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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사상에 문제가 있는줄 안다. 서술이 엉뚱한데로 빗나가고있다. 생뚱같이 어둠을 말하다니? 나의 의식은 어차피 내가 살아온 사회속에 굳어져있고 관습에 젖어있다. 때로는 딸애조차 나의 언행을 문제삼아 시비하고 무시한다. 나는 자기가 한심하게 생각된다. 쉼터에 대한 서술에도 억지가 있다. 나는 자기의 주인공들을 쉼터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왜 쉼터인가? 땡볕에 뒹굴며 살을 익히거나 삼겹살을 굽는 내에 절며 신발 잘잘 끄는 족속들의 뼈아픈 사정은 외면하면서 숲이라니? 혹시 작가 허구에 의해 조작된게 아닌가 의문할수도 있다. 솔직히 그런면도 없지 않아있다. 그게 문제 아니다. 숲에 가리워진 락화류수가 시도때도 없이 신경을 긁어놓기에 필을 긁적거려서라도 나는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송장에 놀란 자 주검을 똑바로 쳐다보라, 어른들은 충고한다. 숲은 그래도 부드럽고 완만한 편이니 이렇게 쓸수 밖에 없는 내 성격과 조화를 이루고있다.
나는 경자씨를 이곳에서 만난것 다행이라 생각한다. 병원에서 맞띄웠다면 얼마나 놀랐을까? 복선녀, 복선화, 유진이와도 대화를 해야했다.
쉼터에 도착하니 밤이 이슥해갔다. 숲은 거무칙칙하고 고요하다. 산의 릉선에 맞물린 검푸른 하늘가에 엷은구름이 고기비늘같이 비껴 잠자는 빛의 여운을 강하고도 신비하게 시사한다. 그에 반기 든 숲은 호흡을 가다듬고 온갖 음모를 꾸며대듯 깊숙이 설레인다.
몇몇 창가에 초불빛이 불그스럼이 어려있다.
자가용 헤드라이트불빛이 꺼지자 고독감 비슷 외로움이 내몸을 감싸왔다. 복선녀가 손을 잡아주었다. 딱딱하고 조금 찼고 곧 따뜻해졌다. 신비에 덧싸인 본능적인 공포감이 슬거머니 풀려갔었다.
곧 정문이 열리였다. 초불빛을 등지고 일남일녀가 만화의 주인공처럼 다가왔다. 또 문이 여닫기더니 웬 녀인이 걸음을 재촉하여 오고있다. 저만큼 멈춰선 자들을 추월해 내 가슴에 안기다싶이 뛰여드는 녀자가 있다. 어깨에 닫을만큼 터퍼한 머리결이 무심결에 내손에 닫고 만지워졌다. 냄새가 풍겼다. 발가벗긴 라체의 냄새같은것, 꿈속에서 이상하게 몽롱해지고 어슴푸레해지고 짐짓 싫어하면서도 속에다 넣고 말랑말랑 구어온 냄새같은것, 나는 그녀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묻지 않았다.
제 보래, 언닌 본척도 않구 너 무슨 짓이지? 호, 기가 막혀서.
언닌 가만 있어, 괜스레 질투는?
얘, 이 년아, 뭐 질투? 호, 그래 내가 질투한다!
그제야 복선화는 꼬륵거리며 떨어져 나갔다.
한쪽에 비켜섰던 일남일녀는 그때라 곁을 비집고 나섰다. 유진이와 매부 강씨였다. 강씨를 보게 되리란 예감은 했으나 이런 마당에 이런 식의 상봉일줄은 전혀였다. 매부라 호칭해야할지 어쩔지 입이 안떨어졌다.
형님…
음, 매부…
나는 강씨를 엉겹결에 인애의 나그네로 만들어버렸다. 아직은 누이동생의 남편이요 그 자식의 아버지이다. 나의 모카, 유진이가 들으라 짐짓 게올린것이다.
형님, 미안해요. 오신줄 알고도 덩한해서 찾아뵙지 못하고…참, 죽을 죄를 졌네요, 용서하십시오.
강씨는 입에 침을 바르고 능청을 떨었다. 밤이 붉어진 낯을 숨겨준다. 그 입김은 나를 몰린 세월속에서 부드러워졌고 신토불이식으로 훈기가 돌았다. 손가락틈새라도 감미롭게 빠져나갈것 같은 말솜씨이다. 그는 내가 아는 저쪽의 이방인이 아니고 이쪽의 나그네요 세속의 달인이리라. 그가 웃는 모습은 어둠속에서도 보살같이 환히 빛났다. 나는 깔금하게 맨 줄무늬넥타이를 알아본다. 나는 보잘것 없이 위축되갔었다.
말씀만 하구 손님 모시지 않구 뭘하세요?…어서요.
유진이가 슬거머니 께껴들었다. 나와 친구하자던 그녀한테 나는 아이러니하게 손님이 되갔다. 악센트가 유별나게 비꺽거렸다. 이제 적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나는 안내 깍듯이 받으며 쉼터에 들어갔다.
홀에서 걸음 멈추고 언뜻 고개 들었다. 반면상유화가 그대로 있다. 초불 그을음에 그슬리운듯 그림은 중세적인것 마냥 진부해보였다. 무의 반면 허상을 거밋한 산맥으로 돌출시켜 놓아 눈길을 끌었다. 있는것은 없고 없는것은 있다는, 불미(佛味)가 엿보였다.
유진이가 나를 거쳐 강씨를 넌짓이 돌아보았다.
잠간만요, 뒤집으로 모시는게 낫지 않아요?
마음대로, 좋은대로…저야 상관없어요.
뒤집이란 약방이다. 나의 잠자리가 마련되있을것이다.
그런데 문을 떼고 들어서자 네귀 번듯 상다리 벌어진 술상이 맞아줄줄이야! 구운 통닭이며 낙지회 등 빛깔좋은 음식들에 성의가 보였다. 사전모의라도 있었는가?
나는 슬거머니 복선녀, 당신을 쏘아보았다.
강씨가 눈치채고 연유를 설명해왔다.
허, 미안해요, 이건 제 생각이거든요. 쉼터에서 술 못마신다는 규정을 알면서도 형님이 오신다니 가만히 준비해왔어요. 술이 있어야 얘기 나누기가 한결 편해질것 같아서, 어서 앉으세요. 원래 회집이나 갈비점으로 따뜻히 모셔야 하는데…
말로만, 쩟쩟…
유진이가 눈 흰자위를 드러내보이였다.
강씨의 입귀가 순간 헤벌쭉 벌어졌다. 손이 얼결에 뒤통수에 가붙는다. 그들은 잠시도 참지 못하고 연연해있다. 내가 누구란것도 잊은듯, 빌어먹을! 나는 욕설을 꾹 참았다.
복선녀의 손에 끌려앉았지만 술 마실 기분이 아니였다. 분위기는 음식처럼 찼었다. 곁에 다가앉던 복선화가 내팔을 슬쩍 다쳐놓았다. 나는 그녀들이 모두 강씨의 음모에 가담했음을 깨닳았다. 왜서? 강씨의 카리스마가 그리 대단한가?
유진이가 팔을 걷고 통닭을 뜯었다.
경자씨는?…
그말을 해놓고 가슴이 섬뜩해났다. 그녀가 말하던 탑장(塔葬)이 생각났던것이다. 선녀가 선화를, 선화가 다시 유진이를 돌아다 본다. 유진이는 하던 일 마무리하고서야 눈치 챈듯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항공기안에서 짓던 황홀한 미소가 떠올랐다.
며칠전에 갔어요…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가다니, 쉼터의 말이 아닌가?
아이, 부산에 갔단말입니다. 며칠전부터 내려가겠다는것 말렸는데 마침 거기로 가는 분이 차를 갖고와서 동행하게 됐데요, 떠나면서 련락주더라구요…
병은?…이젠 괜찮은지?
글쎄요, 혹 병원에 재활치료 받으러 갔는지도 모르죠.
말도 안하고? 나는 속이 어수선해났다.
좌석은 어색하게 굳어져갔다.
강씨가 기침을 깇고 술을 붓자 나는 인차 손사래질을 했다.
여긴 장소가 그렇군, 술은 그만 두기오…우리 나가 이야기나 할까?
나는 차겁게 뱉으면서 일어섰다. 완연 좌중을 무시했다.
나는 내처 걸었다. 전번에 걷던 숲길, 그때는 유진이와 경자씨와 탑장묘― 돌탑이 있었다. 탑의 주인은 경자씨의 친구라 한다. 희미한 달빛조차 흘러들지 않는 수림속은 어둠의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흙내, 숲내에 산짐승내와 지난해 락엽과 뭔가 썩는 냄새가 음침한 바람에 실려와 등골이 오싹해났다. 어쩜 탑장묘에서 발산하는 냄새이리라!
눈이 달아오른 나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았다.
강씨가 따라오다 돌부리에 걸려 꼬꾸라졌다.
곁을 다가온 그에게서 술내가 물씬 풍겼다. 술병을 갖고오다 쏟은 모양이다.
나는 어둠의 베일에 싸인 강씨를 쏘아보았다. 그가 어떤 눈으로 날 보는지 모른다. 고양이같은 눈이 반짝이며 민감하게 반응해왔었다.
나는 이름모를 탑곁에 서서 차거운 탑돌을 어루만졌다. 데리고나왔지만 뭘 어떻게 질책해야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힘꼴 쓴다면 무작정 귀썀부터 올리붙힐것을,
외려 강씨가 넉살좋게 말꼭지를 떼왔었다.
형님, 이숲엔 제 친구도 둘이 묻혀있거던요. 한놈은 부모들이 모스크바쪽으로 나가 장사하고있고있는데 녀자는 리혼하고 가버려 집에 아무도 없구요…사고를 당하고 나서 뒤처리는 방법없이 우리가 했죠. 친하게 지내던 놈이라 골회를 그냥 없애기도 그래서 탑장을 한겁니다. 제가 직접 쌓았어요…한놈은 태국에서 마약장사를 하다 경찰에 쫓기자 여기로 피해온 놈인데 간암을 앓더니 하루아침에 덜컥 죽더라구요. 집이 심양이란데 주소는 딱히 몰라요. 흐흐, 사람 사는게 그렇더라구요…참, 형님, 한모금 하시겠어요, 좀 남았는데?
아니, 난 괜찮소…그래 뭘 얘기하고 싶은데?
나는 무슨 변명 하고싶은가 묻고싶었다.
그냥요…술 많이 좋아해요. 그놈 술 하루도 안마시면 못살아요. 유진씨한테 매일 욕 먹어도 그때뿐이지 버릇 떨어져야죠…간이 문드러져 썩더라도 알콜이 들어가야 피가 따뜻히 도는것 같거던요, 흐흐, 나 이거 왜 자꾸 허튼소리 나오지?…흠, 인애는 잘있죠, 우리 머슴애두요?
글쎄, 자네가 이러고있는데 잘 있겠나?…생각나긴 나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내눈은 숲의 어둠에 차츰 익숙해갔다.
그는 술병을 던지고 곁에 쌓아놓은 돌탑에 지긋이 몸을 기댔다.
전 욕먹을 준비가 되여있어요. 형님한테 실컷 두드려맞고싶군요.
내가 왜? 그런다구 해결될 일인가?…인애가 대체 뭘 잘못했소?
휴, 잘못이야 없죠. 다 내 잘못이지…우린 너무 오래 떨어져 생활해왔거던요…마, 지가 여기 와서 고생한 얘긴 안하겠어요. 한해, 두해 지나니 얼굴조차 싹 잊혀지데, 만나도 실감나지 않을것 같구, 솔직히 이젠 남같아요. 그저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것, 붉은종이 한장에 서약한 약속때문에 애마저 생겨났구…그렇다구 이 바쁜 세월에 과거에 매여살 머저리는 없잖아요? 오늘일만으로도 내몸은 바쁘구 자꾸 썩어문드러지는데 곁에서 보살펴주고 쓰다듬어줄 사람이 없어봐요. 종일 일하구 들어와 혼자 밥해먹고 곤드라져있어보라구요, 세상만사 귀찮아지지요. 자다나면 녀자생각이 나 죽겠구…처음 몇해는 돈이 아까워 계집질도 못했어요…이런 말을 하면 부끄럽지만 이 마당에 뭘 숨기겠습니까? 흐흐, 이불우에 벌렁 누워 벌거벗고 펀한 전등빛아래 띵띵 살아난 그놈 잡아쥐고 마스터베이션(수음)을 하죠. 네밀, 그걸 끝내고 나면 치사하고 더러워서 어디 살겠어요? 번마다 후회가 갈마듭디다…흐흐, 나란 인간은 정말 적라라하구나, 생각됩디다. 남보다 더 왕창왕창 섹스하구 녀잘 탐하구 살며 하는짓은 다 해야 속을 풀고 일해나갈것 같습디다. 휴일이면 애들 손잡고 부인 데리고 공원놀이하는 대한민국 젊은부부들을 보면 그리 부러울수야? 이젠 그게 우리 족속들의 운명인줄 알게 되였습니다. 허니 더 발광이 나는거 있지요? 그때 유진씨를 만나게 된거죠…
그럼 집에 남은 사람은 편하게 지낸줄 아나? 도덕이나 책임감, 그런건 생각해보지 않았나? 왜 자기만 고생하고 있고 불행하다 생각하나?
나의 질문은 맥이 없고 희미해져갔다. 음산한 바람을 맞은듯, 자기 말에 외려 가볍게 몸이 떨려왔다. 차고 어두운 숲은 강씨의 존재를 도척같이 만들어갔다. 각별히 랭정하고 실리적인 말투에 나의 속은 얼어들었다. 탑장묘에 부착된 등마저 섬뜩해났었다.
그는 코웃음을 치듯 가벼운 코바람소리를 냈다.
글쎄요…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이렇게 되고말았네요.
이때 미약한 화장품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웬 녀인이 빠른걸음을 다가왔다. 나의 모카 유진이, 깍듯이 고개를 숙여오고있었다.
미안, 미안해요…현철씨를 너무 나무람 말아주세요…우린 정말 사랑하거든요…죄가 있다면 사랑죄 밖에 없어요, 물론 댁의 누이동생께 미안한 일이지만…
당신, 왜 왔소? 쩟.
강씨의 음성에는 노기가 은근히 어려있었다.
미안하단 말 한마디 하려구요…
말소리가 낮으나 참착하고 드팀이 없었다.
순간 나의 의식은 쨋쨋한 새납소리와 북방 특유의 양걸춤에 흔들려갔다. 고향 정거장 개찰구앞에 반백의 로인이 서성거린다. 홈에서 빠져나오던 안로인이 마주선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서로의 팔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로인들의 얼굴이 클로즈업이 되갔다…
나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할말이 없어졌다. 비련의 쥴리에트만 아닌 그녀가 의젓해보이였다. 오사까로 건너간 와이프의 얼굴이 부지중 눈앞에 겹쳐져왔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