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벨소리가 울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우편 배달원이었다. 등기우편물 수령을 위해 도장을 달라며 몇 통의 편지와 그리고 서적 한 권을 내민다. 사인을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마친 후 문을 닫고 들어왔다. 내게 온 편지와 회사에 온 편지를 분류했다. 그런데 회사로 보내온 편지에 몹시 꺼림칙한 엽서가 두 장 끼어 있었다. 발신지가 경찰서였다. 경찰서란 사회 질서를 위해 범법자와 아니면 그에 준하는 행정 업무를 관장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 곳에서 보내온 엽서라면 그 내용은 보나마나 언짢은 내용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는 생산자로부터 물품을 구입해 전국에 산재해 있는 거래처에 납품하는 판매회사로 항시 10여대의 화물차를 운행하고 있다. 때문에 차량에 관련된 통보려니 생각하며 두 통의 엽서를 뜯어보고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같은 날짜의 같은 차량 속도위반 범칙금 고지서였다. 장소와 시간이 다른 것으로 보아 행정적 착오는 아닐 테고 그 화물차를 운전한 운전기사의 무책임한 과실이 확실해 보였다. 이 전에도 한 달 사이에 여러 번의 속도위반 범칙금 고지서를 받아 보았으나 그 때마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무심히 넘겨 버렸다. 하지만 이번만은 꼭 짚고 넘어가려 지방에 있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위반 차량의 운전자를 확인하게 되었다. 전화로 고지서 내용을 다 말하기도 전에 그 곳 사무실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한 달 사이에 속도위반이 여섯 차례, 돈으로만 계산해도 삼십여 만원이 넘는 액수다. 금액을 떠나 지정 속도에 몇 십 킬로미터가 넘는 난폭운전을 식은 죽 먹듯 한다는 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닌가. 오히려 그 같은 난폭운전에도 사고가 없었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나는 늘 직원회의에서 안전 운전을 제일 먼저 강조한다. 교통법규를 철저히 지킬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직장에 들어와 근무하는 것이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운전을 하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꼴은 참으로 무능한 인간의 짓이라는 것을 귀가 닳도록 들려주었다. 그 사건 일주일 후 지방에 있는 사무실에 들렀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사원이라 개별로 주의를 환기시키려 그 직원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어제 날짜로 권고사직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 때만 해도 회사 내에 영업 직원이 모자라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때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과중한 업무에 쫓겨 고생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 차마 뭐라고 위로의 말조차 끄집어내기 민망스러울 정도의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로 하여 사무실 책임자에게 그 직원을 파면시킬 것을 지시할 수는 없었지만 회사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나로서는 파면시키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물론 이제 와선 모든 게 끝난 일이지만 그래도 궁금한 게 있어 그 직원의 전직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직원들 모두가 얼굴에 멋쩍은 미소를 띠우며 선뜻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한참 뒤 한 직원의 대답에 나도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 직원의 전력(前歷)은 ‘카레이서’가 꿈이었기 때문에 그 직종에 쭉 종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생활이 어려워 우리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단다. 즉 다시 말해 ‘아마추어 카레이서’인 셈이다.
‘카레이서’란 경주용 차량을 운전하는 전문 분야의 기능 선수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에 들어와 직원으로 보수도 받고 또 자동차 경주 기술도 익혀 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을 하고 입사를 했단 말인가. 화물차가 얼마나 위험한데 화물을 가득 싣고 경주용 차량처럼 일반도로를 전속력으로 질주를 했다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칠 노릇이다. 회사를 위해 희생정신을 발휘했다면 응당 회사에서 표창장을 주어도 몇 개는 주어야 하겠지만 아무리 무능한 운영자라 할지라도 이 같은 직원의 돌출 행동을 분별치 못할 책임자가 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결국은 그 같은 직원을 잘못 채용한 회사에도 책임이 있겠지만 누군들 직원을 채용할 때 자신이 말하지 않는 개개인의 전력(前歷)이나 습성을 꿰뚫어 대처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자신이 알아서 처신해야 할 문제가 아닐는지. 잠재된 직업의식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운전 습관이었다면 칭찬을 해야 할는지 아니면 꾸짖어야 할는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한 회사의 굳건한 기반은 얼마만큼의 훌륭한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느냐에 따라 그 회사의 장래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직업의식 수준은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라 있을까. 경제가 곤두박질치는데도 불구하고 남이야 어찌되든 제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의 잣대에 온 세상 모든 걸 꿰어 맞추려 큰소리치며, 서로가 서로를 음해하고 또 배타적 감정이 고도로 표출되는 상황 아래서 무사안일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