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엔가 늘 쫓기는 듯한 도시 생활…,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가슴을 쫙 펴 봐도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다.
어쩌다 눈을 감고 어릴 적 고향의 정경을 그리며 메마른 마음의 안식을 찾곤 하는 것이 요즘 내 생활의 전부이다.
얼마 전에 참으로 오랫동안 잊고 지내었던 고향 친구의 편지를 받아 보았다.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모이게 되는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린다는 통지였다.
편지를 가슴에 안고 흘러간 옛 추억을 샅샅이 눈앞에 그려 보면 모질게 피어나는 향수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한다.
봄마다 산과 들에 만발하여 향기를 마을 가득히 퍼뜨려 주던 고향 산천은 오늘은 여전히 그대로일까? 혹시 도시화로, 불도저(Bulldozer) 바퀴에 갈기갈기 찢겨 나간 것이나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노파심마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사십 년이나 흘렀으니 강산이 네 번은 족히 변할 법한 일이기는 하지만 온 천지가 모두 쑥밭이 되거나 기계문명의 괴물 손톱에 할퀴어 상처투성이가 되어질 지라도 내 고향, 그 고향만은 산천이 유구불변이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은 더욱 더 설레고 조바심으로 숨 막힌다.
삶을 처절하게 윽박지르는 냉혹한 서울 도시 생활에서 나에게는 단 한 시간의 무계획적 여유가 있을 수 없다. 한 시간 한 시간 모두가 생선 그물처럼 촘촘하게 짜여진 연속이라서 하루라는 긴 시간은 쉽게 낼 수 없는 내 처지이다.
이 절박한 내 삶이 짜여진 하루, 사십 년 만에 만나 볼 수 있는 친구의 얼굴, 그 삼삼히 떠오르는 인상, 그리고 뛰놀며 공부하며 자라난 교정, 그 그리움, 한동안 시간의 칼날과 향수의 방패가 팽팽하게 맞부딪쳐 내 가슴 속에서 선혈이 낭자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화벨이 찌르릉 울린다. 내일, 모레, 아니 앞으로 며칠 동안은 집에 있으면서 전화를 기다려 용건을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또 부득부득 내 손발을 결박시킨다. 식구를 살리고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긴급, 초 긴급 용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결박된 포도청 그물눈을 어떻게 뚫고 찢어 낼 것인가? 아찔하다. 시간의 노예, 도시의 현대인은 분명히 시간의 노예의 노예임에 틀림없다. 모두가 절박한 시간 사슬에 묶여 숨쉬고 있다. 잿빛 도시, 문명의 화신(化身)인 도시여, 원망스럽다.
저 푸르디 푸른 고향 하늘 아래, 자유롭게 뛰고, 달리고 하는 자유 시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간절한가를 나는 다시 느껴 본다.
가치 있는 일은 용기로 쟁취한단다.
만사를 제치고 동창회에 가야지! 나는 결심한다. 전화 연락이 있을 일들은 갔다 온 후로 모두 미루었다. 정말 자신이 의심되어지는 결단이다. 수심에 가득 찬 아내는 어쩌려고 옛날 젖꼭지를 되찾느냐고 꾸중이다. 한 시간도 비울 수 없는 상점 문을 열어 놓고 어찌 떠난다는 거냐고 울먹인다. 발을 동동 구르는 아내를 등지고 나는 벼슬길이라도 오른 듯이 내달렸다.
실로 운명의 순간이다. 골치 아픈 현실을 망각하는 길은 추억을 되씹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화면으로 그려본다.
10리나 떨어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를 6년이란 세월 동안을 떼거리 짓고 조랑말 뛰어가듯이, 눈, 비, 추위, 더위를 가리지 않고 한 마음으로, 고즈넉한 길로 거의 혼자 웃고 울기도 하며 다닌 학교 교실과 교정, 그리고 그 길가의 풍경들…. 진달래, 할미꽃, 살구나무, 배나무, 능금나무 등의 과수원 길은 실로 아내의 말처럼 그리운 젖꼭지였다.
서울의 살림살이는 누구에게나 긴장과 불안, 초조와 번뇌의 구렁텅이이다.
그 속을 떠나 어릴 때의 동심 사계를 찾아 가는 발길은 기대와 기쁨의 전주곡이 깔려 있다. 어린 시절 학교 교실 음악 시간에 풍금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합창이 창문을 흔들던 그 노래들, 입술은 이미 감미로운 목관악기가 되어진다. 벌판에서도 아이들의 노래가 들려온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 마을에 살았더래요….’
진정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향토의 정서였다. 나는 마치 갑돌이나 된 듯, 가슴이 뻐근해 온다.
내가 한 마을에서 좋아 지내던 여자아이는 누구였었을까?
순희였나? 옥순이었나? 아니, 보름달 얼굴이라서 ‘보름녀’라던 그 웃는 이빨이 수정 같던 그 아이였었던가? 그런 애였었다면 그 애는 지금 시집가서 아이를 몇이나 낳았을까? 산마루 느티나무 위에서 까치 떼가 일제히 환영하는 예포(禮砲) 아닌 합창곡을 퍼뜨린다. 이 산마루 돌면 고향 마을이 보이리라. 옛 고향, 옛 학교, 옛 친구들, 얼마나 살뜰한 대상들인가. 그것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 목메게 날 부르고 기다리는 것이다. 가슴은 한없이 설레어 홍수 때의 물방아 바퀴였다. 소년처럼 들뜬 가슴으로 고향 길을 밟으니 세월은 내 발목에 묶여 아련한 풍경과 얼굴들이 눈앞에 다가선다. 나는 미친 듯이 ‘내가 살던 고향은….’을 목청 높이 불러 본다. 풀섶에 잠들었던 고향 바람이 현란한 치마폭을 펄럭이며 나를 반겨 준다. 냇물 소리도 합창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가 진정 내 고향이었던가?
이곳이 정녕 나의 소년 시절의 즐기던 산천이란 말이냐? 나는 추억의 졸린 눈을 퍼렇게 뜨고 좌우를 살펴본다.
푸름에 덮여 푸른 바람을 일구어야 할 들판, 논밭, 그리고 푸르러야 할 고향 하늘, 그러나 하늘은 옛날의 푸른 빛깔이 아니다. 지금은 길조차 평탄한 흙길은 간데없고, 산사태가 휩쓸고 간 산 모롱이 길은 절벽이 되었고, 풀숲을 헤치며 고무신을 벗어 들고 천진난만하게 걷던 요람의 길은 간 곳이 없다.
이게 웬일일까? 어느 새 이 길도 현대 문명의 갈퀴에 긁혀 시멘트로 덮여 군더더기가 되어 날 기다렸고 귀신 눈알 같은 가로등이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내 마음엔 아직도 초가의 추녀에 주렁주렁 매달리던 고드름의 향수가 살아 숨쉬는데 새로 색칠된 기와지붕들이 내 눈을 놀라게 한다.
마을 아낙들의 시집살이 삼 년의 푸념을 봇물 트듯 쏟아 내던 우물가의 풍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우물가 울타리로 꽃피우던 앵두나무도 없다. 이 사라진 것, 변한 몰골들이 모두 추억을 감당 못하게 한다. 추석날 밤 늦도록 숨바꼭질하던 반딧불, 초가지붕 위의 보름달보다 흰 박꽃, 마을 앞 실개천 송사리 떼, 가을 하늘의 천사의 춤을 추던 고추잠자리, 밭갈이 소 대신 온 마을을 진동하는 경운기의 소음이 기세를 부린다. 마을 어귀에서 만나는 이방인의 얼굴, 그 차가운 얼음주머니가 내 목덜미를 덮쳐 온다. 현대 문명의 홍수가 공해를 싣고 우리 시골 방방곡곡을 휩쓸고 있는 오늘 우리의 것이었던 옛 정취는 죄다 어디 갔는가? 이 냉혹한 현실 앞에서 내 소박한 향수는 겹겹 더 쌓이고 쌓여 먼 타국의 외진 곳에 몸 둔 듯 등골이 싸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