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와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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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와 피닉스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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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43>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애리조나’ 하면 누구나 생소하게 여긴다. 노래 속에 나오는 ‘애리조나 카우보이’를 연상하거나, 기껏해야 목장 아니면 사막을 떠올릴 정도이다. 이러한 점은 미국의 여러 지역을 다녀 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이곳이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또 가 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애리조나에 오면 흔히들 두 번 놀라게 된다고 한다. 한 번은 황무지 천지인 자연 환경에 놀라고, 또 한 번은 그랜드 캐년처럼 기기묘묘한 자연의 형상에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는 자연의 황량감(荒凉感)에서, 다른 하나는 그 특이미(特異美)에서 각각 일어나는 감흥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애리조나에서 세 번 놀랐다.

   첫 번째 놀라움은 역시 황량감이었다. 대부분이 바위와 흙언덕뿐인 산야(山野), 끝없이 이어지는 광대한 사막과 불모의 황무지, 메마른 강줄기와 하천들, 이러한 삭막한 풍경들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서부터 미국에도 이런 곳이 다 있나 하는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느낌은 지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덩그마니 홀로 누워 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 맨흙 지대가 아니면 선인장들이나 키 작은 나무들만이 가뭄에 콩 나듯이 띄엄띄엄 서 있는 산과 들, 물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말라 있는 하천과 강들, 이 모두가 색다른 풍경이요 독특한 모습들이었다.

   가까이서 본 나무들의 모습도 특이하다. 앙마트게 자란 가지며 녹두알처럼 작은 잎들이 성글게 붙어 있는 모습은 뼈만 남은 굶주린 아이를 보는 듯 볼품이 없다. 잎새라고는 하나도 없이 줄기와 가지가 온통 초록빛인 나무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기온마저도 섭씨 40도에 가까워 더운 열기가 확확 몰려들었다. 마치 불타는 도자기 가마나 용광로 곁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흙모래에 눈을 뜨기가 힘들고, 얼굴과 맨살은 먼지를 뒤집어 쓴 듯 까칠까칠해졌다. 다만 습도가 매우 낮아 무덥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래도 ‘여름 석 달만 넘기면 살기가 참 좋다’는 현지 교포의 말이 진실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두 번째 놀라움은 특이한 자연의 모습들이 펼쳐 주는 아름다움에서였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엄하고도 불가사의하며 신비로운 것이었다. 관목들이 무늬를 놓듯 한 지평선까지 계속되는 구릉들, 황무지 언덕에 당당한 위병들처럼 서 있는 큰키 선인장들, 아지랑이 없이 눈이 부시도록 비추는 찬란한 햇빛, 황폐한 들판을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관광 열차, 모두가 논리보다는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한 줄기 바람처럼 잠시 내려, 온 세상을 금가루 은가루를 뿌린 듯하다는 겨울철의 눈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울 것 같다.

   특히 그랜드 캐년의 모습은 세상에 이런 곳도 있는가 하고 깜짝 놀라게 한다. 길이 440㎞에 나비 7~29㎞, 깊이 1,700m나 되는, 총면적 2,610평방킬로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와 크기가 먼저 짐작과 상상을 뛰어넘는다. 또한 그랜드 캐년은 생긴 모습과 빛깔이 너무나도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어 탄복하게 한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고, 햇빛의 변화에 따라 마술과 같은 변신을 보인다.

   멀고 가까운 바위산과 절벽들, 까마득히 깊게 내려다보이는 강줄기, 지평선처럼 먼 협곡의 가장자린가 하면, 어느 새 날 보라는 듯이 앞으로 바짝 다가서는 기암괴석들, 멀거나 가깝게 좁거나 넓게 시도 때도 없이 끊임없이 변모하는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형상들,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고 비슷한 모습도 없다.

   환상적인 빛깔은 별의별 모습을 지닌 절벽과 바위들에서 빛난다. 아침의 노랑빛이 점점 짙어져서 타오르는 듯한 오랜지색이 되고 다시 진한 빨강빛이 되었다가 황혼이면 찬란한 자색으로 변한다. 저녁 햇살은 마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루비와 황금으로 되어 버린 층층바위들을 비춘다. 그랜드 캐년은 각양각색의 형상과 색채들로 다가와 끝없는 경이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그랜드 캐년은 진실로 신이 아니고서는 만들 수 없는 가장 놀라운 예술 작품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랜드 캐년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17세기에 스페인 탐험가들에 의하여 ‘붉은 강’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콜로라도 강이 그랜드 캐년의 조각칼 역할을 한다. 움직이는 사포(砂布)처럼 수백만 년에 걸쳐 끊임없이 깎고 씻어내어 이 엄청나게 거대한 바위 협곡을 조각해 냈듯이, 강물은 지금도 걸쭉한 물결에 매일 50톤도 더 되는 모래와 진흙을 운반하고 있다고 한다.

세 번째 놀라움은 이처럼 황폐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러 가지 삶들의 모습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러한 삶들이 모두가 의외와 강인한 것이어서 놀라게 되는 것이다. 삶의 끈질김과 신비를 함께 느끼게 하는 감탄이다.

지네와 거미는 물론 뱀이나 도마뱀도 많고, 전갈은 애리조나의 상징적인 생물이다. 새소리도 곳곳에서 들리고 보금자리와 알을 품고 있는 모습도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먹을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불모의 땅에서 이러한 육식동물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사람들의 삶도 그렇다. 황폐한 산간벽지에서 수천 수만 년을 살아오는 인디언들의 삶은 그만두고라도 현대인들의 생활도 가히 놀랍다.

   미국 총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구리 생산은 애리조나의 황폐한 환경과 상관이 없다 치더라도, 비육우와 면양을 방목하며 목화 생산을 주산업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하겠다. 사막과 물 없는 불모(不毛)의 땅을 그들은 농경지와 목장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1911년 루즈벨트 댐의 건설이 애리조나 발전의 생명피가 된 것이다.

   주도(州都)인 피닉스는 몇 십 년 전만 해도 황량한 애리조나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름 없는 작은 도시였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의 10대 도시에 들었다. 첨단과학단지의 조성이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고 하지만 믿기지 않을 정도의 급성장이다. “물이 없고 높은 기온에 낮은 습도”라는 삭막하고도 무가치한 조건을 그들은 최첨단 전자?정보산업 개발의 최적합 조건으로 전용하였던 것이다. 불속에서도 타 죽지 않는다는 ‘불사조(不死鳥)’라는 뜻을 가진 피닉스(phoenix)가 말 그대로 불모지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애리조나의 자연은 사막과 같이 황폐하고, 기후는 불모지처럼 열악해서 놀란다. 또한 애리조나의 자연 형상과 풍경은 너무나도 기묘하고 멋져서 놀라게 된다.

   그러나, 애리조나는 그런 황량감(荒凉感)과 특이미(特異美)에의 놀라움보다도, 그 같은 불모성(不毛性) 속에서도 가시투성이의 큰키 선인장에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듯이, 황무지 한가운데에다 미국 10대 도시를 세운 무섭도록 강인한 미국인들의 삶에서 가장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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