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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삼국유사 경문왕 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경문왕이 등극한 뒤 얼마 지나서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 귀처럼 되었다. 왕은 이를 감추기 위해 두건을 만들어 항상 쓰고 지냈다. 잠을 잘 때도 두건만은 벗기지 못하게 하여 왕후와 궁인들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머리를 감기고 다듬는 복두장(幞頭匠)에게만은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복두장에게 단단히 일러두었고, 그는 평생 이 사실을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죽을 무렵에 서울 입구의 도림사(道林寺) 대나무 밭 아무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서 실컷 말했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당나귀 귀처럼 생겼다.”
그런데, 얼마 뒤에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이를 알게 된 왕은 대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대신 산수유나무를 심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임금님 귀는 길다’ 하는 소리가 났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Midas) 왕의 이야기가 있다.
미다스 왕은 신들의 피리 경연대회에서 심사를 맡았는데, 음악의 신인 판(Pan)을 우승자로 발표하였다. 그러자 아폴론(Apollon) 신이 화가 나서 “이 녀석의 귀는 작아서 음악도 제대로 들을 줄 모른다”며, 그의 귀를 잡아당겨 당나귀 귀로 만들었다.
미다스 왕도 별수 없어 모자를 쓰고 지냈다. 하지만 이발사에게만은 보일 수밖에 없었고, 왕은 남에게 말하면 죽이겠다고 하였다. 이발사는 이 신기한 사실을 참고 견딜 수가 없어서 강가에 나가 구덩이를 파고는 그 속에다 대고 실컷 말했다.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 구덩이에서는 갈대가 하나 자랐는데, 이 갈대가 바람 따라 흔들리면서 사방으로 퍼뜨렸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교훈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는, 큰 비밀은 절대로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욕망은 내용의 크고 작음과 성질에 따라 강약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표현욕은 강하면 강할수록 참고 견딜 수가 없다. 따라서, 작은 비밀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지킬 수가 있지만, 특별하거나 내용이 굉장한 경우에는 표현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게 되어, 언젠가는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 이야기의 복두장이나 이발사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말했지만, 결국 그 말은 소문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S. Freud)가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술이 가만있으면 손가락 끝으로 재잘댄다. 폭로는 모든 땀구멍에서 새어 나온다”라고 한 말은 참고할 만하다.
또 하나는 최고 지도자인 임금님은 듣는 귀가 커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나랏일을 처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나귀 귀는 클 뿐만 아니라 이리저리로 귓바퀴를 움직여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으므로 이를 상징화한 것이다. 다만, 미다스 왕의 당나귀 귀는 벌로 된 것이어서 경문왕의 경우보다 격이 떨어지지만, 잘 들으라는 의미는 같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단순히 재미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 속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도 매우 깊은 상징 의미가 들어 있다. 이 의미는 특히 지도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새겨볼 만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