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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다녀온 유진이는 시장에 들려 아구 두마리를 사왔다. 깨끗이 손질해놓고 소식만 오기를 기다렸다. 맵고 알싸한 청량고추서껀 여러가지 양념까지 신경 써 준비했다. 싱싱한 미나리와 알맞춤하니 자란 콩나물도 빼놓지 않았다. 그것들을 슬쩍 데쳐 다 되가는 아구찜에 넣고 버무리면 아삭아삭한 맛을 내며 죽여준다. 미나리의 상큼한 맛과 아구의 달큰하고 담백만 맛이 잘 어우러져 아구찜의 묘미를 극대화한다.
<<빨리 오세요, 제 특기가 아구찜요리거든요. 오늘 우리 소주로 죽여주자구요.>>
<<아, 정말 말만들어도 입에 군침이 도네요.>>
<<그러니까요. 지금 어데에요, 거기가?>>
<<나두 잘 모르겠어요, 어디가 어딘지?…>>
나는 사양할수 없었다. 마지막 카드를 내들수 밖에, 저녁에 데이트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먼저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피부로 눈앞의 세계를 느끼고싶었다.
<<호, 공교롭게두…그럼 할수 없지요뭐. 약속은 생명이니 잘 지켜야지요.>>
너무 아쉬워하며 갈무리된 여운이 귀전에 오래 지워지지 않았다. 좋은 친구같았다.
아무튼 갖고온 경비는 푼푼했다. 카드에는 한페(韓幣) 삼백만이 들어있다. 두달은 별 아쉬움이 없이 지낼수 있으리라. 와이프의 계산이 꼼꼼히 담긴 금액이였다.
나는 먼저 핸드폰부터 구입했다. 려권이 있기에 가능했다. 잠시는 누구한테도 번호를 알려주고싶지 않았다. 마치 서울에 호구라도 올린듯 속이 든든해났다.
이튿날아침은 전철역부근에 있는 떡볶기집에서 끼니를 에웠다. 나는 정중한 음식보다 서민적이고 전통적인 스낵을 선호한다. 간혹 시장에 가면 아주머니들속에 끼여 끼웃거리며 채소값도 묻고 순대나 기름떡같은것도 사먹으면서 흔들거렸다. 싱글시에 굳어진 습관이다. 와이프는 그러는 나를 질색했다. 나그네들이 궁상 떠는 꼴은 세상에서 제일 보기 싫단다. 그게 아닌도, 그속에 깃든 문화를 자기가 어찌 알것인가?
나는 혜화역 대학로에 있는 P커피숍을 찾았다. 대학가(街)이다 보니 젊은이들이 많고 분위기가 밝고 명랑했다. 서울대 옛터전이요 젊음의 거리인 이곳에는 문예진흥원, 미술관 등이 자리잡고있고 굿거리공연같은 행사가 활발히 펼쳐지고있었다. 코를 길게 늘구고 빨갛게 분장한 삐에로 젊은이가 곁을 스쳐가며 굿바이를 웨쳤다. 나도 손을 들어 답례했다.
커피숍에서 오십대초반의 사내가 내 손을 잡았다. 허리가 약간 굽고 머리가 더부룩한 반백의 신사, 깡기있는 손과 정기도는 두눈은 한 분야의 프로임을 인지시켜준다. 나를 초청해준 소설가 K선생, 프로는 린색하고 까다로웠었다. 자기 글에 한해서는 가차없이 따고 버리고 고르고 바로 선택했다. 문장 한줄 한글자가 탱탱하니 영근 알곡냄새를 풍겼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다. 문학친구의 부탁을 받아 룡정유적지 가이드를 했다. 윤동주생가를 관람하고 비암산 일송정에 올랐었다. 독이 무섭게 오르고있는 푸른 숲 저 너머에 그림같이 아름답고 자그마한 도시가 보얀 해빛속에 자리잡고있다. 해란강젖줄기는 마르고 빈약했지만 도시에 생기를 주기에는 충분했다. 고국에서 온 손님들은 정자에 올라 누구나 선구자의 노래를 부르기 즐겨했다. 가사는 충분히 장중했고 감동할만 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을 두고 흐른다…
나는 가사에서 풍기는 짙은 민족색채를 즐겨 감수한다. 나의 민족, 나의 조상들의 삶과 지조와 력사가 고스란히 슴베여있잖는가? 내가 이 고장을 찾은것도 그런 연고인지 몰랐다. 그렇다고 나는 민족주의자는 아니다. 원초의 뿌리를 찾고싶을 뿐이였다.
일송정 정자우에 시뿌둥해 서있는 나를 보고 K선생은 말을 걸어왔다.
<<혹시 내려다 보이는 도시가 서글프나요? 간도의 서울이라니, 손바닥만한데? 참, 선생님은 헤이룽쟝(黑龍江) 대평원에서 살다 이곳을 왔다지요? 뭔가 줄기를 찾아 왔을텐데 와보니 그냥 변두리였다, 변두리라? 허허, 선생님의 글에는 사색의 여운이 있어 좋습니다.>>
<<뭐, 별것 아닙니다. 살아가는 느낌을 썼을뿐이지요.>>
<<그래요, 글에선 그게 중요하지요. 참, 전번에 수필 한편 봤는데 혹시 이 노래는 아시지는지? 잘 부르지 못하지만 글 쓰는데 도움이 될것 같아 불러 드릴께요.>>
K선생의 중음은 비단처럼 부드러웠고 내물처럼 감미로웠다. 돈후하고 포근했다. 내가 너무 익숙히 아는 곡이였다. 이 강산 흘러가는 흰구름 속에 종달새 울어울어 춘삼월이냐 홍도화 물에 어린 봄나루에서 행복의 물새 우는 포구로 가자…
포구라? 바다물이 출렁이는 나루터, 미지로 뻗어가는 출발젬,
<<아, 그럼 락화류수, 에도 2절이 있었군요, 왜 몰랐을까?>>
그래서 인연을 맺은 K선생은 귀국후 보름만에 초청장을 보내왔었다.
K선생이 커피잔을 잡고 입가에 엷은 웃음을 베물었다.
<<음, 이번에 변두리를 치고 중심에 나오니 감수가 어때요?>>
<<글쎄요…>>
나는 아직은 모르겠다고 했다. 느낀다는것은 깨닳음이 와야하고 깨닫자면 뭔가 알아야할것이다. 알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이면 십상팔구 헛소리가 나가고 손가락질을 당하기 십상이다.
키위 한잔 끝낼 짧은 시간이 지나자 K선생이 물었다.
<<여긴 답답하네, 우리 나갈까요? 제가 좋은곳으로 모실게요.>>
<<네? 네…>>
<<참, 낚시 즐기는가요? 변두리로 가본다? 허허.>>
내 손을 잡고 일어서며 K선생은 껄껄 웃으셨다.
두시간쯤 지나지 우리는 자가용덕분에 거짓말처럼 이름모를 계곡에 가있었다.
잘 다슨 조약돌들을 알른거리면서 내물이 흐른다. 수정같이 맑고 비단같이 부드러운 내물이 종아리에 감겨들었다. 낮다라막한 산과 산은 푸를 청색으로 마주 섰고 그 사이로 좁은 벌과 내가 자리잡았다. 아기자기하고 수더분해서 기 딱 막힌 곳이다.
<<야, 서울에도 이런곳이 있어요?>>
<<아니, 여긴 경기도 관악구에 속해요. 그러니 변두리가 확실하지요?>>
나는 K선생의 말뜻을 깨닫지 못했다. 따라 웃기만 했다. 자기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다행히 그는 심각하지 않았다. .
그는 차의 뒤꽁무니에 준비해온 낚시도구를 꺼냈다.
<<플라이 낚시를 합니다.>>
플라이 낚시라니? 나는 묵묵히 지겨보기로 했다.
기실 나는 낚시에 대해 별 흥취가 없다. 래일 K선생의 사회로 갖게 될 문학행사에 대한 생각이 간간히 떠올랐다. 시상식, 간담회, 회찬 등 순(順)이 짜져 있다. 소설계와 언론계의 많은 지명인사가 참가한다. 교류, 교제가 행사의 목적이다. 그리고 나더러 조선족문학의 현황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부탁해왔다.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려왔다.
<<뭘해요? 가랭이 걷어부치고 얼른 냇물에 들어와요. 기막힙니다. 얼마나 시원하다구요, 커피숍에 비기겠어요? 하하하.>>
나는 K선생의 의중이 궁금해서 점치다보니 행동이 꿈떠졌다. 초행에 낚시질이라니?…
내물은 샘물같이 차고 시원했다. 삽시에 더위가 저만큼 물러가버렸다.
<<좋지요? 피서지가 따로 있나요?…이게 바로 변두리문화의 좋은점이죠.>>
또 변두리를 곱씹었다. 그닥 기분좋게 들리지 않았다. 설교를 위한 데이트라면 사절하고 싶다. 서울사람들은 제 잘난척 이래서 싫다니까. 만나면 설교부터 하러 들지!
그러든말든 K선생은 낚시대를 뽑아들고 낚시줄을 뿌렸다. 물에 들어서서 흐름을 마주해 줄을 뿌리니 낚시줄은 이내 물살에 떠내려왔다. 인조미끼를 사용하기에 미끼를 끼는 법이 없다. 낚시방법도 고기를 찾아가며 하기에 물속을 걸어다닌다. 주로 송어, 산천어, 열목어, 누치, 강준치, 끄리, 버들치, 농어, 숭어, 황어, 피라미 등을 낚는다. 허나 루어낚시는 민물에서 하기에 주로 쏘가리, 배스, 산천어, 누치, 어름치, 피라미, 메기, 잉어 등을 낚고 바다 낚시는 주로 우럭, 광어, 도다리(가자미), 농어, 고등어 등을 낚는다. 낚시 요령의 관건은 인간과 자연과 물고기와의 교감을 이루는것이다.
<<물고기하고도 교감이 이뤄져―요?>>
나는 고개를 빙빙 돌렸다.
<<느낌이란 그렇게 오는거죠. 플라이낚시만 봐요. 피부로 물과 물살의 흐름을 느낄수 있죠. 고기가 때론 물에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낚시꾼이 물속을 걸어다니기에 고기가 어디쯤에서 어떻게 물살을 타고있겠는가 느낄수 있죠. 물론 낚시를 물거나 건드리거나 주위에서 꼬리치는 느낌이 낚시줄을 타고 전해오기도 하죠. 내가 물속에서 고기와 게임을 하고 있다고만 생각해봐요. 충분히 교감이 이뤄질수 있는거죠.>>
<<아, 네…>>
나는 저도 몰래 감탄했다. 낚시에도 이토록 깊은 학문이 있을줄을 몰랐다.
K선생은 잠시간에 산천어, 버들치, 끄리 십여마리를 낚았다. 산천어는 이곳 보호어종이기에 낚자마자 놓아준다. 낚시를 벗어나 꼬리치며 사라지는 고기들이 보기 좋았다.
우리는 모래톱에 앉아 준비해온 소주를 마셨다. 낚은 물고기로 회를 쳐 안주했다.
<<기실말입니다. 조금 괜히 걱정이 되서요…>>
<<네, 뭐가요?>>
K선생의 진지한 모습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글에서 봤거던요, 선생님의 글에서―…너무 소외된 느낌, 피해의식…마, 이런것들은 기실 조선족들의 보편적인 잠재의식이거든요. 력사적인 고질이기도 하고요. 전 선생님이 그런데서 탈피했으면 해요. 자기가 항시 변두리에 있다 생각하는 자체가 문제죠. 보다시피 변두리는 어데에나 있어요. 여기도 시내와 떨어져있으니 변두리가 아닌가? 그런데 변두리는 나름대로 자기 문화특징이 있죠. 보면 세상의 초심(初心)은 늘 변두리에 있더라구요.>>
<<아, 네, 그렇기도 하네요.>>
<<보다시피 한국은 자본주의에요. 조상이란 나라, 고국, 그런 아름다운 옷견지들을 벗기고 보면 미련과 다정다감은 인차 사라지고 눈에 흔히 띄우는것은 랭혹하고 딱딱한 뼈다귀뿐이거든요. 그 뼈다귀의 이름이 자본주의지요. 자본이 경재상 중심세력이 되여 무한히 리윤을 추구하는 사회제도, 돈이 이 사회를좌우지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돈에 의해 판도가 형성되고 인친척마저 소외시되고있으니 랭정하고 랭혹하고 잔혹하다고 봐야지요. 그러니 우리 교포들이 적응이 바쁠수 밖에. 그렇다고 한일자 검은색으로 봐도 문제죠. 아무리 돈이 판을 치는 사회라도 민주와 법치가 있거든요…>>
<<네, 그래서 여길 초대했군요.>>
<<허허, 그러니 변두리문화의 초심을 갖는것이 중요해요. 이런 사회도 맑은 눈으로 봐요. 사람이 사는 사회이니까. 그리고, 이것 하나는 잊지 마세요. 이 세상의 생명은 다 존귀하고 사람은 평등하다는것을, 사람우에 사람이 없고 사람밑에 사람이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일뿐이지요. 누가 하늘의 구름 보고 호령한다고 해서 움직이고 바람더러 멈추라해서 멈출까요?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똑같은 생존의 권리를 갖고 태어났거던요.>>
<<물론 그렇지만, 과거와 력사가 우릴 그렇게 만들었요>>
<<그런 핑게를 대지 말아요. 나 자신의 초심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나의 심태를 면밀히 짚어주는 K선생이 고마웠다. 아무나 들수 없는 수술칼을 잘 포장한 이벤트에다 부드럽게 사용하니까. 나의 초심이 중요하다? 불교적 냄새마저 풍긴다. K선생은 지기(知己) 못지 않았었다.
이튿날 문학행사는 조촐하게 치르러졌다. 언론매체에서 한달전에 벌써 행사소식을 다뤘기에 보도계와 언론계가 빠졌다. 또 그들의 눈치를 보는 많은 인사들이 약속은 해놓고 출석하지 않은 탓,. 며칠전부터 기자들이 오는가고 문의전화가 비발치더니 노, 하니 손님 대량 불참으로 이어졌었다.
K선생이 옆에 앉아 빙그레 웃었다.
<<봤지요?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의 단면(斷面)이거든, 기자들이 온다면 부르지 않아도 어떻게들 알고 찾아와서 사진을 찍거나 TV화면을 찍을때 제일 앞에 나서려 헤덤비죠. 자기 리해관계에 따라 행동반경을 결정하는 극단적인 리기주의 표현이랄까? 소위 글쓴다는 량반들마저 저러니 이 사회가 부패해지지 않을수 있겠나? 허나 괜찮아요. 그들은 그들이고 우리는 우리지요. 우리가 있기에 행사가 이루어졌다 생각하면 마음 개운해날겁니다.>>
<<네, 너그러이 생각하는게 좋지요.>>
나는 그런 현상은 어디가도 피치 못한다고 위안해주었다.
<<그래도 작년에 연길에 다녀와보니 그곳 조선족사회는 아직까지 순수해보입디다. 그 순수를 잘 보존해야할텐데…우리 문학이 그런 순수를 지켜낼수 있을까? 아무튼 지켜내기에 힘써야지, 그래야 문학은 생존가치가 있는거던요.>>
저녁에 나는 K선생의 자가용에 앉아 광화문으로 해서 남산타워, 여의도 국회의사 등을 말타고 꽃구경하듯 대충 돌아보았다.
<<허허, 제가 시간 좀 더 내드려야 하는데, 암튼 서울 계시는 기간 종종 련락 주십시오. 그러고 보면 이제 이 차도 반환할때가 됐군그래요.>>
내가 말귀를 못알아 듣자 K선생이 소탈하게 웃었다.
<<제 동생 찹니다. 낚시도구도 그렇구, 집도 절도 없이 글만 쓰는 놈이 차 빼서 뭘해요? 그래도 전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자인가 착각하고 삽니다. 착각 좋지요? 하하하.>>
K선생이 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어쩌면 서울의 량심과 만나고있는지 몰랐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