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조선왕조의 임금등이 생활했던 궁궐이다. 북쪽으로 북악산이 둘러싸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지금의 세종로인 넓은 육조거리(가 펼쳐져 탁월한 입지를 자랑한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하였고, 1592년 임진왜란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인 1868년에 다시 건립했다.
왕비를 위한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들고 거주한 건청궁 등 궁궐안에 여러 채의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여 있는 구조다. 또한 왕과 관리들의 정차와 국가 행정 업무를 보던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아름다운 후원 등이 조성되었있다.

광화문 - 흥례문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강녕전 - 교태전을 잇는 중심 부분은 궁궐의 핵심 공간이며,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 되어있다. 그러나 중심부를 제외한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되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었다.
근정전 국보제223호
경복궁의 중심 건물이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거나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으로 태조 3년인 1394년에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고종 4년인 1867년에 재건하였다.

근정전 서북쪽의 연못에 조성된 누각으로 외국 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의 연회 장소로 사용 되었다. 경복궁창건 당시에는 작은 누각이었으나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어 경회루 건물이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도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계속해서 이 연못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광화문
경복궁의 정문으로 왕실과 국가의 권위를 상징하는 문이다. 1926년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한국 전쟁(1950-1953) 때는 문루(궁문, 성문 등의 바깔문 위에 지은 다락집)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1969년에 복원했으며, 철저한 그증에 의해 광화문의 원래 모습과 자리를 되찾기 위해 또다시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