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월매 :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학박사. 시인. 시작품, 논문 수십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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