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나는 당신곁에 앉아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당신인가요 나를 떠나보낸 당신인가요? 나의 당신과 나를 떠나보낸 당신 사이에서도 나는 당신의 매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돌아버서며 뱉는 타액의 끈적함이나 욕설에서 튕기는 주매(呪罵)의 메스꺼움이나 혹은 슴슴함이나 가식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겠으나 나는 나속의 당신을 보았고 당신은 당신속의 나를 보았겠지요. 힘든 세상을 가다 돌아보면 당신은 늘 곁에 있었습니다. 웃으며 손짓하며 입김을 뿜었습니다. 샴푸내 풍기는 당신의 머리결은 의연히 포근한 비단결같이 내 마음에 닫아오고있습니다. 선할 눈과 고운 입과 하얀 피부에는 우리가 함께 살았던 평원의 바람결이 슴베여있습니다.
당신은 어젯날의 당신인가요 오늘의 당신인가요? 아니면 그 사이의 당신인가요? 당신을 찾아 나는 늘 한줄기 바람이 됩니다. 눅눅한 비 머금고 찾아와 당신앞에 현신합니다. 또 잊지 못할 바람으로 떠나겠습니다…
달이 뜨고있다. 놋쟁반귀가 조금 영글지 못한 상현달이다. 희고 거밋한 그림자 력연했다. 그것들이 무시로 뒤척이고있다. 나는 홀연 바람기를 느끼였다. 포도나무잎들을 살짝 들었다놓듯 나와 당신 사이에 야릇한 무늬를 일렁이어 놓는다. 당신은 포도주 잔을 잡고 살짝 웃는다. 만남을 위해, 당신이 나직히 속삭인다. 우리들의 재회를 위해, 나도 한마디 따라했다. 당신의 혈액같이 따뜻하고 감미로운 즙액이 목구멍을 타고 나의 내장 깊숙이 흘러들었다. 즙액이 머무는 곳마다 나는 당신의 심장과 페와 위와 담과 허파와 대장이며 소장과 있어도 없어도 될 맹장을 떠올렸다. 나는 자신이 당신의 장 끝에 달려있는 맹장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정중히 물었다.
<<그 사람은? 미안, 당신 남편, 언제 돌아오지?>>
<<당신이 왔다는 얘기했거든, 저녁을 집에서 대접하고싶으니 빠져줄수 없냐구.>>
<<그 사람이 보고싶다. 흠, 다른 나를 볼것 같네.>>
<<왜 이래, 또? 기분 흐리지 말기, 제발―.>>
<<알았어, 건데 정말 알고싶은게 있는데 어쩌지? 내가 이사간후 왜 갑자기 맘이 변했어? 이제 제대로 말해줄때가 됐잖어?>>
나는 그저 알고싶을 따름이라 덧붙혔다. 그래, 알고싶다. 밤꾀꼬리 우는 강가에 서서 허옇게 흐르는 은하수를 보며 넓은 들에 벼이며 옥수수이며 콩잎들이 물안개에 젖어 깊은 숨 몰아쉬는 소리 들으면서 나는 당신의 손을 놓칠새라 꼭 잡고있고 당신은 아프다 자주 낯 찡거리던 추억과 추억들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그해가을, 나는 또 찾아갔으나 당신은 눈꼽만큼도 흔들림이 없었다.
<<말했잖어, 연변에 가서 살수 없다구? 니네엄마 모실 담도 없구.>>
<<연변, 왜?>>
<<우리 이곳 사람들이 살데가 안야, 난 그런데 가 못살어.>>
<<그건 옛부터 생긴 이곳 사람들의 편견이야, 가보면 너무 좋은데뭐.>>
<<난 맘없는데 가서 살고싶지 않아요.>>
<<그럼 내가 돌아올까?.>>
<<또 니네엄마 모시구? 말도 안되는 소리!>>
나는 당신을 끌어안았다. 내 품안 동그랗게 안긴 당신은 문득 흐느꼈다. 어깨를 떨고 고개를 흔들며 슬피 울었다. 나는 당신한테 답 받아낼 아무런 방도도 생각나지 않았다.
당신은 마침내 메모 한장 달랑 남기고 내 눈앞에서 사라졌었다.
― 날 찾을수 없을거다. 니가 찾지 못하도록 난 북경에 나가 꽁꽁 숨을거다. 난 니네엄마 만나지 않는다. 연변 안간다. 백번이구 천번이구 그말이다. 우리의 연분은 이제 끝이 났음을 알아야한다. 난 널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너의 성격이 맘에 안든다. 그러나 꼭 널 기억하마. 너도 내 성질 알잖니? 난 이미 학교에 사표를 냈다. 래일아침 바로 떠날것이다…
X월 X일, 복선녀가.
나는 그말 믿어야 했다. 믿지 않을수 없다. 메모지 한장이 결국 우리들의 운명을 바꿔놓는 갈무리일줄 나는 몰랐다.
이제 우리들의 락화류수는 흘러갈만큼 흘러갔다. 이제 당신은 말할때가 됐고 나도 알때가 된것이다.
당신은 의연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에 말한데로이다. 무슨 의문이 그리 많―냐?>>
<<혹시, 너…서울엡?>>
<<음, 그래, 그리 생각하면 맘 편하겠구나. 나두 이곳에 와 살고싶었으니까.>>
<<…?>>
당신은 곧 나의 이마를 튕겨주었다. 입 벌리고 소리없이 웃었다.
나는 낯 찌프리고 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가슴은 그리 차겁고 랭철할까? 사랑도 맹세도 그리 무의하고? 헌데도 당신이 쏟아주는 포도주는 의연히 감미로웠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