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장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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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장난감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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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61>

   아이들에게는 가지고 놀 장난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장난감을 통하여 세상을 배우고, 이치도 깨달으며, 물건을 아끼고, 정을 주는 삶도 익힌다. 따라서, 장난감은 아이들에게는 매우 필요하며 또한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장난감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움직이는 장난감에서 살아있는 장난감으로 바뀐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나온 사이버 애완물 ‘다마고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다마고치의 열풍도 얼마 가지 못했다. 시간을 맞춰 버튼을 눌러서 먹이고, 씻기고, 변도 치워야 하며, 아프면 주사도 놓고, 심심하면 놀아주기도 해야 했다. 어쩌다 잊으면 신호음을 내고, 때를 못 맞추면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더구나, 다마고치의 발신음은 수업을 방해하고, 때를 맞춰 수시로 확인하고 신경을 써야 해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의 휴대금지령과 함께 조작이 간편하고 뒤치다꺼리도 필요 없다는 편리성이 도리어 다마고치를 싫증나게 하였다.

   2000년에 들어와서 우리나라에서는 곤충 대신 애완동물 기르기가 유행했다. 치와와나 친칠라 같은 개나 고양이를 기르더니, 조그마한 토끼나 쥐 같은 것에서 원숭이와 돼지도 기르고, 거북이에 도롱뇽, 악어, 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이들을 자기집에서만 길렀다. 아파트 같은 곳에서도 몰래 기르며 자기들만이 즐겼다. 그러다가 한둘이 끈을 매어 잡거나 안고서 거리에 나오게 되었고,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구경하는 것을 보고 기르는 사람이 늘었다. 애완동물 사육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무서워하는 거미나 징그럽다는 뱀까지 손에 들고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도 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정성도 지극해졌다. 고급 음식에 값비싼 옷을 입히고, 갖가지로 모양을 내고 꾸미더니, 화장까지 하고 향수마저 뿌려 안고 다닌다. 남들은 의식도 하지 않고 개나 고양이, 애완 돼지에게 뽀뽀도 하고, 가느다란 뱀을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하였다. 어떤 젊은 여성은 생쥐 햄스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젖무덤 사이로 집어넣기도 한다. 바라보는 이가 놀라워하고, 그들은 그러는 사람들을 보며 즐기는 것 같다.

   세상은 변한다. 사람의 삶도 바뀐다. 그러므로, 장난감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달라지고, 애완물이 바뀌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만 사는 것이 아니잖은가?

   장난감은 세상을 제대로 보고 새롭게 인식해 나가는 하나의 작은 학습 도구이다. 그러므로, 한참 가지고 논 장난감은 거들떠보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에 욕심을 내게 된다. 장난감은 탐구의 소재일 뿐, 애착이 가시면 버리게 된다.

   다마고치가 유행할 때 그것이 너무 편리성만 추구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다. 곤충 기르기도 처음에는 무척 애착을 보이지만, 싫증이 나면 내버린다. 호기심이 지나쳐 다리를 떼어내고 목을 비틀며, 바라는 대로 하지 못한다고 죽여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울까는 전연 생각지 않고, 죽어도 아무런 잘못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이들이 곤충 기르기를 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장난감처럼 대한다는 점이다.

   애완동물 기르기는 변을 치우고 목욕도 시키고 옷을 입혀 재롱을 즐긴다는 점에서 곤충이나 다마고치보다는 훨씬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자기 마음대로 씻기고 꾸미며, 어떤 재주를 부리게 하려고 많은 고통을 준다. 이런 일들은 애완동물의 생태와 의지와는 전연 상관이 없이 강제로 이루어진다. 순전히 기르는 사람의 뜻대로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넌 굶길 수도, 맞을 수도, 때로는 죽을 수도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인식이 심어진다는 점에서 애완동물 기르기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말에 식구(食口)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로는 ‘한 집안에서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식구는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함께 먹고 살 뿐만 아니라, 일을 하거나 도움을 서로 주는 관계가 오래 지속되어 정까지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두 달 머물고 있어도 손님은 손님이고, 오래 와 있어도 친척은 친척일 뿐이며, 그들을 식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가축도 식구라고 생각해 왔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일하며, 수고하면서 서로 감사하고, 아프면 같이 괴로워하고, 기쁠 때에는 함께 즐거워하며 지낸다. 그래서, 서로 정이 들고 한 식구로 여길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장난감, 그것은 자라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곤충이나 애완동물은 장난감이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그것을 사람들이 즐기자고 애완용으로 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가 그들에게 심한 고통을 주며, 그들의 섭생을 바꿔 전혀 다른 삶을 하게 하는 폭행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곤충이나 애완동물을 마음대로 굶기고 놀리고 시키고 죽일 수가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그들을 가축처럼 식구로 대하지는 못할망정, 살아있는 장안감으로 다루어서는 안 될 일이다. 더 이상 버려지는 개나 고양이, 내버린 애완동물들의 주검들을 보게 되는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申 吉 雨 :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남한강문학회 회장   skc663@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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