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유수(이동렬 장편소설 연재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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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이동렬 장편소설 연재 34)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9.08.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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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나는 한달을 고민했다. 달빛, 감미로운 술, 찜통더위와 십칠년만에 만난 옛련인, 그리고 침대우에 뒹구는 나의 라체― 나는 구경 누구인가? 라체는 무얼 의미할까?

당신의 낯에는 추호의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유진이서껀 거의 매일 파티를 열었다. 동창, 친구, 친지, 동사자, 고향마을사람들, 줄줄이 련락이 왔고 인연이 닿아왔다. 나는 내가 알았던 사람들을 다 만난 기분이 돼갔다. 절강, 복건 등 대륙 깊숙이 들어가 살던 동창생들과도 상봉을 했었다. 한평생 못만날줄 알았는데,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잖은가?

한녀석이 나와 당신과의 관계를 알고있기에 시물거렸다.

󰡒그래, 너희들은 어떻냐? 자식, 졸업전부터 똥줄나게 련애를 하더니 지금은 아들딸 낳고 알콩달콩 잘살겠구나? 깨가 쏟아지냐? 허허, 정말 보고싶었다!󰡓

고2 때 나와 한 책상에 앉았던, 체육반장하던 놈이다. 어떻게 친해져 우린 비밀없이 지냈었다. 체구가 유별나게 우람졌던 녀석이 지금은 바짝 말라있었다.

󰡒그래, 깨가 쏟아진다. 니놈은 알고 묻냐, 모르고 묻느냐?󰡓

󰡒뭐가? 허, 그럼 니네들은 결혼 안한거냐? 혹시 리혼한건 아니지?󰡓

당신은 녀석의 등에 손매를 올렸다. 귀밑을 붉혔다.

󰡒아하, 소문이 옳았구나. 그런데 쬐꾀만한것들이 왜 그리 밝혔지? 쩟, 쩟.󰡓

좌석에서 웃음소나기가 쏟아졌었다.

우리 짝패들은 쩍하면 거리를 휩쓸고 다녔다. 대한민국에 그러고 다니는 무리는 두부류 뿐, 하나는 데모참가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교포들! 그들의 공통점은 뭉쳐서 떠들기 좋아한다는것! 누군가의 발견이였다. 서울이 금시 내가 살았던 동네가 된 기분이다. 잘 짜여진 시스템으로 여기저기 박혀있어도 금방 모임을 가질수 있었다. 중국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이곳에서는 왜 가능한가? 아마도 반도인 까닭일것이다!

거리가 금방 좁아보이기 시작했다. 좀만 벗어나면 파도소리 들려오는 일망무제한 바다가 보일것 같았다. 그속을 떠다니는 자신은 가랑잎 하나였다. 의식의 나무잎은 나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어갔다. 인생이 바로 나무잎과 다를바 뭔가? 한국인이니 교포이니 굳이 쪽을 놓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미안, 쪽은 절로 나졌다. 흐르는 물에 훑어뿌리면 금시 사처로 흩어져가는 족속들을 어찌하랴?

나는 종로로 광화문으로 갔다. 가는곳 마다 나의 그림자가 질펀히 깔려있다. 등에 붙어오는 딱지를 진하게 느꼈다. 만져지지 않는, 딱딱하고 칙칙한 느낌을 주는, 나는 중얼거렸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다. 나는 나이고 나일뿐이다. 고로, 교포는 교포이고 교포일따름이다. 나의 이름자요 나의 그림자이다.

나는 어두운 등뒤에 칙칙히 돋아있는 이끼를 만질수 있었다.

K선생과 나는 서울시청부근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자기가 이상스러워 났다. 나는 왜 K선생과 만나고있을까? 다른 사람이 아닌 K선생일까? 인연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K선생을 뜯어보았다. 두개골을 덮은 카리스마적인 머리와 낯가죽에 돌출된 날카로운 코와 엉킨살이며 내장이며 뼈의 기운이 뭉쳐만든 예리한 눈과 단단한 이빨을 감춘 얄팍한 입들이며가 전생에 나와 무슨 구도로 인연을 맺었기에 우린 자리를 같이하고있는것일까? 나는 거듭 입술을 문다지였다.

K선생이 우울해서 말꼭지를 떼갔다.

― 중공과 수교이전 동포들에 대한 우리의 호감은 아주 컸었었소. 이 땅의 맥이 뻗어나가 이백만이란 군체를 이루고 살고있으니까, 말도 피도 생김새도 같은 민족이니까! 문제는 만나는 방식에서 생겨났지. 수십만 교포가 한시에 쓸어들어 약장사를 했었소. 시청부터 광화문거리, 아니 어디에 가도 약장사꾼들이 눈에 어지러이 밟혀왔었소. 가짜와 진짜가 뒤섞여 진짜도 가짜로 보였고 지어 사람마저 가짜로 보이기 시작했었지. 이 땅에서 뻗어나간 맥은 이미 이념이나 감성이 완연 달라진 군체들이라고 언론은 떠들어댔었소. 정부도 칼을 들수 밖에, 그런데 꼬리를 베려했지만 오히려 상처만 남긴 꼴이 되였지!…

K선생은 손가락에 뭍은 피를 보여주었다. 나는 피가 검붉은색을 띠였다고 판단한다. 그런 피를 가진 무리의 등에 따라붙은 그림자를 알아본다. 피는 바꿀수도 속일수도 없다, 오직 사랑해줄수 밖에!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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