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이동렬 장편소설 연재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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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류수(이동렬 장편소설 연재 26)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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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상을 차려놓고 유진이는 앞치마를 끌렀다. 이마우로해서 귀밑을 거쳐 뒤머리를 동졌던 연두색수건도 풀어놓았다. 깔끔하고 단아한 맵씨가 수더분하고 편해보였다. 반소매 T에 반바지가 흰색상이라 흰살결과 잘어울렸다. 곁에 다가앉자 크림내가 약간 풍겼다. 그녀의 체취일수도 있다. 밖이 약간 흐려있기에 밥상의 분위기가 한결 은근하고 부드러워진듯싶다. 해장하라고 토장국까지 끓여놓았다.

  그녀가 무릎을 꿇고 밥상곁을 파고들었다.

  “이러는게 편하거던요. 습관입니다. 근데 참, 입맛에 맛겠는지 모르겠어요. 고향친구들이 오면 이런식으로 장을 끓이거던요. 나물도 많이 넣고 장내가 진하게∼ 그런데 왜 자꾸 쳐다봐요? 부끄럽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안요, 그게 아니고요∼”

  나는, 엊저녁에 고마웠다. 대접도 잘받고 제집처럼 두발을 뻗고 잠도 잘잤다. 이렇게 아침상까지 받으니 시골 고향집에라도 온것 같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이상한것은 그녀 얼굴이였다. 잠자다가 일어난, 지난밤에 술먹은 얼굴도 아니였다. 유진이가 고개를 숙이고 쿡쿡거렸다. 손등으로 입을 막고 눈을 흘길사 했다.

  “아이참, 자상두 하시네. 아침에 일어나면 낯이 어수선하잖고 뭐얘요? 초면에 그런 얼굴 보이기 싫어서 손 좀 본거니 웃지 마세요. 직업성적인 원인도 있구요, 호호.”

  “아, 그래요? 실례입니다∼”

  가슴결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은연중 감동하고있는 자기를 발견했다. 녀자는 녀자의 맛이 있어야 한다. 부드럽고 은근하고 색채감이 있고 애교도 있어야 한다. 녀자의 빛은 저돌적인 남자의 빛을 솜처럼 감싸고 잘 닦아주고 예리하게 벼려줘야 한다. 종속적이란 말은 아니다. 수동적인것 같으면서도 능동적인것이 녀자의 매력일것이다.

  와이프와 처음 사귈 때의 생각이 났다. 순진하고 고투스런 모습이였다. 늘 부끄러워했고 할말을 다 못하고 웃음으로 떠넘기는 타입이였다. 세련된 지금과는 이미지가 전혀 틀렸다. 밥상에 앉아도 그랬다. 꿇은 무릎을 팔자형으로 펼치고 탄력있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힐사했다. 늘 고개 조금 숙일사하고 밥술을 들었다. 조모의 손길에 잘다듬어진 모습같았다. 편한 자세를 취하라면 오히려 귀밑을 붉혔다. 괜찮아요, 습관인걸요뭐, 변명했다. 그런 촌티나는 행동거지가 엉성했으나 오히려 잊혀지지 않았다. 따뜻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녀가 웃는듯마는듯 입술을 감빨았다.

  “그렇다면 뭔가요, 절 칭찬한것은 결국은 와이프때문이였나요? 정말 질투나네, 호호. 와이프가 그렇게 좋으세요?”

  뜻하지 않은 그녀의 공세에 나는 당황해났다.

  “아니, 런 뜻은 아닌데∼”

  “그럼, 와이프가 싫은가요?”

  “안요, 허, 솔직히 전 와이프를 사랑해요, 참말입니다.”

  “그럼 그렇겠죠, 다른 사람들앞에서 그런 말을 떳떳이 할줄 아는 남자가 전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해요∼ 사랑, 좋지요. 많이 아껴주세요, 와이프를 사랑하신다면! 노래가사처럼 사랑이 없는 가슴은 황막해지고 거칠어지기 쉬워요, 전 그런 남자가 싫거든요.”

  “그런가요∼?”

  모카의 냄새가 났다. 과일향 초콜렛향 와인향인가?

  한 남자와 한 녀자가 비좁은 방에서 하루저녁을 보냈다. 다정한 오누이처럼 말을 나누었다. 아무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 그런 여건들을 수용하고 스스럼이 없는 남녀가 의심스러웠다. 어찌 술탓에 돌리랴! 혹시 무엇에 서로 끌리기라도 한것일까? 그게 뭘까? 결코 성적인 호기심만은 아니였다. 공항에서 만났을 때부터 친해지고 싶어졌으니까. 그녀한테 이야기가 있어보였다. 내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그것이면 충분했다. 적어도, 그녀의 서울을 알고싶었다. 어쨌든 나는 이런 놈이였다.

  밖을 나가자 물기 머금은 바람이 옷자락을 감아왔다. 그녀가 곁에 붙어섰다. 친절을 나타내는 자상한 마음이다. 우산이 없어 어찌겠냐 걱정을 한다. 어찌 우산뿐이랴. 핸드폰도 없고 전혀 길도 모르잖은가? 서울에서의 첫날 아침, 첫바람을 이렇게 맞고선것이다.

  우리는 육교우에 섰다. 육교아래는 남북으로 뻗은 길이 빠져있다. 차들이 우로 올라와서 길을 바꿔나가기도 했다. 육교란 말이 구름다리란 말보다 터프했다. 내가 선 육교에서는 저 앞에 다른 한 육교가 보였고 그쪽 길을 따라가면 애경백화점이 나지고 좀더 가면 애경백화점과 전철역을 이은 구름다리가 보인다. 1호선을 타자면 구름다리에 올라 왼쪽 구로역으로 진입해야한다. 이번에 돌아서니 멀지 않는 곳에 교차로가 보였다. 길 오른쪽에는 구로구청이 있고 왼쪽에는 하이마트, 삼성증권회사 등이 있다. 교차로에서 좌우회전하지 말고 곧바로 가다가 왼쪽 첫길로 빠지면 구로우전국이며 서울조선족교회가 있다. 옛날 이 고장에 장수한 아홉로인이 살았기에 구로란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역은 락후하지만 우리가 살기는 좋아요.”

  자상한 소개끝에 유진이가 몸을 옹송거리며 더 가까이 붙어섰다. 만나볼 사람도 있고하니 자기와 조선족교회에나 가보잔다. 일요일이라 례배드리는 행사가 있다고 한다.

  나는 조선족교회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다. 서울에서도 유명한 교회에 속했다. 몇해전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으로 조선족을 돕던 서경석목사가 창립한것, 당년 8월에 조선족과 고려인이 제외된 재외동포법 반대 명동성당앞 농성에 돌입하여 조선족을 위한 재외동포법 보안대책발표를 이끌어냈고 이년후에는 조선족동포무차별추방에 항의해서 20일간 매일 서울출입국관리소앞에서 시위를 하고 십자가행진을 했다. 특히 서목사와 백여명의 교포들은 이십일간 단식에 돌입해서 법무부로부터 무차별단속 자체를 포함한 광범위한 제도개혁 및 인권개선 약속을 받았단다. 대통령까지 방문을 한바 있는 이름난 교회였다. 교회에 대해 나는 이렇다저렇다 말하지 않았다. 신앙은 자유니까.

  “괜히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저두 교는 안믿어요.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할적에 가서 앉아있는거죠. 사람도 만나고 이야기도 듣고, 그러다보면 흔들리던 마음이 안정을 찾고 방향이 서는겁니다. 참, 누구나 이렇게 나약한데가 있나보죠? 호.”

  그말에 약간 흔들렸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후에요, 미안하지만 후에 가볼게요∼ 첫날이니까, 서울 온 첫날이니까 그냥 조용히 혼자 다니고싶네요. 그러다 실증이 나면 련락드릴께요. 혹시 복선녀씨한테 전화가 오면 제가 찾을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세요.”

  “그럼 그러세요∼ 안전에 조심하세요.”

  그녀가 흔쾌히 대답하고 돌아섰다.

  한시간쯤 지나니 하늘에 구름이 벗겨졌다. 습도 많은 공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양복에 넥타이차림이다보니 불편했다. 집에서 격에 구애없이 늘 간편하게 입고다녔기에 어떤 틀에 맞춰진것 같았다. 스스로 그런 틀속에 자기를 집어넣고 낯선 환경과 대면한것이다. 쓰잘데없는 자존심때문일까? 기실 누구도 나를 바라보고 관계하는 사람이 없다. 제멋에 겨워 웃고 말하고 제생각에 잠겨 오가고있다. 처음은 세상에 의해 버려지고 잊혀진 느낌마저 들었다. 나란 존재가 맹랑했다. 누구도 모르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 더구나 오라가라 하지도 않는 곳을 찾아왔으니까. 내가 자라온 과거 및 사회적인 사고방식이나 관념과 형태는 고국과 어떤 이데올리기를 형성하게 했다. 몸과 마음에까지 스며있고 굳어지고 응어리져 딱딱해진것들이 자꾸 낯설게 했다. 죽은 진호형생각이 났다. 할머니와 아버지, 고향에 묻혀있는 증조부증조모의 묘소도 떠올랐다. 이 땅에서 태여났고 이곳에서 걸어나간 사람들이다. 도무지 믿고싶지가 않았다. 왜 떠났단 말인가? 나는 감히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 말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꿀리고 떳떳치 못했다.

  (갔으면 갔지, 갔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죽치고있을거지, 갔으면 그곳에서 살든죽든 뿌리내리고 살것이지 찾아오다니? 왜? 왜서?∼ 돈때문에?)

  누구도 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질의조차 하지 않았다.

  애경백화상점앞에서 나는 오뎅 한꼬치를 샀다. 오백원씩 했다. 종이컵에 담은 따뜻한 국물을 한모금 마시고 간장에 오뎅을 찍어 베먹었다. 떡볶기, 물만두, 떡을 해서 팔기도 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먹었다. 속이 좀 편해지자 나는 자리를 떴다.

  1호선전철은 수원역에서 북의정부까지 이어져있다. 구로에서 오르면 노량진, 서울역을 거쳐 종로3가, 동대문으로 해서 삼팔변경선과 가까운 북의정부에까지 닫는다. 후에 안 일이지만 거기에는 미군부대가 주둔해있다. 남북대치상태에서 외국군이 개입해있다.

  나는 서울역에 내렸다가 종로3가로 갔고 다시 동대문까지 오갔다. 점심을 거른채 아무 생각도 없이 바람처럼 흔들거렸다. 낯선사람들과 낯선건물들이 곧 낯설지 않고 익숙해질것 같았다. 바다 건너 이런 땅을 실감하니 경이로웠다. 우리 가문이 4대에 걸쳐 찾아온 곳, 우리와 똑같은 생김새와 말과 행동거지로 넘실거리는 인파, 상상속의 문명이 이뤄진 고국자부감은 아니였다. 경계심도 일고 더불어 배짱도 생겼다. 떳떳치 못할것은 없다. 그렇게, 얼마나 다녔는지 다리에 맥이 풀려났다. 받아들이고 어쩌고할것 없이 이미 서울에 속해있는 자기를 알았다. 진수형과 처남 박서방 생각은 그때에야 났다. 어디에 숨어 돈을 벌고있는지 모르나 당금 찾고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복선녀와 내가 알고있는 얼굴들이 수없이 얼른거렸다. 서울은 결코 낯선 곳은 아니였다.

  서울역에서 나는 유진이한테 공중전화를 했다. 복선녀한테서는 아직 무소식, 남수의 와이프 경자씨가 엊저녁에 남편과 통화하던중 소식을 알고 전화를 해왔다. 핸드폰번호를 알려주며 전화부탁을 해왔더라, 그녀가 알려줬다.

  “잘 아는것 같던데요? 호호, 경잔말이에요, 들어보고 목소리가 좀 갈리는것 같으면 반가워한다는 증표거든요. 골이 나있거나 속이 불편해있으면 목소리가 커지지요. 왈왈거려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친구죠∼ 지금 어디에 있죠?∼ 그럼 카드로 빨리 해보세요.”

  나는 남수와이프와 련락을 갖게 될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들자마자 큰 목소리로 물어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네, 안녕하세요? 저∼”

  웬지 잠간 말문이 막혀왔다. 결혼할 때 보고 한두번 더 봤을뿐이다. 약간 철색이고 몸이 약하며 키가 보통이든가? 눈과 코며 입도 가물거렸다. 그때는 목소리가 부드러웠다는 생각을 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오머, 오머―, 선생님 아니세요?∼ 저 남수처인데요, 경자에요, 윤자! 아이 반가워라. 이게 몇년만인이지?∼ 무사히 왔지요? 검사가 심하던가요? 아아, 선생님이사 괜찮지, 요즈음은 단속이 얼마나 심한지∼ 우리 집 그인 잘있던가요? 여위지 않았어요? 애도 공부 잘하고요? 참, 집은 어떻게 됐어요? 별장은 잘 지었던가요?∼ 아직 멀었지요?∼”

  그녀는 숨도 돌리지 않은채 스무개도 더 되는 줄물음을 물어왔다.

  “저∼ 저∼”

  “오머, 이 정신 봐, 너무 반갑구 궁금하구, 그래서유. 미안해요.”

  저쪽의 신호가 잠시 끊어진듯 잠잠해졌다.

  “여보세요∼”

  “예, 예∼ 듣고있어요∼ 한번 부산에 내려오실래요?∼ 언제쯤이면 될까요? 고속렬차를 타면 네시간이면 도착하는데, 금방이에요. 아, 정말 보고싶네요∼ 렬차왕복권은 지가 책임질터니 경비는 시름놓으세요, 예에?”

  그녀는 어딘가 독단적이고 리기적인것 같다. 그런데 갈리고 쉰 목소리가 곧 반감을 누그러뜨려주었다. 인생의 황금시절, 부부사이 애 키우며 사는 재미가 한창 좋을시절에 5년동안 갈라져있었으니 심정이야 오죽할까. 자기가 겪어봤기에 나는 그 고초를 안다. 거기에 내 가슴을 더 뜨겁게 한것은 초심을 잃지 않은 그녀 마음이였다.

  나는 낡은 서울역과 신축 서울역 부근에 설치해놓은 등의자에 앉았다. 해빛이 밝고 강했다. 습도가 많은 탓인지 느낌이 부드러웠다. 이맘때면 동북평원 내 고향의 해빛은 건조하고 독할것이다. 대륙성기후의 영양을 받는 까닭이다. 연변은 그래도 좀 나은편이다. 동해기후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기에, 해빛의 강약과 윤활을 조절하는 기후는 그래서 위도와 지형의 영향을 심하게 받게 된다. 허나 인간은 다르다. 의지의 빛은 해빛보다 강하다.

  이윽고 옷이 람루하고 머리가 흩어진 사내 둘이 내곁에 다가왔다. 여나문명이 둘러앉아 소주를 마시며 놀던 무리에게 흥미로운 눈길을 던진게 잘못이였다.

  “사장님, 부탁합니다. 소주 한잔 사게 천원만 선심 베풀어주십시오.”

  “네? 전 사장이 아닌데∼”

  “천원입니다. 사장님한테 천원은 쥬스 한잔값에 불과하나 우리에게는 하루의 즐거운 인생을 선물하는것이 될겁니다. 단 천원이면 됩니다.”

  “전 이곳 사람이∼ 아니, 여기 있어요.”

  나는 천원짜리 한장을 주고말았다. 가만히 보니 그들은 교포가 아닌 서울거지들이였다. 서글픈 웃음이 입가에 걸려왔다. 첫수업을 단단히 받은셈이다.

  나는 한껏 기지게를 켜며 방종스레 일어났다. 품에서 종이 한장을 꺼냈다. 진수형이 그린 복선화의 반면상유화였다. 반쪽이 없는. 없는 그 반쪽얼굴이 밑창없는 묘혈만 같던 꿈의 정경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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