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은 무리]
원점질기게 씹어보는 세월의
이빨 사이에 모여드는 침에
홀랑 벗은 알몸덩이 헹구어져
들의 원점에 바로 얹히다
풍요롭던 육체가 부활하면
생명은 단계 높은 원점에 닿다
맞붙은 순환의 위차
핏빛 먹은 산그늘 끌며
내 가듯이 해는 지고
무덤 앞 금잔디
요란스럽고 또
말 잃고 고요하여
아득히 흐르다//
임 보고파
어둠 속 찬연한 꽃송이는
손발 시린 세상에
욕심 없는 맘 열고
“이런거야”
중얼대며
승려 가듯이
원점을 바라처럼 쓸어
그리움의 빛
빚다//
비 오는 오후는
강둑 초록 밟으며
비 오는 맑은 오후는
서늘한 낮잠을 잘 때다
삼꽃거리 43-29-11번지
해가 잘 들지 않는
나무 침대의
절단된 슬픔이 얼룩지고
강철의 배수관이 부식되어
해의 씨는 얼음 속에 박히다
뛰어 넘을 수 없는 그림자가
가루되어
대기층을 이루고
구름은 모였다 흩어지고
나는 노화되다
국화거리 해방로 질벅한 길목에
어지럼증은 부연 해빛을 쪼아 먹고
머나먼 바다의 찬비에
상상을 잃은 시인은
멈춰선 사막이 되고
가장 긴 오후가 되다.//
나 주위의 금 밖에는
꼸을 따라 운행하는
빛의 생명은
나의 범속한 명과는 달리
시간이 소모되지 않는
영원의 공간
피와 살에 내려앉는 꽃이 돋아나고
심장이 덥혀준 아지랑이 피어나고
음악 같은 노근한 바람이 구르고
우주의 해가 떠가고
자연의 의지가 과일처럼 심어지고
나는 빛은 따서
어지러운 창밖을 화로처럼 덥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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