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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당신과 나는 감성을 얘기한다. 나는 당신의 아래 허리에 팔을 두른다. 차는 가끔 요동을 한다. 허리의 살결이 드러나 손바닥만큼 만져졌다. 당신은 모르는척 한다. 나의 의식은 손가락끝에서 피어나는 감각을 읽어간다. 숲은 가도가도 끝이 없을듯 싶다. 헤드라이트불빛은 숲의 형태나 위치, 거리에 따라 주는 느낌이 각이하다. 어둠속에 웅크린 숲과 문득문득 비쳐오는 불빛속에 하많은 그림자 어려있다. 선화, 유진이, 선녀까지도 확인되고 각인이 된다. 과장되고 변형된 그녀들은 혹은 괴성을 지르거나 웃거나, 혹은 산발을 한채 두팔 치켜들고 흉상을 보이며 덮쳐드는것 같았다. 나는 차츰 흑백의 세계, 괴이한 환각속에 빠져들어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숲의 알르레기가 고조되고있었다.
당신이 내 팔을 슬쩍 걷어냈었다.
그손 좀 치울래? 간지러워, 좀 그렇기두 하구…싱숭생숭해난다, 킥!…참, 넌 숲에 어지간이 민감한것 같구나, 전에도 그랬던가?
응, 좀…기억나? 전에 니보고 그랬지? 난 울엄마 배속에서 생겨난게 아니라 숲에서 생겨난것 같다구. 그런데 숲에는, 아니 밤의 숲에는 이 세상 온갖 생명의 비밀과 음모와 비렬함이 다 숨겨져 있는것 같구나. 그런게 도깨비로 둔갑을 해서 귀신 방망이를 휘두르며 덮쳐들것 같기도 하구…난 아마 생리적으로 생명의 어둠을 직시못하는가봐.
그러게― 당신은 운전을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난 너와 좀 다르다. 어릴때 집에서 욕 먹으면 뒤뜰의 옥수수숲이나 오이넌쿨속에 숨어있군 했었지. 그속에 가만히 쪼크리고 앉아있으면 농밀한 어둠이 그토록 친근해질수 없더라. 그속에 벌레들이 기어다니고 울고 하는데 싱그런 흙내마저 페부 깊숙이 스며들고, 니가 말한것처럼 자신이 꼭 그런 숲과 어둠속에 생겨난것 같더라. 그래서 한밤중에도 혼자 강가나 들로 제법 잘 돌아다니군 했지. 어쩜 난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하나봐. 혹 별이나 딸이 뜨는 밤이면 기분이 그리 신비해나고 좋을수가 없다. 오늘밤도 그래, 뭔가 잔뜩 기대가 되고있구나!
기대? 무슨 기대?
너 엉뚱한 생각하지? 호호, 그런게 아니고, 숲에서 어떤 진실이 우릴 기다리고있는것 같아. 숲과 만나면 예감이 오는데 그런 예감은 확률이 매우 높거든, 니가 자동차를 타고 고향을 떠나던 날 저녁에도 난 니가 언젠가 나한테 돌아오리라는 예감을 했다. 봐라, 이래와서 내곁에 앉아있잖고 뭐냐?
글쎄, 그러고보면…
나는 그녀가 갑자기 수다스러워진것을 깨닳았다. 헤드라이불빛은 숲의 잎새들과 마찰되면서 소란스러워져 갔다. 깊은 숲 먼곳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잎새들을 흔들고 빛과 무마되면서 이름못할 향내를 산생해갔다. 홀연 나는 길가의 다람쥐가 놀라 숲속에 뛰여드는것을 보았다. 내 의식의 무엇같은, 환각인지 몰랐다.
나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어갔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호, 널 보내고 난 울기도 많이 울었지,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어, 몇날며칠 굶고지냈었지.
나는 팔로 그녀의 허리를 둘렀다. 아래뱃살이 조금 만져졌다. 아직도 미끈하고 탱탱해났다. 주술에 걸린듯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예견치 못한 비밀을 터놓아갔다.
우리 말이다. 소시적부터 쌓아온 정분 하루저녁에 끝내다니? 넌 내가 왜 그런 결단을 냈는지 모르지? 언제 한번 알아보려 하기나 했냐?
글쎄, 니 고집이 아니던가?
고집 부리는데도 연유가 있지. 난 운명을 개변해보려 했다. 우리 가족의 운명을…휴, 그때 울아버진 장사합네 하고 북경에 나가 큰빚에 눌리워 숨도 못쉬고있었다. 전자제품을 맡아 다단계식판매를 하더라. 어벌 크게 빚을 내 엄청나게 많은 제품을 샀더구나, 리자돈을 쓴거지. 제품은 안나가고 리자는 불어나고 빚 재촉은 성화같고…그런데도 아버진 그냥 꿈을 꾸고있더라. 제품만 잘 판매하면 금방 빚을 갚고 하루아침에 벼락부자 된다며…
다단계판매란 그렇잖구뭐니? 자기 밑에 새끼를 치고 그 새끼가 또 새끼를 쳐가고, 그래서 판매망을 늘리여 탑을 쌓으며 리득을 취하겠끔 망을 짜야하는데 그게 어디 쉬우냐? 완전히 귀신에 홀리운것 같더라. 내가 꿔간 오천원을 받아삼키고도 나더러 남아 같이 하자더라. 자기 밑에새끼가 되달라래요. 난 울며불며 아버질 잡아끌었지, 이제 그만두고 밥을 먹든 죽을 먹든 고향에 내려가자구…
그때는 금방 개혁개방이 되던 해였지. 한평생 로임에 매여살아오다 남이 왕창왕창 돈 버는것을 보니 눈에 불이 달렸던가봐…울아버진 끝내 울화병이 돋져 돌아가시고말았다…
나는 비슷한 소문을 들었으나 그리 참혹했을줄 몰랐다.
후에 둘째남동생 춘영이도 백혈병에 걸려 죽고 우리 집은 하루아침 빚더미에 깔리우고말았지. 빚꾼들은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 성화를 부리더라. 니가 간후에는 집까지 다 차압하고 우릴 네거리로 쫓아내려 하더구나! 그래서 난 죽기내기로 싸웠다. 법에까지 가서 고소를 했지. 아버지가 진 빚 문서도 모른채 자식들이 떠안을수 있냐구? 돈, 돈, 돈…아, 그놈의 돈때문에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진저리를 쳤는지 몰랐다. 결국 이 길을 택하고 말았지, 가정은 꼭 살려야 했으니까.
난 나보다 열세살이나 많은 이혼남의 안해가 되여 고국행 배를 탔었다. 인천항구로 입국했었지, 한밤중에 배머리에 나가 앉아있던 기억이 상기도 눈에 삼삼해나는구나. 눈섭같은 쪼각달이 뜨고 달빛이 희미한데 바람이 제법 세차더라. 배전에 부딛치는 간단없는 파도소리가 일망무제한 바다의 륜곽을 어슴푸레 알려오더구나…
난 갑판에 옷을 벗고 알몸으로 앉았다. 물론 내 의식이 벗고있었지. 바다 깊숙이에서 소용돌이 치다 표면에 나타난 바람이 내 몸을 어루만지는데 기분이 너무 묘해나더라. 난 어깨와 가슴결에서 나붓기는 머리카락을 만졌다. 바다의 어둠은 육지의 어둠보다 웅숭 깊고 호흡이 거셌지, 이름할수 없는 생명의 신비가 나를 다독이더구나. 나는 그제야 우리의 머리카락이 왜서 까만줄 알게 되였다. 인간은 결국 어둠에 속하게 되는거지, 어둠을 머리에 쓰고서도 빛만 찾아쓰자니 문제 생기게 되지. 어둠도 나름대로 자기의 섭리를 갖고있잖고뭐니? 해빛속에 엉망진창이 된 질서와 상처가 그속에서 새로이 자리 매김하고 아문다고 봐야지. 어둠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보는 자체가 나쁜거라구…후후, 보긴? 왜 그런 눈으로 보는데? 암튼 오늘밤 철학 잘되네. 날 웃지 않겠지?
허, 많이 컸네, 웃다니요?
나는 팔에 힘을 주어 당신의 허리를 꽉 죄여왔다. 승용차가 약간 비틀거렸다. 당신은 당황해서 눈을 흘겨왔다, 정신 나갔냐구? 내 가슴은 흔연히 풀어져갔었다.
쉼터에 아직은 한참 더 올라가야 했다.
승용차불빛에 스치우는 잎새와 새롭게 엉켜드는 어둠속에서 나는 분명 천도끼할매의 담배불을 보았다. 우리 고향집 고간에도 아버지의 담배불이 어둠의 천막에 구멍을 낸다. 어둠에 관한 이야기가 다 끝나지 않은줄 나는 알고있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