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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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15)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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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기 흑룡강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복선화, 꼬마요정이였던 그대를 한번쯤 당신이라고 해야 할건가? 그때 나는 그대를 당신이라고 하지 않았고 할려고도 안했다. 이쯤에서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하고싶다. 순수에 대해 말하려 한다. 나와 복선녀와의 사랑은 순수했다. 그대와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순수하다 할수 없을것이다. 쬐꾀만한게 진수형과 어쩐다는 소문이 나도는 판국에 그랬다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변명 하나쯤 남기고싶다. 순수한 자가 더 쉬이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것을. 물론 그건 운명의 작간이였을것이다.

 

니가 나를 좋아하는줄 안다. 사랑이라도 괜찮다. 좋아하는것과 사랑하는것은 통한다. 어린 눈빛이 그렇다고 말해준다. 인애가 있기에 넌 자연스레 우리 집을 나들었다. 진수형의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뒤를 졸졸 묻어다녔다. 둘의 나이차가 있기에 다들 의심을 안했다. 네사촌언니가 내눈에 콩깍지를 씌웠고 넌 내 콩깍지의 사촌동생일뿐이다. 그런데도 나를 향해 반짝이는 눈빛이며 말없이 수태를 머금고 돌아서는 천연상은, 가끔 엉뚱한 소리로 수작을 붙혀오는 요사한 꼴은, 무조건 널 요정이라 매도하게 했다. 그래도 살아있고 남아있고 붙어오는것이 있다. 소힘줄처럼 당겨도 끊어지지 않는것! 내맘에서 빨개지고 지꿎어지는것! 싱숭생숭해지는것!∼ 나는 날이 갈수록 불안해났다. 네 사촌언니한테 가서 독거미를 찾으면 이젠 그것이 더 표독스러워졌다. 또 한번의 사춘기를 앓고있는것 같았다.

 

네가 입은 옷은 너네 큰엄마의것을 줄인것이요 신고있는 신도 이웃집에서 얻어온것들이다. 우리 엄마는 인애의 낡은옷과 신들을 많이 주었다. 몸매가 인애보다 좀 작기에 네몸에 잘맞았다. 봄이면 넌 인애와 바구니를 끼고 나물캐러 다녔고 여름이면 나와 남수한테 붙어서 고기잡으러 다녔다. 겨울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강에 나가 스케트도 탔다. 꼬마요정은 무릇 내가 보는 책이라면 다 찾아읽었다. 네 사촌언니가 말했다.

“걘 참 이상한 애야. 공부는 하지 않고 소설책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거든. 니가 본 책이라면 뭐든 다 찾아읽어요. 애는 작아도 속에 령감이, 아니 로친이 들어앉아있는것 같애. 호, 니도 아마 조심해야 할것 같은데?”

 

복선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야릇하게 흘겨보았다.

그날 남수와 나는 호수가에 천막을 치고 낚시질을 했다. 인애와 너도 따라와 구경하며 놀았다. 점심은 잡은 붕어와 메기로 찌개를 했다. 어린것의 솜씨치고 괜찮았다. 남수가 너도 이젠 내 색시하면 되겠다고 롱을 붙혀왔다. 요정은 대답은 안하고 나만 흘낏 쳐다봤다. 남수가 집에 잠간 갔다오겠노라 인애를 끌고 떠나자 우리는 천막에 들어가앉았다. 술을 좀 마신탓에 나는 비스틈히 누웠다. 넌 곁에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오빤 술만 마시면 꼼작 못한다. 속이 갑갑하지? 술 좀 깨게 해줄까?”

“니가?∼ 허, 어떻게?”

넌 컵에 물에 사탕가루와 식초를 타서 권해왔다. 반듯이 눕혀놓고 적신 손수건을 이마에 얹었다. 손바닥으로 손등을 자꾸 쓰다듬어내렸다. 볼이며 턱이며 귀볼을 부비고 쓰다듬고 매만졌다. 작고 빳빳한 손이 제법 맵고 화끈거렸다. 큰엄마가 큰아버지한테 하는것을 봤다고 한다. 술이 깨는것 같았고 잠이 올것 같았다. 어느새 너의 손을 잡았다. 자기도 잠이 온단다. 아무말없이 곁에 와서 누웠다. 내 팔을 끌어다 베고 얼굴을 품에 묻어왔다. 아차 할사이도 없이 나는 몽롱해져갔다. 깨여나야겠다고 하는데 몸이 말이 듣지 않았다. 요정은 벌써 코로 단김을 쌕쌕 뿜어댔다. 잠이 다 달아나버렸다. 호수가에서 물고기가 뛰노는 소리가 들렸다. 기막힌 정적이 불볕속에서 얼어붙고있다. 어서 애를 깨워야 한다. 누가 보면 망신이다.

“선화야, 일어나거라. 인애가 올 때 됐다 응? 남이 본다.”

“으응”

꼬마요정은 응석부리듯 가슴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이눔의 계집애?∼”

 

나는 힘껏 밀쳐버릴까하다 말았다. 두 주먹을 가슴에 말아쥐고 두 다리를 오무린채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요정은 순수했다. 인애같은 엉석둥이다. 감실한 목덜미에 보슴털이 채 가셔지지 않았고 턱이며 이마에 소똥버짐마저 피여있다. 고아란 생각이 밀려들자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끌어안고말았다. 계집애는 신음하듯 더 바싹 파고들며 한손을 내 속옷안에 밀어넣었다. 팥알만한 내 젖꼭지가 그 작고 까칠한 손에 의해 만져졌다. 쬐꾀만한 집게같은 손가락에 의해 집히워졌다. 너무 당황하고 황당해났다. 그래서 애를 훌 밀어버리고말았다. 그런데 애는 좀처럼 깨나지 않은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허, 요것이?∼큰일 났네.)

 

계집애는 또다시 왼손을 속옷안으로 밀어넣고 하던 동작을 반복했다. 모성애도 부성애도 모르고 자란 애니 그러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련민이 다시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부지중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애가 하는데로 내버려두었다. 내눈에는 애의 까만 눈이 점차 희미하다 또렷이 커져왔다. 그 눈은 언제부터 이 고장에 있은듯 하기도 하고 없은듯 하기도 했다. 더 멀리 요원한 곳에서 온것 같았다. 그곳에는, 애의 량친부모가 있고 애의 따뜻하고 포근한 집이 있다. 어찌하다 집앞의 내물에 휩쓸려 이쪽을 건너오게 된것이다. 한번 건너오면 두번 다시 건너갈수 없는 강이였다.

 

애한테 너무했다는 죄책감에 들었다. 불쌍한것, 선녀의 사촌동생이요, 인애의 친구가 아닌가! 해도 내가 너무한것이다.

 

입에서는 자장가라도 흘러나올것 같다. 할매의 가락 엄마의 노래가 요람을 밀어주는 착각이 일었다. 몽롱한 의식속에 물고기가 먹이 따먹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로출된 아래배에서 차츰 이상한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이비한 느낌이였다. 뭔가 잘못돼가고있다는 예감이 왔지만 그럴수 있냐고 생각했다. 애의 손가락은 겨드랑이로해서 배살까지 미끄러져내려왔다. 그 손가락끝이 간지러워지고 싱숭거려졌다. 몸아래에서 무의식중에 자라고 커가며 욕심 써오는것이 있었다.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어처구니없어졌다.

 

이때 갑자기 누군가 천막안에 뛰들어왔다.

“이 기집애, 뭘해, 너?”

인애가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꼬마요정은 그제야 놀라 후다닥 일어났다. 흩어진 머리카락이 잠기 취한듯한 얼굴에 거짓같이 가라워져있다. 으응, 왜 그래? 하는 표정이 되였다. 나도 손바닥으로 앞을 가리고 주저앉아 녀동생한테 눈을 흘겼다.

“이눔 기집애, 간 떨어질번 했잖아? 뭐가 어쨌다고 야단이야?”

마음 약한 인애는 우리의 역습에 외려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였다. .

난 다시 꼬마요정, 널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나쁠수도 있다.

시누렇게 익어가는 가을까지 너의 눈을 피해다녔다. 뭔가 잔잔히 얘기할것 같기도 호소할것 같기도 했고, 질의할것 같기도 했다. 작은눈이 무서웠다. 때로는 인애의 어깨너머에서, 때로는 진수형의 겨드랑이밑에서, 때로는 오도카니 선채 빠꼼해서 쳐다본다. 무시할수록 그 눈이 더 사물거려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에 남다른 삶이 수더분히 묻혀있는것 같았다. 지게 지고 나무해오기, 채소밭 다루기, 벽 바르고 이영 엮어 지붕에 올리기, 농사짓기. 모든것이 우리 삶의 고리와 꼭 맞물려있음을 깨닳았다. 산다는것, 삶을 영위한다는 기초작업에서 자기의 의술을 죽인채 아버지는 묵묵히 신고를 견뎌나갔다. 고된 육체로 아픈 정신을 무마해갔다. 안해 몇을 맞아들인 경력이 곧 남앞에 나서기 주저하게 했고 고독한 독보를 자초하게 했다.

 

음력 팔월십오일 한가위날. 이 고장의 두번째 큰 명절인 추석이다. 온동네가 며칠을 쉬고 가을걷이를 시작했다. 소대별로, 때로는 대대별로 소학교마당에서 운동회를 열었다. 녀성들의 치마자락은 그네우에서 날고 남자들의 응원소리는 씨름터에서 높아간다. 륙상이나 배구, 축구 등 구류종목도 인기가 높았다. 개를 잡고 술놀이를 하며 온 마을이 질퍽해난다.

 

엄마는 그네를 타면 해년마다 일등을 한다. 시집올 때 입고왔던 연분홍저고리에 파란치마를 받쳐입고 흰비단속옷을 입고 손수 지은 흰버선을 신고서 하늘을 난다. 두줄을 당기면서 씽씽 날아오를 때면 엄마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저 멀리 어딘가를 응시한다. 거기에 엄마가 자란 고향이 있을수도 있고 이루지 못한 엄마의 꿈이 있을수도 있을것이다.

 

나는 운동대회에 나가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성묘하러 갔다. 조상의 묘앞에 술을 붓고 절을 올렸다. 할매는 내가 철이 들었다고 엉덩이를 쳐주며 좋아했다.

우리 부자는 묘지앞에서 제법 술잔을 나누었다. 날씨는 벼알이 익어 튕기는 소리가 날만큼 좋았다. 골안에 바람이 불어들 때마다 극치에 달한 단풍이 울긋불긋 소리내는것 같았다. 그속에 연치(여치)들이 얄팍한 날개를 비벼댔다. 나한테 여러번 술잔 권하던 당신이 먼저 길을 내렸다. 잔디우에 앉아 당신의 뒷모습을 본다. 훤칠한 키에 구부정한 허리에 술에 취한듯 흐너적거리는 다리가 한맺힌 아리랑같이 묘하게 슬퍼진다. 이제 저 강을 건너 벌을 지나 집에 찾아들어서 구들에 누우면 당신은 코를 곯것이다. 당신이 바로 이 고장의 강이요 벌이요 마을이요 우리 집인것이다. 당신한테서 배운 이십사절기가가 생각났다. 계절의 노래같고 바람같은 당신! 나는 저도 몰래 코노래를 흥얼거렸다.

 

한달은 두 절기이요 한 절기는 보름이라네. 립춘에 날씨 따듯하고 우수에 거름내기 마쳐야 하리. 경첩에 밭을 갈고 춘분에 밭매기 게을리하지 마세. 청명에 나무를 심고 곡우에 파종을 하세. 립하에 남새 심고 소만에 꽃 심으세. 망종에 양어장을 돌보고 하지에 어서 김 매줘야 하리. 소서에 더운 날 찾아오고 대서에 호미날 걸어둬야 하리. 립추에 배추를 심고 처서에 과일참외 달게 익네. 백로에 날씨 서늘해지고 추분에 겨울밀 심고 한로에 수확을 마쳐야 하리. 상강에 고간에 곡식 차넘치고 립동에 움 가득 남새 채워둬야 한다네. 소설에 땅이 얼고 대설에 강이 막히니 동지에 쉬는 날 길어지고 소한에 설준비 바쁘고 대한에 기쁘게 새해를 맞아야 하리.

 

이십사절기가는 이 고장 한족들의 농부가였다. 나는 부르다가 어슴푸레 잠이 들어버렸다. 꿈에 복선녀가 나타나 내 목을 끌어안았다. 서로를 애무하다 정사를 벌렸다. 눈앞에 금시 수없는 반디불이 명멸해왔다. 도깨비불들도 여기저기 진을 쳤다, 시퍼런 린불을 번쩍이면서. 분명 사의 축제였다. 그속에서 나는 불사조같은 나의 새 생명을 꿈꾸었다∼

복선녀가 나를 깨운것은 오후 두시쯤이였다. 요정도 곁에 서서 웃고있다.

“난 니가 또 잘못됐는가 했다. 뭘하고있어, 지금?”

“보다시피, 주무시고있지, 음­.”

“아니 꿈꿨나? 뭐하는데요, 그 손은? 호호.”

아닌게 아니라 배밑을 파고든 손이 그러고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괜히 요정을 흘겨보면서 나는 무뚝뚝하게 일어섰다. 짐짓 복선녀의 팔장을 끼고 내려가자 했다.

복선화, 넌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나 또한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랐다. 넌 굴러온 돌이요 나도 저 세상 어디에서 굴러온 돌이다. 돌과 돌은 부딪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돌은 그저 돌일뿐이다.

 

코수염을 기른 진수형의 암울한 눈빛에 의해 그려진 화판에서 나는 퍼그나 숙성된 요정을 볼수 있었다. 넌 제법 녀인이였다. 깜장머리이며 까만눈이며 감실한 살결에서 흘러내리는것은 의연히 률동적인 검은빛이였다. 질투나 야욕이 거기에 짙게 배여 화끈거렸다. 형의 눈으로 본 요정이 그렇다면 내 판단 또한 틀리지 않을것이다.

황혼의 빛이 뜨락에 짙게 깔린 저녁, 집 근처 백양나무우듬지에 까치가 우짖었다.

 

형이 곁에 나타나 푹 꺼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림이 좋니? 너한테 선물할까?”

“흐음, 내가 왜?∼ 사양하겠소.”

“허, 왜 그러니? 넌 아직 어리구나!∼ 뭔가 하나 기념을 남기려 했는데.”

“하필이면 이 기집애를?∼ 어딜 가오?”

“글쎄, 모르지, 사람일이란? 잘 건사해라. 여직 내가 너한테 해준것 없으니 선물하는거다. 그림은 말이야 예술이다, 예술! 너도 예술이 뭔지 알지? 이 애한테는 빛이 살아있다. 어떤 정신적인 빛이, 생명의 빛이라해도 괜찮겠지! 그 빛이 뭔지 딱히 모르지만. 아마도 장차 훌륭한 녀인이 될거다. 내 짐작에는, 아마.”

 

(훌륭한 녀인? 흥, 바람쟁이는 안되고?)

 

나는 실소하면서 코방귀를 뀌였다. 형의 머리는 문제투성이였다. 오래동안 집식구들과 말도 안하고 혼자 우울해서 지냈다.

 

그날 저녁에 일은 사전에 꾸며놓은것처럼 갑자기 터지고말았다. 우리 집을 찾아온 선화큰아버지가 술에 취해 갈지자로 비틀거렸다. 팔을 걷어붙히며 고함을 질러댔다.

“진수야, 네 이놈, 썩 기바라나오지 못할까? 요 후레자식같으니, 이 망종아! 너 어린 기집애를 데려다 무슨짓을 했어? 어서 이실직고를 못할까?”

진수형의 멱살을 거머쥐고 휘두르며 사정없이 치고박았다.

곁에서 할매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아우성치며 삿대질해댔다.

“왜 때리노? 왜 때리노?∼ 저 눔 사람 죽인다!”

엄마는 팔짱을 끼고 담담히 구경하고 인애는 할매한테 붙어서 울음보를 터뜨렸다. 갑자기 엄마가 달려들어 미쳐가는 사내를 힘껏 밀쳤다.

“당신 뭐요? 왜 남의 자식을 치고박고 이 야단임까? 기집애가 꼬리쳤지 걔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럼까? 개를 때려도 주인낯을 보라 했는데 하물며 허락도 없이 우리 애를 막 두들겨 패다니? 당신도 어른이요 사람이요?∼”

 

엄마의 입에서는 련줄포가 거품과 함께 빛발쳐나갔다.

마음 약한 사내는 그만 어리벙벙해져 더위먹은 소의 꼴이 되였다.

 

사내가 자리를 뜨자 아버지가 나타났다. 당신은 자식의 무릎을 꿇이고 자초지종을 엄히 채문하셨다. 회초리로 종아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여린 다리에 삽시에 피멍이 들고 싯뻘건 줄이 뱀같이 뻗어갔다. 피방울이 떨어졌다. 이를 악문채 형은 한마디 용서도 빌지 않았다. 할매도 누구도 그러는 당신만은 절대 못말렸다.

 

“당금 내 눈앞에서 썩 꺼지거라, 이놈아! 저 원쑤같은 놈을, 그저∼”

당신은 회초리를 휘익 뿌리고 문을 차고나갔다.

나는 솜에 술을 발라 형의 상처를 처지해주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던 형이 어깨에 손을 얹어왔다.

“미안하다. 이런 꼴 보여서∼ 신세졌구나.”

까칠한 수염에 금시 눈물이 몇방울 맺혀왔다.

“형, 무슨 말이요, 그게?∼”

 

내 마음이 스스르해났다. 처음 가져보는 동정심이랄까. 더더욱 암울해진 눈과 주접이 든 얼굴에 절망의 빛이 흔들거리고있었다. 그는 아무 말없이 내손을 더듬어잡고 한번 힘을 주더니 풀어버렸다. 맥없이 눈을 감았다. 그게 내가 집에서 형을 본 마지막 모습이였다.

이튿날 아침에 깨여나보니 형은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할매는 뜨락에 나가 서성거렸고 아버지는 방에서 애꿎은 담배만 피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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