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 동포방문단 초청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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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 동포방문단 초청 좌담회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9.10.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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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가나다순)
△김영옥 연변문화예술연구센터 무용연구원

   
 
  김영옥  
 연변문화예술연구센터 무용연구원

 

 ·1960년 중국연변 연길시 공원가 출생

·연변 예술학원 무용계 졸업

·무용정고, 연변안도현문공단, 연변문화예술연구중심 인사·출납·무용연수·전직무용·음악수집사업 담당, 중국전국무용콩쿨 2등상 수상

·☏138-4431-5833

 "산·물·공기 세가지 감탄

중국과 달리 아침에 일어나도 몸이 가뿐

조용한 사람들 말소리, 문명도시 느껴"

△김 철 길림성매화구조선족중학교 조선어문교연조 조장

   
 
  김 철  
 길림성매화구조선족중학교 조선어문교연조 조장

 

·1970년 중국 길림성 매하구시 하남가 출생(수필가)

·동북사범대학 중문학부, 길림성 해룡사범학교 조선어문전업, 연변대학 조선어문전업 졸업

·수필 ‘사랑이란?’, ‘행복이란?’, ‘문천지진후의 단상’ 등 ‘길림신문’, ‘매화’ 간행물에 발표

· ☏138-9456-8508

 "충북의 음식·잘 정돈된 문화시설에 감동

한국방문 평생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돌아가면 문화의 물결 일궈보고 싶어"

△리임원 연변문화예술연구센터 소장

   
 
  리임원  
 연변문화예술연구센터 소장

 

·1958년 중국 연길 출생(시인)

·연벽대학 사범학원 졸업

·연변일보 문화부기자·문화부장·편집국장,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연변조선족지차주 정치협상회의 위원, 1회 중국연변 지용문학상·윤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사랑, 그리고 바보들의 이야기’, ‘작은시 한수로 사랑한다는 것은’

· ☏138-0448-3654

 "충북의 문화 역사 사람들의 삶까지

고향처럼 친근한 느낌

마음적인 거리 가까워지고 애정도 생겨"

△윤청남 도문시체육장

   
 
  윤청남  
 도문시체육장

 

·1959년 중국 흑룡강성 오상현 출생(시인)

·흑룡강 오상현 제4중학교 고중·연변대학 조선어 전업 통신학부 졸업

·연변문학 윤동주 문학상, 연변일보 해란강 문학상, 연변 정지용 문학상 시부문 수상

·시집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 ☏0433-362-6572

 "충북을 통해 한국을 알고 모국을  이해

한국 다녀온 사람들의 달라진 생활모습

이번 방문으로 실감할 수 있어"

 △조정희 연변문화예술센터 연구원

   
 
  조정희  
 연변문화예술센터 연구원

 

·1958년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지치주 연길 출생

·연길시 8중 졸업

·연변예술학원

· ☏159-4433-2295

 

 "가로수 과일나무·깨끗한 공기

끝까지 행사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높은 수준···  배워갑니다"

△최미란 연변일보 사회부기자

   
 
  최미란  
 연변일보 사회부기자

 

·1976년 중국 길림성 훈춘시 반석진 춘경촌 출생

·연변대학 중문전업 졸업

·조선소수민족산문상 3등 수상

 ·☏138-4477-7181

 "친환경적이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

연주회·공연 많아 문화정기 느껴

많은 중국 동포들이 한국 다녀갔으면"

 

 

때 : 10월 23일 오전 10시

   
 
  지영수  
 동양일보 취재부장

곳 : 동양일보 이사실
진행 : 지영수 동양일보 정치부장
정리 : 조아라 취재부 기자
사진 : 임동빈 사진부 기자

 

 

 

 

 

 

매년 가을,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있는 동양일보는 지난 14일

   
 
   
 
언론인, 교육자, 문학인 등으로 구성된 중국 연변 동포 방문단 6명을 청주에 초청했다. 포석 조명희 문학제와 명사 시낭송에 참가를 위해 한국을 찾은 이들은 오는 31일까지 충북도내 11개 지역을 순회하며 각 행사마다 자리를 함께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한 느낌과 동양일보가 주최하는 문화행사에 참가하는 소감을 방담을 통해 들어봤다.

언론인, 교육자, 문학인 등으로 구성된 중국 연변 동포 방문단 6명을 청주에 초청했다. 포석 조명희 문학제와 명사 시낭송에 참가를 위해 한국을 찾은 이들은 오는 31일까지 충북도내 11개 지역을 순회하며 각 행사마다 자리를 함께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한 느낌과 동양일보가 주최하는 문화행사에 참가하는 소감을 방담을 통해 들어봤다.

 

 1. 한국(충북)을 방문한 소감은?

 리임원 소장 “처음 한국에 오신 분들은 무척 감격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저는 명사시낭송회를 개최하기 전부터 충북에 오기 시작해 벌써 10여 차례 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충북은 제가 살고 있는 가까운 고장 같기도 하고 스스럼없고 가까운 느낌을 받습니다. 충북의 문화, 역사, 사람들의 삶에 이르기까지 친근한 느낌이 들고 애정을 갖게 되는 수준에까지 온 것 같습니다. 중국에 가서도 청주나 충북에 관련된 것이 있으면 더 눈여겨보게 되고 선거에까지도 관심을 갖게 될 만큼 마음적인 거리가 가까워 진 것 같습니다.”

 김 철 조장 “저희들도 조철호 회장님을 통해 충북이 문화의 고장이라고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번 방문은 평생에 한 번 있기 어려운 기회인데 한국에 올 수 있게 돼 무척 감격스럽습니다. 이번에 보고 들은 것이 제 평생에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영원히 남을 것 같습니다. 충북이 문화의 고향 못지않게 충북의 시·군을 어제까지 돌았는데 곳곳에 문화시설이 아주 세련되게 잘 꾸며져 매우 놀라웠습니다. 여기 와서 보고 놀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충북의 풋풋한 인정도 인상 깊었습니다. 도지사까지 맞아주신다는 것이 저희들로는 너무나 감동스럽습니다. 충북의 인물과 여러 가지 음식 등 다방면의 우리 문화를 많이 느꼈습니다. 충북 음식도 맛있고요. (웃음) 민족의 얼을 고국에 와서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조회장님께 말로만 들었던 시낭송회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이렇게 큰 일을 하시는 줄 몰랐습니다. 곳곳에서 군수님, 도지사, 교육장 등이 직접 읊고 문화의 훈기를 조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입니까. 저희도 작게나마 시작해서 문화의 물결을 일궈보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가지게 되었죠.”

 조정희 연구원 “여기 와보니 명사시낭송회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충북 어디에 가나 가로수들이 과일 나무로 열린 것을 처음 봤습니다. 깨끗한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시내 어디 갔다 와도 옷이 깨끗하고, 신발도 깨끗하고 먼지가 없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김영옥 무용연구원 “와 보니까 도시가 너무나 아름답고 ‘자연이 말할 수 없이 멋 있구나’ 하고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연변마다 집집마다 한국물품 안 쓰는 집이 없어요. TV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계속 보고 있고요. 한국 문화 많이 접수하고 있습니다. 여기 와서 한국 문화를 많이 느꼈어요. 또 아름답고 깨끗하고 조용한 말소리가 문명한 도시라는 것을 잘 느꼈습니다.”

 윤청남 체육장 “와서 보고 느끼고 했던 것은 본토와 모국의 차이점이 그것입니다. 여기 와 보면 문화는 실 생활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는 것인데 여기 와 보면 고국 문화가 현실에 아주 접근해 있어요. 정치를 하는 분들이 시를 담당한다던가 이런 행사를 가지는 것은 정치와 문화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을 어디가나 잘 살려서 자기 주위를 닦았다는 것, 이것은 고차원 문화를 가지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이루기 힘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본토에서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달라진 것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 다녀와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생활의 모든 것들을 한국에 다녀오지 않고는 느끼지 못했어요. 기실 충북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한국입니다. 이 하나를 보고 우리는 열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회에 본 것 느낀 것이 다 새로워서 참 좋았고요. 이번 걸음으로 인해 앞으로 우리 생활이 옛날과 완전 다른 면모를 만들 것입니다.”

 최미란 기자 “한국에 대해 저는 같은 민족이라 가깝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멀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가깝다는 것은 같은 민족이니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죠. 평소 신문, 인터넷 통해 가까이 느꼈고요. 실제 어떤가 하는 것은 한국 다녀온 조선족들의 인상이 모두 다릅니다. 우리는 이번에 와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환경이 아름답고 친환경적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무심천입니다. 풀이 많이 자라 있었어요. 제가 간 날 마침 강물 위에 두루미가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콘크리트 바닥인데 돈을 많이 투자해서 친환경적으로 자연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들었습니다. 한국분들의 일과 사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2. 명사시낭송회에 참석한 느낌은?

 김 조장 “이번에 신종플루 영향이 있어 참가 인수는 많이 줄었다고 들었는데 분위기는 대만족입니다. 각 시·군에서 명사들이 나와 낭송을 하시고 잘 하시는 분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시낭송회를 거쳐 충북, 나아가 우리 민족 문화를 되살리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와 목적은 제 생각에는 잘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참가 동포들도 거기서 많은 느낌 받았습니다. 이런 우리말과 우리 글로 된 시가 있기 때문에 이런 문화들이 있기 때문에 각국에 흩어져 살지만 마음은 한데 뭉쳐 조화롭게 나갈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고국의 동질성 많이 느꼈어요. 여러 지방분들의 열렬한 접대에도 대단히 감사합니다.”

 윤 체육장 “기실 시 문화는 모든 사람이 접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차원의 얕은 문화가 아니죠. 시는 비교적 고급문화이고 시는 고대에서 불려진 것인데 여기오니까 거리에도 시를 내걸고 서민과 고급문화의 차이를 좁히기 위해 문화인들이 많이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 낯설지 않게 이뤄진다는 것은 전 국민이 문화적 차원이 비교적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것을 억지로 가져가 눈앞에 댄다고 하더라도 멀리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를 알면 문학에서 많은 것을 앞질러 가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시를 알면 우리 생활이 변합니다. 시를 알면 모든 사물을 보는 눈이 다르고 삶의 지리가 바뀌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시 문학을 우리 가장 가까운 곳으로 끌어다 준다는 사업을 한다는 것이 기실 아름다운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연변에서 시낭송회를 다닐 적에는 학생들이 다 집합해서 읽고는 했는데 행사에는 처음 참가했어요. 이번에 와 보니 시는 무용이나 음악보다 품위 있고 사람의 심금을 울려주는 행사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 기자 “저는 개인적으로 시를 즐깁니다. 제가 읽어서 마음에 닿는 시는 메모해놓기도 할 만큼 좋아하는데 시낭송회 감상하기는 처음이에요. 들으면서 마음 곳에서 한 차례 정신적으로 승화됐습니다. ‘어머니는 그 때 그런 줄 알았다’는 시를 듣고 절절 눈물이 나더군요. 저희 어머니가 생각나더군요. 시는 마음, 심금을 울리니 사람을 더 분발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김 무용연구원 “저는 무용 전공이라서 내재적으로 알지만 시에 대해서는 알 기회가 아주 적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시낭송회에 참가해 시라는 것이 아주 품위가 깊고 예술에서도 차원이 높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이번 기회에 심심하게 느꼈습니다.”

 3. 충북의 명사시낭송회가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리 소장 “명사시낭송회에 첫 회부터 거의 쭉 참가했는데 처음보다 한 차원 높이 성숙돼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참가 명사들이 시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 느낍니다. 중국에서도 명사 시낭송회가 전염돼 가는 것이 있거든요. 길림시는 600-700만명이 사는 큰 시인데 길림시 ‘도라지’ 문학지 주필이면서 예술관 부관장인 김홍란씨가 지난해 충북의 명사시낭송회를 보고 돌아가 길림지역 조선족 저명인사들이 참가한 명사시낭송회를 주최한 적 있거든요. 저도 초청을 받아 시낭송을 하고 했었는데 보니까 처음은 하는 것이 거칠고 이러했지만 금년에는 11월 7일에 하는데 그 지역의 많은 분들이 자기도 참가시켜 달라고 한다고 합니다. 김홍란씨가 저보고도 이번에 한국에 가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돌아와서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 지역 조선족들도 시라는 것은 문인들이나 시인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생각 외로 효과가 좋아 금년에는 더 크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연변에도 머지않아 꼭 그런 형식의 행사를 개최하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길림지역 행사 이름도 그대로 ‘명사시낭송회’라고 합니다.”

 4. 충북 12개 시?군을 순회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최 기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영동에서에요. 영동에서 할 때 저녁 7시에 참가하기로 했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감나무가 가로수로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봄이면 꽃 필 때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카메라에 사진도 여러 번 담았어요. 인상적이었어요. 속리산서 할 때도 잔디밭이 아름다운 곳에서 명사 시낭송회를 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시낭송회 하는 것을 보며 발을 주춤해서 감상하기도 하고 참 인상적이었어요. 시장 군수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시에 대한 진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각 시, 각 군마다 문화예술회관을 잘 지어 놓고 문화예술 행사가 많아 음악 연주회도 있고 연극도 있고 그것 보며 느낀 것이 문화의 정기를 느꼈습니다.”

 윤 체육장 “이 고장에 와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가장 생생하게 보여지는 것들이죠. 한국 인천공항을 나가면서부터 여기는 생태가 잘 보존돼 있어요. 산마다 비어 있지 않고 나무들이 꽉 차 있고요. 이것은 이 지방의 사람들의 의식 형태, 깊은 곳의 내면적인 것을 말해주는 것이죠. 사람들이 살다보면 물질의 만족은 끝이 없죠. 그렇지만 정신적인 지향하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은 배가 불러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어느 정도 왔을 적에 정신 문명의 형상들도 같이 이끌어 가는 것이 우리와는 달랐어요. 가는 곳마다 어두운 곳이 없이 구석구석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번에 시간을 내서 예술의전당을 가봤어요. 시가지를 돌아가면서 어느 구석구석에 만들어 놓은 공공시설이 다 아담지고 예술의전당의 한 일면을 어디에도 다 그려놓고 있다는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김 무용연구원 “산과 물, 공기 이 세 가지가 아주 좋다고 감탄했습니다. 우리 중국에서 저녁 늦게 활동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기가 아주 힘든데 공기 좋은 영향을 받아서인지 몸도 가뿐하고 일어나기도 쉬웠습니다.”

 조 연구원 “속리산 그 날이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그 날 비가 오기도 하고 날이 너무 추워 달달 떨었습니다. 우리 연변이라면 저는 이런 행사가 있으면 참가했다가 앞에 것만 읽었다가 달아나요. 그런데 여기서는 읽은 사람이나 참석자들이나 다 끝까지 있어 ‘이 사람들이 문화적인 수준이 아주 높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 문화가 높고 발전해야 나라도 잘 발전하겠다는 것을 느꼈어요.”

김 조장 “증평, 옥천 등에서 고등학생들이 와 있었는데 제가 워낙 교원이라서 그런지 그것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인 청소년들이 느낄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명사시낭송회에 참가했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5. 중국 연변에는 어떤 문화예술관련 행사가 있는지?

 리 소장 “금년에 예술제를 했는데 전문 단체나 아마추어들 공연, 콩쿨을 한 행사들도 있었고 공연 뿐 아니고 어린이날에도 대형광장무 같은 것도 하고 그러한 대중적인 행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 시낭송회 같은 것은 한 번도 있은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시낭송회를 하기는 하지만 시민적인 시낭송회의 물결은 있지도 않고 그렇게 하리라고 앞으로 한동안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한국과는 차이가 납니다. 또한 한국과 교류하면서 판소리 등 공연 단체들이 연변에 와서 공연도 하고 합작해서 하기도 합니다.”

 6. 연변 조명희 문학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리 소장 “금년 5월에 매화구시에서 8회 행사를 가졌습니다. 2002년도에 시작했는데 1회부터 5회까지 연길에서 열리고 6,7회는 용정에서, 8회는 매화구에서 열렸고 9회는 길림시에서 하려고 합니다. 그동안은 조선족들이 집결해 사는 연변에서 개최했지만 조명희 문학제가 단순히 연변 뿐 아니라 중국 전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문학상 공모 등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출발은 연변에서 했지만 연변 외에 길림성, 요녕성 등으로 확산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행사는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청소년 문학상 공모를 하는 것입니다. 중국 전역의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운문과 산문으로 나눠서 공모하고 있습니다. 중국 살고 있는 동포 학생들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하고 우리말과 우리글로 된 글을 창작하는 것을 고양시키기 위해 조직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5월 30일까지 기준을 잡아서 전역에서 300∼400명의 학생들이 공모에 참가해 작품을 보내오면 문단의 권위 있는 자들이 심사를 맡아서 시상을 합니다. 다른 하나는 조명희 문학제 추모제와 비슷한 행사를 합니다. 먼저 공모에 참가해 선정된 학생들에 대한 시상하고 조명희 선생에 대한 일대기를 담은 영상물을 보여주고 추모시와 기념시 낭송을 하고 하는 것들로 조직이 되어 있습니다.”

 7. 중국에 돌아간 후의 계획은?

 최 기자 “우리 연변 일보는 조선말 신문입니다. 조선말 신문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죠. 조선말 기자로서 우리 조선말의 우수성, 민족성 등을 많이 고양하고 우리 조선말 신문을 더 잘 꾸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윤 체육장 “한국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점들을 가까운 친지와 동료들에게 그리고 전 사회에 전파가 잘 될 수 있는 모든 관계를 다 이용해서 우리 모국의 오늘 날의 면모들을 전하고 우리 사회에서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가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자그마한 문화를 많은 사람에 전파시켜 모국과 본토의 좋은 다리를 놓는 작업을 홀시하지 않고 할 것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모국이 손짓하는 날을 기다리며 살고 싶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10여개의 시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고국의 잘 보존된 생태, 자연에서 느끼는 감성 등을 시로 만들어 잡지 등에 실어 홍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돌아가면 완성해서 발표할 것입니다. 저희가 한글을 익혔던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것 후회하지 않고 자랑으로 생각할 수 있음을 느꼈던 기회였습니다.”

 김 무용연구원 “계속 로우만씨가 무용한 것만 보고 한국분이 독무하는 것을 하루 딱 한 번 봤어요. ‘어느 날은 저 무용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겠지’ 생각했는데 아직 기회가 없습니다. 현대적이며 민속적으로 한 것, 개성이 다르게 하는 모습이 좋았고 동무의 무용이 이전에는 그런 무용 못 봤는데 처음 그런 것을 느꼈어요. 앞으로 돌아와 무용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이바지하겠습니다. 우리 민족 무용 사업에 정진하겠습니다.”

 조 연구원 “자기 자손들에게 널리 선전해야겠지요. 환경이 깨끗해야 건강하지 않습니까. 건강이 있어야 다른 것 잘 할 수 있고요. 깨끗하게 살아야겠다는 것을 많이 전달하려 합니다.”

 김 조장 “이 문제는 제가 계속 생각해 오던 문제입니다. 일단은 돌아가서 김천석 선생님을 다시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매화구는 ‘매화’라는 잡지가 있을 정도로 문인들의 활동이 활발합니다. 우리 교장 선생님께도 연변 명사시낭송회를 말씀드려 모습을 모방해서 시점을 잡아서 차차 영역을 크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평소에는 애들을 올려 보냈어요. 이번에 와서 들으면서 시낭송하는 품격도 다르거니와 방법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요. 몇 번 세면서 나가야 된다는 것 등을 무의식적으로 학습했습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도 올라가고 저도 올라가서 시낭송을 하도록 할 것입니다.”

 리 소장 “돌아가서 제가 회장을 맡고 있는 포석회가 하는 포석 조명희 문학제를 새해에도 이어나갈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보다 더 훌륭하게 할 수 있나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중국과 한국이 수교된지도 16년 이렇게 되었는데 그 전보다 한 차원 관계가 격상된 동반자입니다. 동포들도 한국의 문화 등을 배워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데 동포들이 가교적인 역할 하는 시기가 전보다 더 뚜렷해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전에는 동포들이 한국에 와서 일도 하고 했다면 이제는 중국과 한국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8. 동양일보 초청으로 이뤄진 이번 방문 소감은?

 최 기자 “감사합니다. 연변의 많은 분들이 한국에 다녀갔지만 와 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거든요. 다들 한국에 한 번 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같은 신문사인 동양일보서 초청하니 기쁘고. 이런 고급 행사 접하게 되어 기쁘고 충북도를 돌며 어떤 곳은 어떤 특징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전반적으로 충북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윤 체육장 “이런 좋은 문화 행사를 동양일보에서 이끌지 않으면 사회에서 다른 부분에서 이런 일을 하기는 참 어렵죠. 특히 자기 신문 밖의 전 사회 문화를 어느 차원을 바라보고 이끌어 가는 행사는 우리 타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불어 넣어 주었고 앞으로 문화적 교류에 커다란 융화 작용이 이루어지는 바탕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김 무용연구원 “저는 이번 기회에 동양일보에서 제 인생 처음의 이렇게 큰 행사에 초대해주시니 참 기뽑니다. 높은 차원에서 초청 받아 왔다는 것이 제 인생에서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연구원 “연변에서 한국에 관광으로도 올 수 있고 하지만 이런 문화적인 행사에 참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저로서는 감동할 만한 일입니다. 이번 기회에 많은 것을 학습했습니다.”

 김 조장 “저도 동양일보 통해서 나오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교육계 인사 초청해줘 더구나 고맙습니다. 재직 국어 교원들이 기실 나올 기회가 적어요. 나왔다는 것은 행운이면서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어요. 앞으로 동양일보에서 교직원도 많이 초청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리 소장 “조철호 회장님께서 9년 째 중국에 있는 문인, 언론인, 교육자, 예술인 등 정신 노동에 종사하는 조선족 사회의 사람들을 100명 가까이 한국에 초청했습니다. 한국의 문화를 배우고 느끼고 하도록 해서 이런 분들이 여기서 보고 듣고 느낀 것 중국에 돌아가 아름다운 민족의 문화의 정수들 받아 들여 민족 문화를 고양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알기로는 대학교 같은 경우 교류는 많이 있지만 문화계에서 100명 가까이 하는 곳은 동양일보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10년 가까이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국도 경제 위기 때문에 힘들고 중국도 마찬가지로 힘든데 이번에 힘드니까 끊자는 것 없이 9년 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포들 초청해줬다는 것은 참말로 감사하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앞으로 남은 일정을 잘 마무리하시고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한국의 문화를 가슴 속에 품고 고향으로 돌아가셔서 많은 분들에게 잘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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