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키키에서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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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에서의 상념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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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65>
‘하와이’ 하면 살기 좋은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호놀루루의 와이키키는 세계 최고의 휴양지라 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 사철 따뜻한 기후와 맑은 바닷물과 곱고 깨끗한 백사장을 든다. 그러나, 그런 자연 환경과 조건이 와이키키를 유명한 휴양지로 만들었을까?

   물론 와이키키에 가면 누구나 좋은 환경과 기후에 감탄한다. 드넓은 바다와 긴 백사장에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들, 여기에 거의 항상 계속되는 맑은 날씨, 기후도 밤이나 낮이나 사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뜻하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바닷물마저 매우 맑고 깨끗하다. 물풀 사이에서 노니는 물고기들까지도 환히 들여다보인다. 모래알도 곱고 습기가 적어서 뒹굴다가도 툭툭 털고 일어서면 그만이다. 곳곳에는 가지각색의 꽃들이 피고, 여러 가지의 새들이 바다와 숲 사이에서 날아다닌다.

   그래서, 가로수 옆에 앉아서 하얗게 거품을 일구며 끊임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보거나, 훤칠한 키에 길다랗게 내려뜨린 야자수 잎 사이로 빨갛게 물들어 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말 그대로 천국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와이키키를 세계 최대의 휴양지로 만든 것은 단순히 이런 것들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정도의 좋은 기후와 아름다운 풍광을 갖춘 지역은 세계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환경 조건들은 필요 조건은 될지언정 충분 조건은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와이키키에서 몇 일을 지내보면 이곳이 왜 최고의 휴양지가 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게 된다. 파란 바닷물에 이어 활처럼 휜 하얀 백사장, 그 다음의 야트막한 둑길 보도와 차도, 차도 양쪽에 늘어선 갖가지 상점과 호텔 식당 같은 것들, 이런 것이 모두 서로 이웃하고 있어서 함께 한 마당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텔에서부터 수영복 차림으로 샌들만 신고 도로를 건너 백사장으로 나온다. 돌아갈 때도 그런 모습이다. 맨발인 채 다니는 사람도 있다.

   더우면 바로 걸어서 바닷물 속에 들어가 놀고, 추워지면 백사장으로 나와 널찍한 깔개수건을 펴고 누워 일광욕을 하며 쉰다. 긴 수영을 하고 싶으면 방파제 너머 대양으로 헤엄쳐 간다. 서핑을 하고 싶으면 보드를 빌려 파도를 타고, 물속 풍경을 보고 싶으면 잠수경을 쓰거나 숨통 호스를 물고 잠수를 한다 해안가 방파제 안쪽의 가두리 수영장에서 노인이나 아이들과 어울려 수구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해변가 의자에 앉아 멀찍이서 유유히 지나가는 돛을 단 요트나 관광유람선을 바라보며 즐길 수도 있다.

   음료수라도 마시고 싶거나, 모자든 물안경이든 필요하면 가까운 삼점에 들르고, 요기를 하고 싶으면 바로 길가의 식당으로 가면 된다. 아예 호텔방으로 가고 싶으면, 백사장 길가 쪽에 마련해 놓은 높고 낮은 두 가지의 샤워기의 수도꼭지를 틀어 선 채로 몸을 씻는다. 젖은 수영복을 입은 채 그대로 걸어서 들어와도 되고, 잠시 길가 의자에 앉아 쉬거나 해안가 인도를 따라 풍광을 구경하다 보면 옷은 어느 새 말라 버린다.

   정말로 와이키키는 지내는 데에 아무 불편이 없는 곳이다. 맑은 바닷물에 깨끗한 해변 백사장, 가까이 있는 즐비한 상가와 훌륭한 숙소들, 곳곳의 좋은 편의시설과 풍부하고 다양한 물건들, 잘 정리된 도로와 사람 위주의 거리 질서, 수수로 다니는 여러 종류의 버스와 잡기 쉬운 택시, 어느 것 하나 필요하고 편리하게 해놓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거리의 건널목과 건물 앞의 보도들도 모두 경사지게 만들어서 자전거나 휠체어 사용이 편리하도록 해 놓았다.

   여기에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잘 조화된 시설들, 사람 본위의 질서와 자유로운 개인 생활 위주의 제도,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며 살아가는 인식, 이러한 것들이 이곳을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와이키키는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변가 인도에는 산보 나온 사람들이 이어지고, 백사장에는 어느 곳에서나 수건을 깔고 눕거나 간이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호텔 주변의 야외 카페나 간이식당에는 환담을 나누는 사람들로 밤이 가는 줄도 모른다 와이키키 전체가 해수욕장이요 상가요 숙소요 휴식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와이키키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다. 와이키키에 가 보면, 행복한 삶이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나 물질적인 풍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또한 행복한 삶은 편리와 자유로움 속에서 누려진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그런 면에서, 와이키키는 화장실에서의 사색처럼 휴식하며 깨닫는 명상의 휴양지라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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