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의 보람을 찾아 (전향미 수기)
상태바
한국생활의 보람을 찾아 (전향미 수기)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6.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법무부 외국국적동포 한국취업.생활체험 수기 입상작

▲ 2009 법무부, 무연고동포추첨 식에서 수기작품 발표하는 전향미씨.
내 꿈은 명의가 되는 것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엉뚱한 길만 걸어왔고, 대학동기들이 의학의 길을 꾸준히 걷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속절없이 꿈을 접은 자신이 너무 억울해 잠 못 이루며 고민한 적도 많았지만, 다행히도 엉뚱한 길이라는 그 길이, 내가 지극히 흥취와 열정을 갖고 4년 동안 최선을 다해 번역회사를 운영해온, 번역의 길이었다.

그동안 나는 끝없이 밀려드는 번역 일에 밤샘을 밥 먹듯 하였고, 사업이니 성취감이니 하면서 딸애와 남편에게 전혀 무관심 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숨 쉴 시간도 없는 생활에 스트레스가 가득 쌓여, 딸애와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면서 남편 말 그대로 갱년기, 정신병 환자처럼 살고 있는 와중에 우연히 무연고방취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연고 없는 우리도 한국갈 수 있다는 정책이 너무 고맙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언니 형부를 비롯해 내가 인터넷 신청을 해준, 여러 사람들은 모두 추첨이 되어 2007년 말 한국에 왔다. 언니와 형부는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더니 돈 몇 푼 들이지 않고 한국에 가는 것이 꿈만 같았는지 비자를 해 빛에 비춰보면서 진위를 가리려고 한참을 애썼다.

비자가 나오자 남편은 내가 진짜 정신병환자가 되기 전에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무작정 한국행을 고집했다. 그때 나는 거래하고 있던 고객들이 많았기에 그들과의 업무 중단을 고려해 고민이 많았으나, 결국은 사업자등록증까지 말소시키고 한국행을 결심하면서 목적을 분명히 했다. 보다 질 좋은 한국어번역을 위해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현지에서 직접 체험하는 동시에 닥치는 대로 많은 인생경험을 하고 세상살이를 느껴보면서,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한국 와서 1년 동안은 남편과 같이 회사 생산직에 종사했다.

2008년 9월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주최한 수기공모에서 내가 쓴 ‘한국취업, 마음자세가 중요’라는 제목의 글이 우수상을 받았는데 막노동을 할지라도 애사심, 도전성, 책임감을 갖고 인간성을 갖추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한국인과 똑 같은 정신적 대우를 받게 되고 환영받을 수 있다고 썼다.

내 삶의 자세를 솔직하게 쓴 것인데 내 글이 인터넷에 실리자 “그렇게 애사심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단순노동에서 오는 허탈감을 극복하지도 못하면서 한국은 왜 갔냐, 제 자랑만 하지 말고 한국에 더 있어봐라. 한국생활에 대해 뭔가 착각하고 있다”라고 비난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남편마저도 나에게 눈치껏 일할 줄 모르고 그 잘난 단순노동을 하면서도 도전이니 나발이니 하면서 너무 열심히 일해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고 욕 먹여놓고는 공허감이니 허탈감이니 우는 소리 치다가 하루아침에 싫증을 느껴 자리를 바꾸려 한다고 욕을 해대기 때문이다.

눈이 퀭해 힘들어 하는 것이 마음 아파 그러는 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러한 남편과 매일이다시피 티격태격하며 1년 동안 회사생활을 하다가, 2008년 말, 경기침체로 인해 회사일이 급기야 줄어들게 되자 남편은 내가 맘대로 일자리를 바꾸는데 동의했다.

그리하여 나는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또 그럴수록 오기가 생겨 꼭 경험해 보고픈 식당일을 해보기로 했다. 식당 홀서빙은 예의와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고 갖가지 사람들을 상대하므로 한국인들의 정서와 문화에 보다 빨리 융합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으나, 막상 하려 하니 해보지 않은 일이고, 자신이 없어 너무 떨리고 두려웠다. 설거지는 머리 수그리고 부지런히 씻기만 하면 될 것 같아 면접 갔더니, 사장님이 기어코 홀서빙을 하란다. 구리시 산자락에 위치한 콩나물국밥집인데, 싸구려 집에 비해 인테리어가 너무 고급스럽고 화려하였다. 너무 떨려 손님들이 무서워지기까지 한다고 했더니, 며칠만 하면 적응이 되니까 잘 할 수 있다면서 격려해 주셨다. 자신감이 없는 나를 선뜻 받아주고 믿어주시는 사장님이 좋아서 이튿날부터 당장 출근하기로 했다. 하긴 뭐 남들도 다하는 일을 나라고 못하겠냐, 이럴 때 아예 성격이나 고쳐보자 싶어 큰마음 먹고 출근 첫날, 트렁크를 질질 끌고 11시에 도착하니 엄마야, 먼 손님이 이렇게 많다냐? 내가 손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서있었으면 좋겠는지, 허공만 바라보며 주눅이 들어 어쩔 줄 몰라 하니, 사장님은 우선 설거지를 시키셨다. 삽시간에 설거지 일이 잔뜩 밀려, 설거지 전담 언니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세척기에서 그릇을 빼어주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몇 분도 되지 않아 사장님은 잘 할 수 있다면서 무작정 홀로 내밀었다. 나는 우선 상 치우는 일만 했는데, 손님들을 향해 눈길 주기가 너무 부담스러워 손님들이 언제 가버린지도 모르고 멍하니 서있군 하여, 다른 홀서빙이 일일이 알려줘야 했다. 예의발라야 하는 줄은 아닌지라, 손님만 들어오면 “어서 오세요”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하는데, 식사를 마치고 잠깐 서 계시는 손님에게도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하고 물을 정도로 어리버리했다. 어디 그뿐 인가! 이튿날부터는 쑥스러움이 덜해져 주문도 받긴 했으나 워낙 빌지 같은 것을 쓰지 않다보니까 손님이 들어오신 순서와, 주문한 국밥 그릇수를 기억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안 된다. 고참 홀서빙은 손님이 바글바글 들이닥쳐도 순서를 야무지게 기억한다. 너무 존경스럽다.

우리는 주간에만 300-400그릇, 주말에는 500-700그릇 파는데 하루 종일 뚝배기 들고 정신없이 다니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주말에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빠서 전쟁터가 따로 없다. 손님이 많을 때는 아침 7시에 식사하면 오후 3-4시쯤에야 식사하게 되는데,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는 듯한 그 배고픈 아픔을 체험해보면서 여태껏 배고픔 모르고 살면서도 불만 투정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란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는 왕초보 딱지를 떼고 당당하게 손님들 앞에 나서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사장님과 언니들은 모두 막내, 막내하면서 기특해하고 미더워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또다시 심한 변비가 생겼고, 자다가도 “어서 오세요. 상 치워드릴게요”하고 헛소리 치면서, 벌떡벌떡 일어나 앉곤 했다. 산자락에 있는 콘테이너 숙소에서 악 하고 비명도 잘 질러댔으니, 불쌍한 나의 언니들이 자다가 얼마나 놀라겠는가! 나는 처음으로 정신력으로 버틸 수 없는 내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석달 만에 국밥집 일을 그만두었다. 아니, 더 이상 배울게 없다고 쉽게 싫증을 느끼는 병이 또 발작했으리라!

지금도 초보인 나에게 기회를 주고, 열심히 가르쳐주신 사장님과 언니들, 내 악몽과 헛소리 속에서도 잘 주무셔 주시고 너그럽게 웃어주신 언니들에게 얼마나 감사한 마음인지 모른다.

현재 나는 국밥집에 비해 체력이 적게 드는 생태찌개 집에서 큰 홀을 혼자 보고 있다. 첫 한 달은 새로운 분위기와 배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벌써부터 또 지겹다고 중얼대며 싫증을 느끼는 내 병이 발작하기 직전인 듯하다. 그러나 매일매일 닥치는 대로 보고 듣고 느끼며 배우려는 의욕에 버텨가면서 북한핵문제, 노대통령서거, 6.10범국민대회 등 시국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응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야구경기 때 손님들의 높은 응원열기에도 몸을 담그면서 한국인의 정서에 융합되려 노력하고 있다. 이것 모두가 귀국 후 계속해 나갈 번역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홀서빙을 하면서 내가 최근에 깊이 사색하게 되는 것은 바로 서비스마인드에 관한 것인데, 나는 그게 너무 부족하다. 웃지 않으면 서비스를 하지도 말라는 말도 있다. 나는 가슴에서 나오는 웃음으로 손님들을 대하다가도, 몸이 피곤하거나 일 자체가 지겹다고 생각될 때는 손님을 대하는 얼굴이 벌써 무표정해지고 까다로운 손님이 있으면 진저리를 치면서 눈초리가 사나와지는데 표정관리를 전혀 못한다. 서비스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아직까지 내가 하는 홀서빙은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단순하게 손님들 심부름 역할밖에 안 되는 것 같다. 내가 홀서빙을 진정 잘하는 날이 오면 앞에서도 말했듯 풍요로운 삶을 위한 지혜를 얻었다고 해야 할까.

한국생활 1년 반차, 낮에 12시간 일하고 저녁에 늦게까지 공부하면서 건강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그런지 너무 빨리 진액이 다 빠져버린 듯, 체력이 따라주지 않고 이젠 푹 쉬고 싶지만, 그래도 앞서 말한 삶의 자세는 영원하다. 단순노동을 할지라도, 자기 신체조건에 맞는 일터에서 인간성을 갖추고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하자!

무연고동포 방문취업제를 항상 고맙게 생각하면서 체류기간이 다되는 날까지, 한국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고 배우며, 꿋꿋이 부지런히 걸어가리라!

[전향미 : 중국 장춘중의학원 졸업. 중국 천진서 번역회사 운영. 현재 무연고동포방문취업제로 입국해 서비스업에 종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