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怨)과 한(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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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怨)과 한(恨)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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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39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흔히들 원(怨)과 한(恨)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때로는 혼동하여 바꿔 쓰기도 하고, 묶어서 하나로 말하기도 하는 것을 자주 본다. 잘못 없이 남에게 당해서 억울하게 여기고 원망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잘못했을 경우에도 원을 갖는 것을 본다. 한도 자기가 잘못하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원을 품는 것을 본다.

   또한, 원이나 한은 모두 남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고, 따라서 남이 자신에게 풀어 주어야 되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선지, 원이나 한을 지닌 사람은 으레 남을 탓하고 불평하며, 풀어 주지 않으면 그를 원망하고 늘 앙앙거리며 산다. 자기 자신은 아무 관계가 없으며, 풀 책임도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평생을 원을 품은 채 살고, 한도 지닌 채 아프게 사는 사람들이 있게 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원(怨)은 남에게 당해서 생겨진 마음속의 멍이고, 한(恨)은 스스로 이루지 못하여 맺힌 가슴속의 울화(鬱火)이다. 따라서, 원을 품으면 그와 관계된 대상자를 미워하게 되고, 한을 지니면 스스로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이나 한은 풀어야 한다. 하지만, 원과 한은 둘 다 풀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기가 쉽다. 그리고 원이나 한이 크면 클수록 가슴속에 맺힌 원한의 덩이는 더욱 크고 딱딱하게 된다.

   그런데, 원이나 한을 가지고 있을 때 흔히 나타나는 행동이 욕(辱)과 화(火)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욕을 하고 화를 내며 산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원과 한의 감정을 줄이거나 가라앉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욕을 하고 화를 내는 것은 때로는 가슴속에 맺힌 원한의 응어리를 덜고 씻어 내리게도 한다. 이런 점에서 욕과 화는 원과 한을 줄이거나 후련하게 해 주는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면은 개인이나 집단의 경우에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지, 여러 지역을 다녀보면 당당하게 남을 성토하고 욕을 할 수 있는 곳이나 풍습을 가지고 있는 곳을 가끔 보게 된다.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능골의 ‘욕바위’는 목사에 대한 욕을 새겨 놓아서 붙여진 것이고, 전라남도 해남 북쪽 고개의 ‘치마(馳馬) 바위’는 숨어서 퍼부어 대는 백성들의 욕을 다 들으며 갈 수가 없어서 말을 달려야만 해서 붙려진 것이다.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금마리의 ‘원이 진 바위’는 벌어진 바위 양쪽에 원님과 백성이 올라가서 서로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데 언제나 원님이 지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것이다.

   이런 것들은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리스의 아테네의 한 광장은 누구나 나와서 성토하고 주장하는 웅변이나 연설의 장소로 쓰였다. 러시아의 모스크바에도 항의나 욕, 무슨 말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모두가 정치의 잘못을 성토하고 관리들의 학정을 마음껏 욕하게 하여 원과 한을 풀게 하는 기능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욕바위는 이처럼 가슴속에 맺힌 원과 한을 푸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응어리진 마음이 녹고 맺힌 원한이 풀어진다면 마을마다 욕바위가 하나씩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남에게 원을 품고 사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리고 평생을 원망 속에 산다는 것은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이루지 못하여 한을 품는 것도 안쓰러운 일이다. 더구나 한을 남의 탓으로만 여기며 한 맺힌 삶을 사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슴속에 원이나 한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선지 원망하고 한탄하며 사는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이것을 풀어 주는 사람이 있어 ‘원풀이, 한풀이’를 받아 위안을 받는 경우도 본다.

   하지만, 기원적으로는 원(怨)은 남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남이 풀어 주어야 하고, 한(恨)은 자신이 이루지 못하여 생긴 것이니 스스로 풀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는 둘 다 남의 탓으로 돌릴 일도 아니고, 남이 풀어 주어야만 하는 일도 아니다. 남을 욕하고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낸다 해도 결국에는 자신이 풀고 해결해내야 할 일이다. 자신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결국은 자신이 스스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원은 자신의 마음속에 덩어리진 화를 끔으로써 없어지고, 한은 스스로 바라는 일을 이루어냄으로써 풀어지는 것이다. 이에 남이 도와주고 돕지 않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한이 맺히고 그것을 푸는 일을 남의 탓과 남의 일로만 돌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원도 때로는 스스로 용서함으로써 풀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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