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의 삶의 이야기

여름휴가에 아름답고 거친바다를 즐기시려면 속초해수욕장으로 향하시라! 땡볕 아래의 자갈도, 흙 같은 긴 모래사장도 없다. 밟기에 안성맞춤인 깨끗한 모래뿐이다. 밀물, 썰물도 없다. 경사진 "언덕"을 내려 시원한 푸르른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 바쁘게 천군만마가 표효하듯 거친 파도가 덮쳐든다.
용트림하듯 하이얀 거품, 모래알이 섞인 물보라를 거세차게 일으키며 순간에 나를 거치게 넘어 뜨린다. 짠 바닷물로 삼켜서는 해안에로 내동댕이 친다. 일어서려 버둥거리며 모지름 쓰는 나를 비웃으며 블랙홀이런 듯 강력하게 바다 속으로 빨아 들인다.
바다에서 들이 닥치는 제일 거센 파도와 해안에서 제일 거센 힘으로 물러가는 파도가 입을 맞추는 순간 "해일"로 탈바꿈 한다. 처절썩 해안에 부딛쳐 나를 포함한 변두리의 모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린다.
불현듯 바다물이 죄다 돈으로 보였다. 깊은 바닷물 위의 보트에 앉아 두둥실 떠 있는 부자들은 높은 파도일수록 스릴을 느끼며 즐길 수 밖에 없으리! 바닷물에 잠겨 있는 사람들은 높은 파도가 밀려올 때를 타서 몸을 한번 훌쩍 솟구치기만 하면 가볍게, 신나게 파도를 넘어간다. 혹 물 먹는 사람도 있지만.
바닷물에 발목만 잠긴 사람들은 해변에서 "맹수"로 돌변한 "쓰나미"에 어떻게 몸짓하고, 악에 악을 써도 처참하게 무너진다. "밀물"과 "썰물"에 여지없이 좌로우로 휘청거리면서 몸을 가누지 못한다.
문득 세계 어디서나 디아스포라의 삶을 사는 우리 재중동포들, 삶의 변두리에서 살고 있는 모든 무리들이 물갈기를 날리는 파도와 오버랩 되었다.
바다, 자연, 하나님은 순리에 따르는 자들을 死地에로 내몰지는 않는다. 세상만물과 마찬가지로 파도도 주기가 있었다.
점점 파도가 높아진다. 거친 파도에 내 몸을 맡겼다. 모래가로 떠밀렸다. 숨죽이고는 다음에 밀려오는 "키다리" 파도에 순응했다. 물이 빠지는 순간 엄지 발가락을 모래에 박고 휩쓸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다 했다. 용트림은 물러갔다. 모래범벅이 된 몸을 추스리면서 일어났다.
머리를 들고 보니 파라숄, 천막, 양산밑의 신사숙녀들이 보였다. 그이들이 부러웠지만 우아한 구경, 보트타기, 스리살짝 파도 타기는 내 타고난 운명에는 없다. 그러기에 관심 밖이다.
당당히 다시 거친 바다에 뛰어 들었다. 나한테 어울리는 용트림의 한 복판에 서고 싶어서 파도를 가로막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일부러 큰 격랑에 몸을 던진다. 맞선다.
무참하게 넘어지면 다시 기어 일어난다. 지칠 때까지 숨이 달 때까지 헉헉 부딛친다. 짠물이 귓구멍, 콧구멍으로 나 좋아라 밀려 들어온다. 기진맥진했지만 바닷물은 나를 놓아 주지 않는다.
쉴겸 찾은 곳은 가슴팍까지 차오르는 바다이다. 뒤돌아 보면서 제일 큰 파도가 到來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높은 파도에 몸을 솟구쳐 가볍게 넘기기 몇 번하니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멋적기만 하다.
식상함이 질색이어서 또다시 물과 모래로 들끓는 용트림 속으로 뛰어든다. 키넘이로 오는 거세찬 파도가 나를 쓰러 뜨리기를 사무치게 그린다. 그 용트림 속에서 철저히 무너지면서 나뒹굴 때 되려 형언할 수 없는 희열과 오르가즘을 만끽한다.
워킹푸어들이여 기죽지 마시라! 개미이든 봉황이든 태어난 이유와 역할이 있으니 불평도 불만도 마시라! 우리들의 변두리 인생을 높은 파도를 만드는 용트림 인생으로 간주하시라!
박사후, CEO, 씽크탱크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연구하는데 우리들의 단순노동과 노고를 밑받침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이 가능할가?! 세상의 356개 직업, 아니 2만여개가 될 직업 모두가 존중받아야 되리! 엘리트들의 십년 집살이에 새록새록 느낀다. 나의 식모살이가 그이들을 양육과 가사에서 해방시켰고, 사회에서 빛을 발할 수 있게 하였다. 누가 뭐라든 정녕 자부심을 느낀다.
지나간 삶이 그랫듯이 다가올 내 삶도 용트림 속에서만 진행될 것이다.
피할 수도 없지만 또한 달갑게 오늘처럼 격랑속에서 나의 낙을 즐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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