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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실로 돌아왔다. 편이약방 음식상은 깨끗이 치워져있다. 복선화가 묻는듯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나는 어깨 으쓱하고 네활개 뻗고 누웠다. 그녀의 마디 거칠고 빳빳한 손이 내 이마를 쓰다듬어왔다. 눈에서 부지중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찬 입술이 나의 왼쪽눈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더듬어잡았다.
자식, 요정같은게…
한겨울, 꼬마요정은 이불안에서 내 가슴에 파고들었다. 신음하듯 속옷안에 손을 밀어넣고 팥알만한 내 젖꼭지를 잡고 만지고 비틀었다. 그리고 세월은 어느새 왕창 흘러가버린것이다…
그렇게 된걸 어떡하면 좋아?…상심 마시라구.
안야, 괜찮아, 형은?…진수형소식 알고있어?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앉았다.
선화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어왔었다. 터프한 머리카락이 손바닥에 까칠거렸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가슴은 깡깡 마른 우물, 안에 조약돌밖에 보이지 않았다.
응, 이제 알게 될거야…오빠의 가슴은 언제봐도 편하다. 오빨 많이 좋아했는데…이젠 모닥불이 사그라졌고 재티와 따뜻한 온기밖에 안남았네…오빤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전번에 얘기했잖어? 남편은 무슨 공정사구 딸 하나 있구…
운명이야, 나 참 더럽게도 재수가 없어, 농촌 벗어나자구 인애처럼 발버둥질했는데 그만 딱 걸리구말았거든! 보기엔 우리 남편 신수 멀쩡하게 잘생겼어요. 기술이 좋아 뭇사람들의 총애를 받았었지. 영어사전 하나 통채로 외울 정도로 머리 비상한 양반이구, 헌데 마흔을 넘기더니만 어느 하루 돌아버리더라구. 기막혀서, 간질병이래. 알고보니 그이 부친도 같은 병으로 돌아갔다나? 유전인셈이지, 펀펀해 있다가도 발작하면 뭐든 잡아던지고 깨는 바람에 집안에 성한 물건 하나 없어요. 여러번 정신병원에 입원했지만 낫지 않더라구요.
아아, 무슨놈의 팔자인지? 그때는 시내총각이라면 처녀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시집가던 년대이니까.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시내문명 누리기 위해 무지막지한 선택들을 많이 했지. 결국은 다들 이도저도 아닌 민족이 되고말더라구. 조선족도 한족도 아닌…
훗참, 집에 가보니 애도 애아빠도 똑 같더라구요. 가래침 찍찍 뱉으며 중국말 쌍욕을 거침없이 내뱉구, 부엌이 까매도 닦고 거둘 생각은 안하고 지내데요. 환장 안하게 생겼어요?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해야지? 속이 울렁거리고 터질것 같았어요. 나 참 박복하지?
뭐, 뭐?…그랬어?…그런 일 있었어?
나는 억이 막혔다. 나의 꼬마요정이 잘살고있을줄 알았는데? 그런 불행에 있을줄은 전혀였다. 타고난 팔자요 운명일게다.
그래서?…환자는?…
좀 낫긴 한데 가끔 발작해요. 애가 학교 다니며 제애비 시중드느라 꼴이 말이 아니더라구요. 그런데도 부녀간에 정이 끔직하더군. 애빈 정신이 들면 무조건 딸애를 찾고 딸애는 애비 낯 씻어주고 밥해 먹이구…흐흐, 애가 뭐란줄 알아요? 엄만 엄마의 행복이나 찾으래요. 자긴 충분히 리해한다구, 돈만 보내주면 자기가 아버지를 돌보겠데요. 허니 내가 모른척할수 있나요? 휴…이런 얘긴 처음 듣죠?
그래, 그래, 처음 듣는다…기막히구나.
나는 저도몰래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골우에 턱을 얹고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을것 같았다. 자는듯마는듯 숨소리 달게 쌕쌕거린다. 순간 그녀가 피씩거리더니 베시시 웃었다.
나 괜찮아요, 가만 생각해보면 마치 남의 일같거든. 책에서 본 슬프고 가슴 아프고 기막힌 이야기같구…오빤 행복하지?
글쎄…사람마다 가정마다 나름대로의 고민과 불행이 있는법이지! 산다는것은 그런거야, 너무 상심말라구.
상심은?…나 고향에서 참대곰이야기 한적이 있지? 흑백사진밖에 못찍는…?
그럼 나두 참대곰이겠구나, 허허.
씨, 오빤 왜?
아니, 그저 해보는 소리이지! 니 언니는 이젠 참대곰에서 탈피한것 같더라. 칼러사진이 제법 잘나올것 같던데?
칼러사진이라니? 아…
그녀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벽을 치며 깔깔 웃었다. 나도 덩달아 시무룩이 웃고말았다.
마침 공교롭게도 복선녀가 문을 떼고 들어섰다. 흰바탕에 줄무늬잠옷을 입은 당신의 눈빛은 웬영문이냐 묻듯 한다. 초불빛탓인지 얼굴이 창백하고 눈이 더 커보였다. 흡사 긴 병을 앓고 회복기에 들어선 환자같았다. 우린 또 한바탕 웃어제꼈다.
이 기집애?…왜 그래? 아이, 웃긴요?
호호, 오빠가 언니는 이젠 칼러사진 나올만하데.
칼러사진? 무슨 뚱단지같은?…
그런게 있어, 호호, 그런 이야기갉
자초지종을 들은 당신도 시무룩이 웃엇다. 동생한테 가만히 눈을 흘기였다. 선화가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났다. 혀를 내밀더니 손을 흔들었다.
내 이 정신 보지, 눈치도 모르고…호호, 그럼 두분 잘지내세요, 굿빠이!
저 기집애!…
당신은 눈을 하옇게 흘겼다.
유진이와 강씨가 산을 내려갔다. 나는 그들을 바래주지 않았다. 내 가슴은 어지간이 진정되였다. 당신에 대한 원망이나 서운함이 찐찐하게 가슴에 엉켜있다.
당신은 곁에 바싹 다가와 앉았다. 당신만의 살내음이 옛기억을 꺼집어냈다.
가을호수같은 당신의 큰눈이 조용히 나를 주시했다.
미안해.
당신이 속삭이였다. 어쩔수 없잖느냐, 였다.
뭐가?
그냥 미안해!
그래, 당신이 나에게 이럴수 있나? 내가 보지못하는 세계라고 나를 눈먼장님으로 만들수 있나? 내 입귀에는 살기에 가까운 미소가 나붓겼다.
당신이 나의 손을 끄당겨 잡고 쓰다듬었다.
밤이 깊었네, 밖이 너무 고요하다. 바람이 자는것 같아요. 비밀을 가득 품은 숲은 마치 한바탕 음모를 꾸미고있는것 같구…
생뚱같이 무슨 소릴 하려는가 책망하려다 나는 가만 내버려두었다. 그녀의 느낌을 알고싶었다. 말하려는 저의가 궁금해났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미안…숲에 들어서면 난 이상해난다. 어두운 곳에 누가 숨어 나를 엿보는것 같기도 하구, 내가 외려 누굴 엿보기라도 할것 같이 두리번거리게 되지. 숲에는 분명 눈이 있어, 메돼지나 사슴의 눈같기도 해요. 그 눈앞에서 난 가끔 벌거벗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든, 발가벗고 살림속을 걸어들어가고싶은 충동!…
흐흐, 그러면 날 엿보며 음모를 꾸미던 눈이 떼꾼해지며 한줄기 바람으로 변해 도망할것 같아. 흙내, 숲내 물씬 풍기면서. 그런데 숲의 음모지에 가보면 홀연 산수화가 피어있을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상하지? 호호, 제발 그런 눈 하지마, 나 정신 말짱하니까!…
난 참 뭐가뭔지 혼동될때가 많더라. 아름다운것이 추악해지거나 추악한것이 아름다워지고, 아니면 둘이 뒤죽박죽 되여가구, 그러나 지금 난 뭐든지 대수로워 안한다, 너무 당당해있다. 그리고 때론 머리가 텅텅 비어있는것 같아 슬프다, 누구한테 당한것처럼…
당신은 또 이상한 소리를 하고있었다. 당신네뜨락에서 밤에 나가 다니던 당신을 보고 느꼈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도 뭐라 꼭 짚어낼수 없다. 리공과를 좋아한 당신한테 그런 느낌이 어떻게 생겨났단말인가?
당하다니?
나는 의아쩍은 쪼로 물었다.
아니, 해보는 소리야…왜 이렇게 춥지? 나 좀 안아줘도 괜찮어? 그래줄래?
놀라겠다, 와 그러는데?
그냥, 좀 어째줬으면 해서…너를 보니 내 살갗과 맘에서 뭔가 희미하게 피어나고 살아난다. 너를 좋아했던, 너무너무 좋아했던, 그리고 아파했던, 너무너무 아파했던 감각들이 숨을 쉬며 재생하는것 같네…오늘저녁 나 참 외롭다. 왜 이래 쓸쓸해날까? 혼자선 감당하기 어려울같네…호, 선화한테 아까 난 여기서 자고가겠다 했거던…그럴까?
뭐라구? 너 정말…
안될게 뭐 있는데? 너 자고 나 자는데 무슨 상관인데?
남들이 알면 어쩔려구?
어쩌긴? 그런가 하지…누가 안다구? 킥!
나는 어이없이 웃고말았다. 당신이 나의 품을 비집고 들어왔다. 결국 나도 그렇고그런 놈이 아닌가? 나는 당신을 안을수 밖에 없었다.
초불빛이 너울거렸다. 당신의 뒤모습은 어둠에 잔뜩 부풀려있다. 머리카락 몇오리가 내 턱에 닫아 나올거렸다. 동그랗던 어깨가 약간 각이 나고 몸이 갑삭해보였다. 처음엔 그런 느낌이 아니였는데? 세월이 흘러간 자리, 가녀란 슬픔이 빠져나간 자리, 그래서 당신이 더더욱 애틋해났었다.
허, 감회가 깊네요. 이 밤, 이 숲속에서 누가 널 안아보리라 꿈이나 꿨을까?
그러게…래일아침은 일찍 원각사에나 가자.
원각사라니?
그런게 있어, 이 산 정상에 유명한 절이야. 조선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할때 지은것이래. 산이 비록 크지 않아도 봄이면 입구에 벚꽃이 만발하구 철쭉꽃이 필때는 철쭉제가 열리기도 하거든. 여름이면 짙은 록음과 계곡 깊은 곳에 동폭포 서폭포의 물소리 요란하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죽여주지. 바람이 불때 흔들리는 풍경소리, 난 그 소리가 왜 그리 좋은지 몰라. 마치 신선이 다녀가면서 내는 소리같아. 래일아침 가보면 알겠지만 절에 가 기도하면 속이 얼마나 편해진다구.
너 절에 다녀?
그래, 드문드문…부처님 만나뵙고 속 비우러 다닌다. 불교의 이런 경구 들어본적이 있어? 사랑하는 사람 갖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자주 만나 괴롭다. 그러니 무심(無心)으로 살아가란 교훈이지. 난 정말 널 편한 맘으로 만났으면 했다. 너도 그러길 바랐고…니도 봤지만 유진이와 강씨의 일, 그리고 진수형, 경자까지 알고보면 하나하나 그렇잖구뭐냐? 일일이 시비하고 가슴 두드리고 살수 없으니 속 비우며 사는게 명지하지 않냐?
음, 하긴…진수형은 어데에 있게?
혹 래일아침에 가면 만날수 있을지도 몰라.
아, 그래? 병 괜찮아졌어?
당신은 묻는 말에 대답 안하고 초불을 입으로 불어껐다. 집안은 삽시에 어둠에 휩싸이였다. 한가닥 그을음내가 코끝을 스쳤다. 홀연 마음이 싱숭생숭해져갔었다.
나는 옷깃을 들추고 당신의 배살에 손바닥을 갖다대고 가만히 끌어안았다. 배살이 약간 나왔으나 그래도 탱탱한 편, 당신의 몸은 차츰 따뜻해져갔다. 나는 당신의 어깨에 턱을 얹었다. 밖에서 바람이 숲을 스치는 소리가 났다. 마치 먼 기억처럼, 기억의 날개처럼!―
인생은 이상한거야, 당신과 이런 밤을 보내다니?
또 그 소리, 그래서 인생이라겠지, 당신과 난 몇겁의 인연을 갖고있는지 몰라. 적어도 몇백년, 백여년은 그런 식으로 어우러져 오지 않았을까? 호, 나 참 언제부터 이런것 믿게 됐는지 모른다. 니가 유진씨한테 말했다던 인연설같은것을, 생각해봐. 이 땅에서 우리 부모님들이 보따리 꿍져 만주로 갔고, 가서도 한고향에서 땅을 일궈냈고, 그래서 우리가 태여났고, 우린 같이 자라면서 서로 사랑을 했고, 커서는 갈라져 제마끔 가정을 일구었고, 그러다 어느날 이 땅에 다시 돌아와서 만나 사랑을 나누고있고…지금은 사랑인지 모르지만, 분명 인연이고 연분이잖어?
그러게, 스텝을 밟는다는 말이 있지? 보조, 승강구의 발판, 계단 혹은 댄스의 발과 몸동작, 우린 스텝을 밟으며 한바퀴 돌아온 같네. 물론 조상들이 밟던 스텝을 밟으면서 말이야. 우리 둘도 어떤 스텝을 밟으면서 이 자라에 온것 같아요. 세상은 빙글빙글 돌고돈다, 우리 인생도 돌고돈다 했지?…그래서 널 보면 견딜수 없이 애틋해나고 놓아주고싶지 않구나. 그냥 바람에 스치는, 길거리 전등불빛에 비친 풋사랑이 아니잖어? 참, 너 아냐, 내가 왜 고향을 그토록 잊지 못하는가를?
왜 그럴까? 니가 태어난 곳이라서 그런게 아니겠지, 태어나선 기억에 없으니까. 니가 있고 내가 있었고 우리가 자라며 같이 놀던 자리가 남아있고, 잊지 못할 숱한 기억들이 머물러 있으니까…그래, 우리가 놀던 자리, 난 그래서 고향을 못잊는다.
그래, 놀던 자리, 바로 그런게다. 그곳이 머문 체취나 감각이나 느낌이요, 고향이란 못에 남긴 우리들의 떼국같은것이지…허, 이러면 우리 그곳에선 정치한다고 한다. 이젠 정치 그만하자. 나 너 좀 만져도 돼나? 괜찮겠어?
무슨 뜻이야, 만지고 있잖어?
허, 그러게…
나는 손길은 관능적으로 변해갔다. 둔부로 미끄러진 내 손은 당신 엉치의 볼륨과 볼륨 사이 난 계곡과 원숭이적에 꼬리가 떨어져나간 자리를 만졌다. 살갗이 약간 까칠거렸고 뼈도 딱딱해났었다. 고것은 참으로 이상한 자리였다. 꼬리뼈가 남긴, 거기에 동물적이고 원시적인 괴이한 감각이 머물러있었다. 짐승이 사람으로 탈바꿈한 물리적인 증표, 본능이 민감하게 응축된 곳, 당신은 약간 몸을 비틀었다.
이번에 나는 당신의 배살을 거침없이 올리 더듬었다. 젖가슴 계곡에 난 짬에 맞치는 뼈에 살갗에 땀이 돋아나있다. 당신의 숨소리가 귀에 익었다. 우리가 놀던 못에 남겼던 입김들, 당신은 참을수 없다는듯 몸을 돌려 내목을 끌어안았다.
우리는 키스를 시작했다. 키스는 본래 그런것인가? 점액 가득 묻은 당신의 혀는 약간 넓고 두터웠다. 약간 이상스러웠다. 입안에서 혀가 돌아가고 활발한 교감이 시작되여서야 나는 차츰 혀끝에 살아나는 당신 꼬리뼈의 감각을 찾아낼수 있었다. 우리 둘만의 꼬리뼈감각이였다. 서로 혀를 물고 물리우고, 이빨에 눌린 당신의 혀는 나의 입안에서 한가득 꿈틀거렸었다. 당신 온몸의 신경과 관능과 원시가 단단히 찝히운것, 떠났던 당신을 나는 끝내 잡은것이였다. 마침내 낑낑 신음소리를 내며 당신은 주먹으로 내 어깨를 두들겨댔었다…
키스 끝내자 우리는 서로를 안고 누웠다.
나의 품안에서 당신은 먼저 나를 찾아 잡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의 손안에서 꿋꿋하게 한껏 신들려있었다. 당신은 몸을 꼬부리고 일어나 내 배꼽아래로 내려가며 열띤 키스를 퍼부었다. 잠간 머뭇거리더니 불시에 나를 삼키였다. 팽창할대로 팽창해진 나는 당신의 입안에서 이름할수 없는 희열의 봇물에 휩싸여갔었다…
나는 뭐라 웨치고싶었다!
누군가는 고조에 오르면 웨치라고 했다. 중국 어느 녀류소설가의 단편 제목이 그랬다.
그러나 내 가슴은 괴성을 내지를수 없었다!
나의 손에 의해 당신의 속옷과 팬티도 끄잡혀 내려졌다. 여적 내가 만져보지 못한 당신이 가꾼 숲은 무성했고 신비로 푹 젖어있었다. 관능에 의한 분비물들은 촉감을 자극해 나를 사나운 짐승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룡이 되려다 못되고 큰못에 산다는, 이무기같은 당신의 구렝이였다.
조금, 조금만 참자. 구렝이의 관능을 빌어 나는 당신 신경조직의 세부들을 낯낯이 알고싶어했다. 당신도 애써 타이밍을 맞추려했다. 뭔가 급해지고 쫓기고 불안해지고 충동되면서 나는 끝내 마지막을 가지 못했다. 으스러지게 당신을 끌어안고 준비 덜 끝낸 당신안에서 자기를 터뜨리고 말았었다…
이윽고 나는 낯을 찡그렸다. 이게 뭔가?
나의 관능에 남긴 기억에는 당신의 구조가 억망이였다. 처음이니 타이밍 못맞춘 탓일수도 있었다. 그래도 실망감은 나를 끝없이 싱겁게 만들어버렸다. 전혀 성경험이 없듯, 총각때부터 수십년 장고해온 열망의 늪이 이런것이였던가!?
당신은 가녀란 한숨소리를 내고 일어나앉았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당신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씻어야지…
그래, 나 먼저 씻을게.
당신은 침대에서 내려갔다. 대야에 물 떠놓고 쪼록거렸다.
당신은 주섬주섬 옷을 입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두손으로 낯을 감쌌다.
왜 그래?
나는 불안해서 물었다.
안야, 그냥…있잖어? 이러면 내가 당신녀자가 되는거야? 진정한 당신의 녀인이 되는가구? 훗, 내 물음이 유치하고 우습지?
그랬다, 유치하고 우서운 질문이였다.
그래, 그래, 넌 내 녀자가 된거야.
나도 유치한 말을 뱉아야 했다. 당신 무릎을 쓰다듬었다.
훗훗, 내가 너무 천진하고 멍청해서그래. 처녀때는 그렇게 생각했거든, 니하고 관계하면 애가 생기고 금방 니 녀자가 될거라구. 처녀는 어쨌든 결백을 지켜 시집가던 첫날밤에 자기를 바쳐야 평생 남편의 사랑을 받을 자격있다구…그런데 그게 아니잖구 뭐냐? 우린 얼마든지 좋아했을수 있었는데…혹 그때 애라도 생겼더라면 운명이 어찌됐을까?
쓸데없는 생각은? 이젠 과거에 너무 집착말자, 오늘이 소중하니까.
그저 그렇단 말이지…그래서 싱겁단 말이지.
인생은 본래 싱거운게 아닌가?
나는 알지도 못할 정리를 내놓고 킥킥거렸다.
당신은 내 볼에 키스를 하고 희미하게 웃었다. 품을 비비고 들어왔다.
나는 또다시 바람이 숲에 별에 스치우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