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쉐쳰, 탕쟈쉬얜, 리란칭, 리창춘, 원자바오, 후진타오...' 8월26일 오전,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테크노마트 28층에 위치한 한중친선협회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난 이세기 회장(74)은 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한중수교에 앞서 지난 25년간 청와대 장관시절부터 중국 정부 관련자 및 전 현직 지도자들과 친분을 쌓아오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갔다.
그러면서 한중수교 후인 1994년에 출범한 한중친선협회의 범상치 않은 페이지를 더듬었으며 신강, 서장을 제외한 중국 전역을 나들며 정부측 기념행사, 투자설명회, 여러 가지 세미나 등 행사에 수없이 참가했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이 2002년 제3대회장에 취임하여 한중미래논단 개최 등을 개설하여 두 나라 우호증진에 전력해왔고 그중에도 제주도에 세운 ‘서복공원’을 가장 두드러진 실적으로 꼽았다.
"제(齊)나라의 방사(方士)인 서복(徐福)이 ‘바다 건너에 신선이 사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 등 세 개의 산이 있다 하오니, 황제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동남동녀를 데리고 건너가 불로초를 구해오겠습니다’라는 글을 황제에게 올렸다. 시황제는 이를 허락하여 서복과 동남동녀 수천 명을 보내 선약을 구해오도록 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2200여 년 전 산둥성 해안을 출발한 서복 일행이 제주도를 거쳐 수많은 약초를 캔 다음 정방폭포 암벽에 '서복과지(徐福過之)'라는 글자를 새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서귀포(西歸浦)란 지명도 이 전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제주도 서복공원, 중국 관광객들 줄지어
'혐한론' 극복을 위한 세미나 공동 개최
안중근 유해발굴작업과 대련시 영예시민
중국 땅에는 상하이 임시정부 부지, 최치원 기념관, 안중근 의사 의거현장 등 한국인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비해, 한국에는 중국의 역사 유적이 거의 없는 점을 아쉬워하던 이 회장은 건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정부측과 기업인사들 사이를 오가며 기념관부지 매입 자금 수십억원을 마련했다. 이어서 전반 공사를 힘 있게 추진하여 2005년 5월 18일 서복기념관이 마침내 문을 열게 되었다.
2007년 4월 10일 신라호텔에서 한중수교 15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방한한 온자바오(溫家寶)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이회장은 한중친선협회가 한중우호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제주도에 서복공원(徐福公園) 건설을 추진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나서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온 총리의 친필휘호를 부탁하였다.
온 총리는 즉석에서 이를 수락한 다음 6月 20日 닝푸쿠이 주한중국대사를 통해서 ‘서복공원’이란 휘호를 보내왔다. 그 후 산둥성 성장에게 부탁을 해서 높이 3m, 무게 20톤 가량의 泰山石에 그 휘호를 조각해서 서복공원 마당에 세워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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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10일, 신라호텔에서 한중수교 15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방한한 원자바오(溫家寶) 중 |
지금까지 서복공원을 다녀간 중국관광객은 연 수십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이세기 회장은 베이징대학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에 당시 65세 고령이지만 흔쾌히 접수했다.
2001년 5월15일 이세기 회장은 연구교수의 자격으로서 베이징대학의 캠퍼스에 들어섰다.
베이징대학에서의 1년 동안 이세기 회장은 “덩샤오핑(鄧小平)이론”을 연구하며 적극적으로 중국고위층인사들과 만나 한국 최대야당인 한나라당의 중국에 대한 많은 정책을 제안했다.
이회장은 취임 후 중국 진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중국에 대한 지식과 현지법을 교육하고 중국에 관한 강의와 토론을 하는 ‘한중미래포럼’을 개설하여 이미 26차 개최했다. 당시 중국 정계 유명인사들인 요녕성위 서기 리커치앙(李克强), 상무부 부장 보시라이(薄熙來), 대외연락부 부부장 리우홍차이(劉洪才), 중국주한대사 닝푸쿠이(寧賦魁)등이 선후 논단에 연사로 참여했다.
한중친선협회와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는 금년 6월 베이징인민대학에서 공동으로 ‘21세기 화합으로 가는 동반자관계-한중 국민의 힘’을 주제로 제1회 한중우호논단을 개최하였다. 이번 세미나에서 이세기 회장,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 천호우쑤 중국인민대회우호협회 회장, 뤄호우차이 중한우호협회 회장 등을 망라하여 각계 인사 150여명이 참가하였다.
쌍방은 모두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양국 민간에게 상호신뢰를 증진시키고 협력방안과 자정노력을 통한 혐한론을 극복하며 양국 국민의 단합된 미래를 설계하자‘는데 공감대를 이루었다.
그동안 이세기 회장은 많은 한국기업들을 거느리고 하얼빈, 대련, 포두(包頭), 서안, 녕파, 청도, 성도 등의 도시에서 여러 가지 경제무역합작 프로그램을 성사시켰다.
금년 5월에 열린 쓰촨 이빈(宜賓)-한국투자무역상담회에서는 이세기회장이 이끈 한국기업대표단이 1000만불의 우량예(五粮液)판매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한중친선협회와 중국 베이징대학은 지난해 4월부터 고위급 간부들을 대상으로 이명박학(学) 특별강좌를 개설하였다. 특강은 2주일에 한번 씩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열리였으며 한국과 중국 양국의 저명 학자와 관계 전문가가 강연을 하였는데 이세기 회장이 첫 특강을 500여명 중국 고급 간부와 기업 경영인들이 청강하였다.
베이징대 특강에 이어 이세기 회장은 산동대학, 청도대학, 낙양대학 등의 요청에도 응해 강연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민족 절세의 영웅인 안중근의사 유해발굴 작업에도 커다란 관심을 보여 온 이세기 회장은 중국 정부측 지지를 얻어 대련시를 10여차 다니며 이 작업에 정력을 몰부었으나 결과를 보지 못하여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기간 대련시정부측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상호교류에 전력하여 2006년에는 대련시 영예시민자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취재를 마무리하며 이회장은 9월1일부터 길림성 장춘에서 개최되는 제5회 동북아투자무역박람회에 20여개 기업을 거느리고 참가하게 되니 준비작업이 한창이라며 70대중반의 고령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행보를 재촉하였다.
(흑룡강신문= 김명환 서울특파원 )j_mh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