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마바체 궁과 오스만 터키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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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마바체 궁과 오스만 터키 제국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9.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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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42>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제왕들이 살던 궁전들을 가보면 누구나 먼저 그 큰 규모에 놀란다. 실내에 꾸며 놓은 장식들과 여러 가구들을 보면서는 그 화려함과 우수함에 또 놀란다. 갖가지 의상과 장식품들을 구경하게 되면 그 정교함과 다양함에 감탄하게 된다. 가히 왕실답고 황족다운 집이요 가구요 장식물들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오래 동안에 이루어지고 여러 대에 걸쳐서 갖추어진 것이라면 그 규모나 화려함과 다양함을 긍정하게 된다. 더구나 최고 권력자들의 것으로써 우수함도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러나, 돌아보고 나올 때면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처럼 훌륭하고 화려한 시설과 가재도구에 수많은 의상과 갖가지 장식품들을 걸치고 호사스럽게 살았어도 그들 가운데에 존경받는 분이 몇이나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삶이 과연 무슨 보람이 있느냐 하는 의문도 인다. 모두가 한 바탕 꿈이요 한낱 망상(妄想)인 것을. 최고 권력자로서의 최상품 소유욕과 호화판 삶에의 집착을 생각하면 도리어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그런 것들을 소유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감탄보다는 도리어 서글퍼지기도 한다. 금은 세공품들은 백성들의 뼈와 살기름이 연상되고, 호화로운 카페트와 의상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힘줄과 땀방울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그것이 어느 한 짧은 시기에 한 명의 왕에 의하여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일 경우에는 그런 느낌과 생각이 더욱 강하게 떠오르곤 한다.

   이러한 느낌은 이스탄불의 돌마바체 궁을 구경할 때에도 그랬다. 성 소피아 성당이나 블루 모스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것을 주요 관광 상품으로 이용하여 후대인들이 덕을 보고 있지만, 고마움보다는 지울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여기고 있는 터키 사람들을 보고는 더욱 그렇게 생각되었다.

   돌마바체(Dolmabahce) 궁은 1842~1856년에 지은 궁전이다. 바닷가에 세워서 탁 트인 전망이 매우 좋다. 마르마라(Marma-ra) 바다로 이어지는 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의 유럽쪽 이스탄불 해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 궁전은 오스만 터키 제국이 급격하게 쇠퇴해 가는 시점에서 이를 만회하고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압뒬메짓(Abdülmecit) 1세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을 모방해서 총면적 14,595㎡에다 초호화판으로 건립하였다. 특히 두 개의 대기실과 접견실, 그리고 무도장으로 쓰는 중앙홀 등은 벽과 천장이 온통 조각과 그림과 장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찬란하기 그지없다. 내부 장식과 방 꾸미기에만도 금이 14톤, 은이 40톤이나 소용되었다고 하니 그 호화로움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궁전에는 방만도 285개요 홀은 43개나 된다. 중앙의 그랜드 홀은 높이가 36미터로 3층 크기로 꾸몄는데, 천장 중앙은 8개의 아치형 창을 가진 커다란 원형의 돔형 그림으로 채웠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화가 56명이 3년을 걸려 그렸다는 이 천정화는 평면이면서도 입체감을 느끼도록 아주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다. 홀 중앙의 좌우 대리석 기둥 밑은 방처럼 꾸며서 불을 때면 온기가 흘러나오도록 만들어 놓았다. 1층 바닥은 전체가 그대로 무도회장이고, 2층과 3층은 관람석으로 만들었다.

   이 궁전에는 4톤짜리와 2톤짜리를 포함하여 모두 36개의 크리스탈 샨델리아가 있다. 각종 시계도 156개나 되고, 58개의 크리스탈 촛대가 여기저기에 서 있다. 꽃병도 280개가 놓이고, 600점이 넘는 그림도 곳곳에 걸려 있다. 마루와 방에는 손으로 직접 짠 대형 카페트를 깔았다.

   왕이 사용하는 전용 목욕실도 대기실과 휴게실과 욕실로 되어 있다. 모두가 대리석으로 만들었는데, 욕실의 천장만은 쇠틀에 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이 올려다 보인다. 곳곳에 새겨진 갖가지 조각들은 다양하고 생생하다. 따로 세숫대가 있는 방이 있고, 이어서 화장실이 있다. 열쇠구멍처럼 파인 대리석 구조이다. 가히 세계 최고의 호화판 욕실이요 화장실이라 할 만하다.

   건물은 전통적인 터키 방식에다 유럽식을 섞었는데,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도 이용되었다. 진열된 가구와 작품들은 주로 프랑스 이태리 영국 등지에서 들여오고, 중국과 일본에서 보낸 커다란 장식용 도자기들도 놓여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모든 구조가 좌우 대칭으로 되어 있고, 가구와 진열품들도 모두 쌍으로 양쪽에다 배열해 놓은 점이다. 균형미를 최대로 살린 것이다. 유일하게 하나인 것은 친구인 나폴레온 3세가 보낸 피아노뿐이다.

   그런데, 이 호화로운 궁전의 건축으로 말미암아 왕실의 재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끝내는 오스만 터키 제국이 멸망되고 말았다. 제국의 급격한 쇠퇴를 호화로운 궁전을 건축하는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막겠다는 망상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으니, 돌마바체 궁전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오스만 터키의 마지막 제왕이 많은 금은보화를 배에 싣고서 왕궁을 몰래 빠져 나와 영국으로 망명한 사실이다. 왕은 나랏돈만 탕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도 버린 것이다. 지금은 왕의 후손들이 빈털터리가 되고, 어떤 이는 직공으로 연명을 한다니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요 자업자득인 셈이다.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런 왕을 섬긴 것을 부끄러워하는 터키 국민들이 도리어 선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탄불의 궁전 돌마바체, ‘가득한 정원’이란 뜻 그대로 온갖 사치와 허세로 가득 찬 궁전이다. 그러나, 그것은 최고의 호화판 궁전이기보다는 최상의 허영의 전당이요, 국가 패망의 마법의 성이다. 그러기에 돌마바체 궁전을 구경하는 마음은 서글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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