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서 느껴 본 선비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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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서 느껴 본 선비정신
  • 려호길
  • 승인 2009.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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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호길의 칼럼세계>

 안동은 생각보다 초라한 도시였다. 한 곳을 돌아보고는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야만 다른 버스를 탈 수 있는 불편, 안동찜닭은 혼자 먹기에는 양이 많아 반만 팔라고 해도 전혀 먹혀들지 않는 장사치들, 별미라는 간 고등어는 우리가 밥맛이 없을 때 먹는 조선의 간 고등어였다는 사실, 안동 신시장과 그곳에 운집한 시골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고향에 돌아간 것으로 착각한 사실, 어느 하나도 기대로 부푼 생가슴에 소금을 뿌려 간 고등어를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낙동강을 따라 하회마을 봉정사 도산서원 안동민속박물관과 안동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옛 기와집과 초가, 옛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기구들에서 옛사람들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으며 학문을 닦아 정신적 만족을 얻으려는 옛 선비들로부터는 만석거부(萬石巨富)가 없는 재빈도부(財貧道富)고을이 오늘 날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로 거듭날 수 있는 당연함도 보아낼 수 있었다.

강물에 띄운 술잔이 자기 앞으로 돌아오기 전에 시 짓기를 했다는 유상곡수(流觴曲水)는 선비의 참모습을 오래도록 생각해 보게 하였다. 선비들은 응당 정신적 수양과 함께 고매한 인격으로 사회도덕확립과 사회윤리실천에 힘쓰며 사회인의 행위규범에 소임을 다해야 한다. 또 그 사회의 양심이고 지성인으로써의 위치도 확고히 수립함으로써 높은 정신적 가치를 함양해 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네 선비들을 돌아봄은 허탈과 탄식 배신을 느껴야 한다. 여자들이 뿔뿔이 도망가고 남자들이 품팔이를 떠나야 하는 사회, 조선족사회의 인격이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고 민족사회가 정신적 의탁이 없어 방황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장래가 걱정되지만 정작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선비들은 민심을 아우르는 문장은 고사하고 손을 놓고 스스로를 챙기기에 바쁘다.

‘먼저 사람이 된 후 관직에 출사하라’는 퇴계선생의 인성교육관은 방불히 ‘작가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던 선배문인들을 떠 올리게 했다. 이제 선배문인들은 없고 ‘후배’들만 남아 '살맛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선비의 개념은 유식의 개념이며 현실에 좌우되지 않는 선비의 지조는 뭇사람들과 다른 선비정신의 표상이며 선비의 정신적 풍요로움은 부자들도 부러워하는 여유로움을 살 수 있는 밑천이기도 하다.

안동의 선비들은 잘못된 정책이 시달될 때마다 백성들 편에 서서 연명으로 왕에게 상주문을 올려 시정토록 하였으며 사회에 의로운 선비로 소임을 다 하였다. 그러나 우리네 선비들은 잘못된 시책을 보고도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쓸 데 없는 험담이나 공담으로 나날을 보낸다. 욕하고 한수 가르쳐주어도 모자랄 경험 없고 철딱서니 없는 애송이 간부들한테도 무조건 굽실거리고 구질구질 아첨하며 산다.

안동에서 들은 ‘양반은 대추 하나로 요기한다.’는 속담은 길가는 나그네를 오랫동안 눈물 머금게 했다.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의 후폭풍으로 돈과 권력과 무지가 만연되고 있는 사회에서 심성이 착하고 천성이 어진 선비들은 어쩔 수없이 물질적 욕망을 갈구하게 되었지만 그럴수록 양심 있는 선비들은 바른 말 바른 글과 바른 행동으로 약발을 세워 민심을 아우르면서 사회적 소임을 다하여 지성인으로 엘리트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는가.

일과가 끝나면 동리(洞里)로 퇴청하여 초당방(草堂房)에 들려 백성들의 소리를 들었다는 안동향리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미여지게 했다. 우리 앞 세대사람들도 시골에 내려가서는 가정집들을 번갈아 ‘돌개잠’을 자면서 민심을 수렴하는 전통이 있었다. 우리네 선비들도 1년에 몇 번씩 맞는 긴 휴가와 이틀씩 맞는 공휴일을 백성들과 어우릴 수 있는 시간에 할애한다면 개인적으로 민심을 아우르는 문장을 쓸 수 있고 백성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고 그로부터 사회적 소임을 다하는 참된 선비가 될 수 있으련만.

15명의 정승, 35명의 판서, 6명의 대제학, 3명의 왕비를 배출한 안동, 왕의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른 안동김씨를 보노라니 방불히 과거 우리 조선족의 우수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과거 수도 북경의 곳곳에서 활약하던 영특한 조선족들, 전국1위가 아니고는 발편잠을 못 자던 조선족의 오기는 이미 중국의 근현대사에 관통되어 있다.

과거 조선족의 평균문화수준은 전국1위, 그래서 선비도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많은 선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부 선비들은 스스로 선비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젖어있으며 눈치에 익숙하며 패거리를 묶고 서로를 비난하며 겸손과 정직을 잃고 변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안동이 멀어서일까. 만약 그렇다면 새끼줄이라도 꽈서 안동과 연변을 이어줄까 부다.

2009년2월10일 서울에서
블로그:blog.daum.net/mora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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